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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진보와 혁신은 기득권 정치에 배제되어 있던 세력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평등이 진보의 가치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다. 1995년 북경세계여성회의 이후 각 나라는 실질적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여성에 대한 적극적 조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적극적 조치는 정치적 사회적 약자 집단의 '결과의 평등'을 앞당기기 위해 차별이 가져온 집단적 불이익을 제거하고 기회균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조치이다.   

 

지지율이 낮았던 영국 노동당은 1997년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 후보에 여성으로만 후보자 명단을 작성한다'는 선언을 해서, 여성 후보 155명을 내 이 가운데 101명을 당선시켰다. 프랑스는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각급 선거에서 여성 50% 공천을 의무화하였다. 보수정치가 오랫동안 지배해온 일본조차도 '여성자객'이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면서 여성정치참여를 개혁의 상징으로 해왔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혁신을 내세웠지만 당헌의 성평등 조항은 후퇴하였다. 민주당 개혁안조차 실종되었고,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당헌보다 못하다.  

 

민주당 - 민주통합당 - 한나라당 당헌 비교

민주당 당개혁위의결안(2011.7)

1. 여성공천 할당제 : 각종 지역구 선거에서 여성당원을 100분의 30 이상 포함해야 한다. 단, 2012년 총선에 한하여 100분의 15 이상으로 함

2. 전국대의원대회 대의원 여성 50% 구성 : 전국대의원대회의 대의원에 여성당원이 100분의 50이 되어야 함

3. 경선에 참여한 여성 후보자에 대한 100분의 20 가산점 예외

   1안) 100분의 20 가산점을 부여함. 단 동일지역 선거구 또는 그 선거구가 포함된 지역선거구에서 동급 이상의 공직에 1회 이상 당선된 여성후보자는 제외함

   2안) 100분의 20 가산점을 부여함. 단 동일지역 선거구 또는 그 선거구가 포함된 지역선거구에서 동급 이상의 공직에 1회 이상 당선된 여성후보자는 제외함. 전현직 의원, 단체장, 위원장은 100분의 10을 가산함

 

민주통합당 (2011.12)

1. 선출직 전국대의원에 여성대의원 100분의 30이 포함하여야 하며, 100분의 50 이상 포함하도록 노력한다.

2. 여성가산점 조항 : 여성후보자의 경우 본인이 얻은 득표수(득표율)의 100분의 20을 가산한다. 다만 전·현직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단체장은 100분의 10을 가산하고, 해당 선거구 또는 해당 선거구가 포함된 선거구에서 본인이 신청한 공직과 동급 이상의 공직을 수행한 여성후보자는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한나라당

1. 각종 의결기관의 선임 대의원 및 선거인단 구성시 여성을 50%로 한다.

2. 각종 선거(지역구)의 후보자 추천시 여성을 30%로 하도록 한다.

3. 주요 당직 및 각종 위원회 구성시 여성을 30%로 한다.

 

민주통합당의 여성공천할당제, 한나라당보다 소극적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첫째, 여성공천할당제는 민주통합당이 민주당 개혁안보다 후퇴했고, 한나라당보다 표현이 소극적이다.  

 

민주당 개혁안은 민주당 내부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와 시민사회 등이 참여해서 수 개월간의 논쟁과 토론을 통해 만든 내용이다. 여성계도 전문가가 참여해서 여성공천할당제를 권고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고 경과조치를 두어 단계적으로 할당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2012년에 15% 의무공천에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민주통합당 당헌은 이러한 개혁안조차 수용되지 않았고 원래 민주당 당헌인 '공직선거에 여성 30% 이상 포함되도록 노력한다'는 권고조항이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표현일망정 '각종 선거(지역구)의 후보자 추천시 여성을 30%로 하도록 한다'로 되어 있고 지난 각급 선거에서 민주당보다 여성공천에 적극적이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세 가지 문제에서 기인한다. 먼저 민주당 수임기구에 참여한 의원들이 여성공천을 의무화할 경우 자신의 지역에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고, 특히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던 수임기구 의원들이 당선이 보장되는 호남지역에 여성을 공천하지 않으려는 묵시적 배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현재 호남지역엔 조배숙 의원(전북 익산)이 유일한 여성의원이다. 이런 상황은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는 강남지역에 구청장 후보로 여성을 공천한 한나라당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호남이 혁신되려면 호남지역 의원들이 여성의무공천을 다른 지역보다 먼저 할 수 있다는 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하겠다는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성의무공천을 권역별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전략공천, 배심제 등을 활용해서 당 지도부가 15%가 될 수 있도록 공천기획을 하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15% 여성공천을 의무화할 경우 경쟁력 있는 여성이 있느냐 하는 반론이다. 결국 한나라당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모든 국회의원 선거구에 후보를 낸다는 가정하에 15% 여성의무공천을 하면 대략 37명을 공천해야 한다. 민주당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역위원장 21명이 여성이고(일부는 미출마), 현역 여성비례의원 4명이 준비 중이고, 시민사회 출신 중에서도 2~3명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15% 여성의무공천이 시행된다면 준비된 여성들이 출마를 결심할 수 있을 것이다. '준비된 여성이 없다'는 주장은 여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남성기득권 정치의 대표적 논리이고 이는 혁신되어야 할 구태이다. 

