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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1구역에 위치한 북성경로당.
 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1구역에 위치한 북성경로당.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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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마지막 날이던 11월 30일, 서대문구 북아현 뉴타운 1-3구역에 위치한 북성경로당에 구청 복지담당 공무원과 조합, 용역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들어와 가스를 끊었다. 차가운 방에서 이틀 동안 전기밥솥으로 식사를 한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은 두 번이나 서대문구청을 찾아갔다. 구청 노인복지 공무원은 "땅을 마련하면 시설을 해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평소 4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던 경로당을 그렇게 구청과 조합, 철거용역들에게 빼앗겼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대문구청에 바랐던 것은 "겨울 동안 만이라도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골목 어디라도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분은 "할머니보다도 할아버지가 더 문제"라고 했다. 할머니들은 집에서 집안일이나 조금씩 하면서 시간 보낼 수 있지만, 할아버지들은 며느리와 가족들이 있는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것만큼 고역이 없다고 했다.

구청과 조합 측 사람들이 들어와 가스를 끊던 날, 경로당에 계셨던 할머니 세 분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로당을 이용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대게 70세에서 8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다. 인터뷰에 응하신 할머니들은 각각 82세, 84세의 연로하신 분들이라 취재원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는다.)

"땅 마련하면 시설해 준다"?
ㅇ할머니(82) "그곳을 내 집처럼 생각했어"
아현역에서 시작되는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1지구 입구의 모습. 이 지역은 10년 안밖의 새로 지은 다양한 연립주택이 많은 거주밀집지역이다.
 아현역에서 시작되는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1지구 입구의 모습. 이 지역은 10년 안밖의 새로 지은 다양한 연립주택이 많은 거주밀집지역이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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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방에서 이틀을 지냈다고 들었습니다.
"10월 초부터 나가라고 했어. '땅 마련하면 시설 해 준다'고 말했어. 그 사람들(용역들)이 들어오고 나서 그날 자고, 이튿날 지냈지. 한 달 연료비, 가스비 내면 한 달 정도 있으라고는 했어. 추운데서 2~3일을 보냈지. 아쉬워서 밥해 먹고. 가스가 나오지 않아 전기밥솥으로 두 번 해 먹었어.

구청장 만나러 갔었어. '마포구에서는 아파트 짓느라 (경로당이 없어지면서) 콘테이너 지어주었다는데, 우리도 해 주라'고 했더니, '땅을 마련하면' 해 주겠데요. 가스비도 못 내는데, 그럴 돈이 어디에 있어. 나중에 아파트 지으면 '동아리'로 등록하면 해주겠다는 거야. 한 달에 얼마씩 혜택이 나온다면서 말야.

'땅을 왜 우리보고 내놓으라고 하느냐' 하니까,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아. 노인네들이 어디서 그 돈을 구해. OO아파트도 그런 방 하나 구하려면 1억에서 2억은 있어야 하는데….

OO아파트에도 경로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가지 않게 되더라고. 옆에 교회도 내년 3월에 나가겠다고 합의했다는데 '왜 우리 보고만 그러느냐' 했더니, 그러면 '1-2달 있으려면 있으래요' 그러더니, 나중에는 '가스비는 본인부담으로 하래요' 매달 십 만원 이상 나올 텐데 우리는 그 돈도 부담스러워. 앓으니 죽지. 우리는 단 돈 십만 원도 아쉬운데. 내년 2~3월까지, 겨울동안 서너 달 정도만 되면 되니까, 그때까지 있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봄 되면 어디든 햇볕 따뜻한 곳에 모여 앉아 시간 보낼 수 있잖아.

2층 할아버지들은 요지부동이야. 우리들에게는 의지할 데, 앉아서 놀데만 있으면 되. 그저 내 집마냥, 그곳을 내 집 같이 생각했어. 노인들이 밥만 먹으면 (집에서) 며느리 얼굴보고 있으면 누가 좋아하겠어. 교통비까지 주면서 노인보호 하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돼? 몇 달이라도 참아주면 (얼마나 좋아)."

"우리 소중한 것들 그 안에 있는데 왜 맘대로 바꾸려고 해"

- 그 사람들(용역)들이 경로당에 와서 가스를 끊고 열쇠를 바꾼 것이 언제였나요?
"내가 그날 아침 8시 반에 병원에 들렀다가,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어. 도착한 지 몇 분 안 되었을 거야. 셋이서 있는데 복지관 사람이 남자 세 명을 데리고 들어오더라고. 나는 항의하느라고 못 봤지만, 'ㅊ'님이 그러는데 신발을 신고 들어왔데. 제일 나이 많은 ㄱ할머니가 '니들은 부모도 없냐, 어디를 함부로 신발을 신고 들어오느냐' 호통을 쳤지. 젊은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왔어. 오토바이와 검은 자가용차를 타고 왔던가 봐. 복지 담당자가 '기간 줄 테니까 비워라' '9-10월까지 나가'라고 했었어. 그래서 '나가라고만 하지 말고, 대책 세워주시오' 했었지.

