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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체헌이는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좋노?"
"아빠요?"
"뭐라꼬 엄마를 좋아해야지 아빠를 더 좋하노"

"아니에요. 아빠가 더 좋아요. 아빠는 화를 내지 않잖아요."
"그래도 엄마가 좋은기라. 알겄나."
"할머니 나는 진짜 아빠가 좋아요."

지난 성탄절 할머니와 막둥이 사이에 오간 짧은 대화입니다. 아이들에게 하면 안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하지만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엄마가 더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빠가 더 좋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엄마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엄청나게 하지만 아빠들은 "그냥 놀아라"라는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집 막둥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 이유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만 저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공부인 막둥이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보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아빠가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주 금요일밤 일기를 두고 막둥이와 엄마는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아내와 막둥이는 한바탕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아내와 막둥이는 한바탕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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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일기라고 썼니?"
"그럼 일기가 아니고 뭐예요."

"일가가 아니고 뭐라니. 일기는 오늘 있었던 중요한 일이나, 생각나는 것을 주제 삼아 쓰는 것인데 너는 '오늘 방학했다', '좋다'이러 말 밖에 없잖아?"
"방학식한 것이 썼잖아요."
"그래 방학식을 어떻게 했는지를 써야 할 것 아니니?"

"그냥 방학식했다고 쓰면 되지 무슨 말을 적어야해요."
"그냥 적는게 어디 있어"
"방학식하고, 두 시간은 놀고, 청소하고 이런 것 적어도 되죠.

"그리고 이게 글씨냐"
"그럼 글씨가 아니고 그림이에요."
"엄마가 보기에 거의 그림이다."

"나는 정성을 다해 글을 썼는데 어떻게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성을 다해 쓴 글씨가 이래?"
"엄마 나는 정말 또박또박 썼어요.
"체헌이 너 단 한마디도 지지 않구나. 다시 일기 쓴다, 알겠어. 방학식때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적어 알겠어."

"알았어요. 엄마는 정말 너무해요."

두 사람 대화는 거의 10분을 오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와 큰 아이, 둘째 아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막둥이 얼굴은 눈물이 글썽글썽입니다. 아마 아빠에게 'SOS'를 보내는 눈치입니다. 아빠가 자기 편이 되어 엄마 잔소리에서 구출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물이었습니다.

엄마 꾸중을 들은 막둥이 눈물을 짜내 아빠에게 SOS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엄마 꾸중을 들은 막둥이 눈물을 짜내 아빠에게 SOS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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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럴 때 막둥이 편을 들었다간 아침 밥 먹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빠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막둥이를 향해 위로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막둥아 엄마가 너를 꾸중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꾸중하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다."
"그래도 엄마는 너를 자주 꾸중해요. 글씨 잘 못 쓴다고 꾸중하잖아요. 너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아빠가 보기에도 네 글씨는 조금 그림 같아."
"아빠 정말 그래요. 그림같은 생각이 들어요."

"응 글씨는 그림이 아니잖아. 조금 더 노력해라. 알겠어?"
"알았어요."

결국 막둥이는 엄마의 타박에 굴복(?)하고 일기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막둥이는 엄마의 타박에 굴복(?)하고 일기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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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말을 들은 막둥이는 눈물을 거두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막둥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픕니다. 또래 아이들도보다 조금은 늦게 가는 막둥이. 하지만 늦다고 생각했지만 다 할 줄 아는 막둥이입니다.

막둥아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하니까. 잔소리를 하는 것 알지. 올해도 건강했으니 내년에도 건강해라. 아빠는 공부를 조금 못해도, 항상 웃고 웃는 네가 참 좋다. 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 생각도 건강한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거라.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아빠.


태그:#막둥이, #방학,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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