 

소녀시대도 9명 골고루 앞에 나설 기회 주는데...

 

소녀시대 9명이 공연을 할 때 골고루 앞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시청자의 시선을 누구나 한 번쯤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남성들이 가운데를 차지하고 여성을 주변부에 세워 악세사리로 취급하는 것이 변화하지 않고 있다. 변화를 외친 시민사회 남성들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 수임위원들보다는 시민통합당 수임위원들이 여성할당을 주장하고 싸웠지만 성평등 조항이 혁신되지 않으면 통합하지 못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책임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배달사고가 생긴 것이다. 여성의무공천이 민주당 개혁안에도 있고 시민통합당 당헌에도 명시되어 있었기에 합당수임기구에서 쟁점사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대처하는 수임기구 여성위원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성계와 의논하거나 대처하지 못했다.

 

여성이라고 젠더문제의 전문성과 디테일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수임위원으로 유승희 전국여성위원장이 포함되었다가 박지원 의원이 추천한 인물로 바뀌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시민통합당 수임위원에도 여성이 있었지만 젠더문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으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여성의원들조차 여성가산점을 당헌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히 주장하고, 여성의무공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이다.

 

둘째, '대의원 구성시 여성 50% 할당'도 한나라당보다 못하다. 한나라당은 '각종 의결기관의 선임 대의원 및 선거인단 구성시 여성을 50%로 한다'로 되어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전국대의원에 여성대의원 100분의 30이 포함하여야 하며, 100분의 50 이상 포함하도록 노력한다'로 되어 있다.

 

한나라당은 의무조항인데 민주통합당은 권고조항이다. 이조차도 초안은 수임기관 합동회의에서 여성 30% 의무조항으로 하려다가 여성계가 한나라당보다 못하다고 비판하니까 막판에 50%로 노력한다고 바꾼 것이다. 보수정당이라고 한나라당 비판하면서 성평등 조치는 한나라당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해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여성가산점제로 생색을 내지만, 이는 이미 있었던 조항으로 여성을 공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추천선거에서 경선에 참여한 후보자에게 본인이 얻은 득표수에 20% 가산하는 조항은 여성 할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조항이고 한나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내세우는 조항이지만, 공천 결과는 늘 한나라당보다 뒤처진 이유가 무엇인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 공천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강남지역과 부산, 대구 등 당선가능 지역을 포함해서 여성후보 8명을 공천했지만 민주당은 광주와 인천에서 고작 2명을 공천했을 뿐이다. 가산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나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이다.

 

즉, 여성의무공천 목표를 수립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하지 않으면 여성가산점제가 실시되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여성후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처럼 당선가능지역에 여성을 전략공천을 하고, 정치신인 여성후보가 나오는 지역은 배심제 방식을 도입하고 여성정치발전기금에서 선거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조치가 없는 한 남성 중심의 정치정글에서 여성이 도전장을 내밀기 어렵고 당선되기도 어렵다.

 

이제 민주통합당에 임시지도부가 구성되었다.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이 과소대표(국회의원 중 여성 14%) 되는 현재의 상황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시민정치세력이 합류해서 새로운 정치를 한다는 명분은 사라진다. 더구나 진보정치세력까지 통합하지 못한 현 시점에 혁신마저 빈 껍데기가 된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2013년 평화·복지·성평등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아주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여성정치 확대 전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성유권자의 심판에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살림정치여성행동 운영위원,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입니다.


태그:#민주통합당,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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