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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분출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마이크에 대고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 클라이막스 더이상 분출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마이크에 대고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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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억눌린 욕망과 분출. 12월 22일과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무용예술감독 안애순)는 흔한 소재를 특이한 연출로 표현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심플한 무대와 복잡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의 조명, 미디어아트와 효과적인 사운드와 영상, 감각적인 의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다른 안무가 특색있는 연출로 무대를 구성했다. 보통 무용수들은 춤만 추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무용수들은 노래, 대사, 표정연기 등을 펼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무대 시작에서 나른한 음악을 배경으로 일상을 촬영한 영상이 원형으로 몰딩되면서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마치 멀리서 망원경으로 특정한 공간을 샅샅이 들여다 보는 것 같다.

현대인의 억눌린 욕망과 분출을 표현하는 듯하다.
▲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 현대인의 억눌린 욕망과 분출을 표현하는 듯하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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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무용수도 곧 등장한다. 자동차 소리가 섞인 도시의 소음이 계속 들리는 가운데, 무용수 둘은 마치 일상의 갑갑함을 탈출하려는 듯 몸부림을 친다. 점점 무용수들이 많아진다. 나른함, 반복, 탈출. 천천히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대중 교통안에 탑승한 사람처럼 반복적으로 행동하며 탈출을 시도하는 것 같다. 운전수도 보인다. 의상은 패션디자이너 임선옥이 디자인해 무용의 컨셉을 더욱 확연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이들이 입은 옷은 사이버틱 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직분, 예를 들면 운전사, 성직자, 젊은 여자 회사원 등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대 뒤 영상에는 무용수들의 몸짓이 검정배경에 형광 라인으로 드로잉돼 현대인의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남자는 어리둥절하게 서있고 마이크 하나가 천장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 한 남자는 어리둥절하게 서있고 마이크 하나가 천장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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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남자 한 명만 남겨지고 천정에서 줄달린 마이크가 하나 덩그러니 내려온다. 마이크는 생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자신에게 부족한, 혹은 없는 생명을 찾기 위해 마이크를 이리저리 탐구하며, 면도기처럼 자신의 얼굴에 밀기도 한다. 또한 마이크를 몸의 구석구석에 대며 커다란 심장박동과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남자는 괴로워 보인다. 아니, 즐거워 보인다. 로봇 음향이 들리는 가운데 남자는 각기병 환자처럼 관절을 마구 꺾으며 바닥에 나뒹군다. 곧 다시 여자가 등장한다. 도시에서의 남녀의 스침, 그 여운과 나른한 음악과 그들 사이의 눈빛. 여자는 섹시한 몸짓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남자는 비웃음을 지으며 각자의 몸짓을 펼쳐나간다.

남녀의 만남. 여자는 최대한 섹시하게, 남자는 그녀를 비웃으며 스친다.
▲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 남녀의 만남. 여자는 최대한 섹시하게, 남자는 그녀를 비웃으며 스친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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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갑자기 아나운서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를 반복한다. 아나운서 음성의 불륨이 들렸다 안 들리기를 반복하면서 무용수들이 아나운서가 돼 날씨, 교통, 생활정보 등의 각종 뉴스를 보도하며 무대를 휘젓는다. 이들 모두 각자의 마이크를 들고 있다.

마구잡이의 뉴스 소리로 정신이 혼미해질 즈음, 아나운서들은 계속 말하는데 소리는 안들린다. 경쾌한 비트 음악과 함께 무용수들의 그림자가 무대 전면의 벽에 크게 비추이는 모양이 라파엘 로자노 햄머의 작품처럼 도시의 사람들을 표현한다.

군무는 멈추고 무대 뒤의 창문이 열리며, 두 명의 남녀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가지마오 가지마, 예~, 얄리얄리 얄라성, 해변으로 가요…" 등 여러 노래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부른다. 점점 목청이 높아진다. 남자 가수는 우리말도 불어도 아닌 것 같은 말로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천정에서 수십 개의 줄 달린 마이크가 쾅하며 떨어진다.

모두들 쓰러지는 가운데 한 명이 가쁜 숨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 2011 HanPAC MixedPlay <마이크> 중 모두들 쓰러지는 가운데 한 명이 가쁜 숨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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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그들은 무엇을 하기 위하여 마이크가 필요했을까. 목청껏 외치고 싶었을까. 마이크 줄은 마구잡이로 얽히면서 이 소리 저 소리가 합선되고, 무용수들은 폭발적인 몸짓과 노래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이들은 현대사회의 소통과 성적 에너지, 반복성, 부족과 표출을 표현하고 있다.

전선이 합선돼 튀는 소리, 회로가 재배열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용수들은 발광한다. 이내 이들은 목청껏 노래를 부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명만이 모든 것을 대변하듯 숨차게 노래를 헐떡인다. 마지막으로 극중 인물들이 소망하는 미래형 인간같은 모습을 한 무용수가 나타나 느린 춤을 코믹하게 춘다.   

무용수 김정선이 다소 코믹한 미래형 인간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다.
▲ HanPAC MixedPlay <마이크> 마지막 장면 무용수 김정선이 다소 코믹한 미래형 인간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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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인상적인 것은 무용수들이 노래도 부르고 아나운서처럼 말도 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척 연습을 많이했을 것이다. 아니면 최근의 모든 예술인들이 다 만능엔터테이너인 것일까. <마이크>는 한 장르가 결코 한 장르뿐만이 될 수 없고, 종합 예술을 넘어 요사이 유행하는 '융합'의 현장을 보여줬다. '마이크'라는 표면적 소재로 인간의 욕구 표출이라는 내면적 소재를 몸짓과 영상 그리고 사운드의 삼박자로 잘 표현한, 잘 짜여진 공연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이크, #2011 HANPAC MIXED PLAY , #안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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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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