그런데 그렇게 9월, 10월 지나고, 11월 그믐(30일)이었지. 복지관 사람은 구청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50대 정도고 똥똥하고 키가 작아. 12월 되기 전에 가스를 끊었지. 그리고 손잡이를 바꾸려고 해. 나이 제일 많은 'ㄱ' 형님이 아우성을 쳤지. 그랬더니 '자기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거래' 남자층 (2층) 손잡이 바꾸고, 우리가 난리를 치니까 (우리 것은) 못해(못 바꾸었어). 우리 소중한 것들 그 안에 있는데, 왜 맘대로 바꾸려고 해. (그 이후에 우리가) 고물 팔고 했지. 가스가 안 나오니까. 우리 방 손잡이(열쇠)는 우리 없을 때 밤에 와서 몰래 바꾸었더라고(아직도 할머니들의 방에는 에어컨도 있고, 다른 물건들도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징역살이 하고 있어"

- 구청에는 언제 어떤 분이 가셨나요?
"초하루 점심 먹고 다음날 어머니들 네 분이 갔지. 뒷날에 할아버지 다섯 분, 할머니 네 분해서 모두 아홉 명이 갔어요. '3층에서 구청장 있으니 기다려라' 하더라고. 10시쯤에 (서대문구청에) 도착했어. 

(서대문 구청 갔을 때) 3층 사회복지관 양반이 매정하게 '안 된다'고 말하더라고. 집을 나라(시)에 바쳤다고 하면서 말야. (경로당 건물은) 땅만 나라에서 주고 구청에서 지었다고 하데요.

(경로당에 오던 노인들) 집을 찾아가서 보니까, 모두 징역살이 하고 있어. 모두 애걸하잖아. 지금이라도 그곳 들어가서 놀 수 없을까? 건물은 멀쩡하니까. 가스만 들어오고, 전기만 들어오면 앉아서 십 원짜리 화투도 치고 (할 수 있잖아.) 가스는 담 넘어서 들어가서 끊더라고. (용역들이 들어온 날) 한 녀석이 담을 휙 넘더라고. 가스를 끊으려고 그랬나봐. 가스관 손잡이를 없앴더라고. 그러고 나서는 가스가 안 나왔지."

"부모 있는 방에 신발 신고 들어와서 가스끊고, 전기끊고 하냐"
ㄱ 할머니(84)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청년을 계속 쳐다봤지"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1구역에는 아직 90여 세대의 가옥주와 세입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북아현뉴타운 재개발 1구역에는 아직 90여 세대의 가옥주와 세입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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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스를 끊으러 온 날 이야기를 해 주세요.
"난 다리가 아파서 아는 분이랑 차로 경로당에 다녀. 아마 10시쯤 도착했을 거야. 갔더니 사람들이 밖에 서 있더라고. 그리고는 나보고 '(경로당) 안에 못 들어간다'고 하잖아. 그래서 '나는 여기 다니는 사람이다.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들어갔지.

도착 했더니, o, ㅈ가 있더라고. 그리고 나이 40에서 50대쯤 되보이는 사람들이 댓 명 있었어.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조합에서 왔다'고 그러더라고. 그 중 한 사람이 대학생처럼 아주 젊어. 나는 속으로 '젊은 사람이 이런데 쫒아다니면 안 되는데 '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 청년을 계속 쳐다보았지. '젊은 사람이 막노동을 해도 열심히 일을 해야지, 그런(조합) 사람들 쫒아다니면서 뭘 배우겠어.'

'난 원래 말을 많이 하지 않아.' 그래서 '속으로만 그렇게 말하면서' 그 청년을 계속 쳐다보았지. 그 사람들이 나랑, ㅈ의 팔을 잡고 내쫒으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이것 놓으라고. 난 여기서 살다가 집도 내놓고 가게도 내 놓고 이사 간 사람이라고. 너희들이 이 경로당 나가라고 하면 내가 안 나갈까 봐 이러냐고 했지. 그랬더니 팔을 놓더라고.

참 무서운 세상이야. (조합에서 온 사람들) 중 나이든 사람 한 사람이 나가면서 그러더라구. '당신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래 말 잘 했수. 당신들은 부모 있는 방에 신발 신고 들어와서 가스끊고, 전기끊고 하냐고.' 그랬더니 아무 말 못하고 나가더라고."



ㅈ 할머니(70) "아주 삭막해서 볼 수가 없었어"
"난 원래 경로당 다니는 사람은 아니야. 요새 어수선해서 가고 싶어서 가끔 가고 있었어. 그날은 경로당에 도착하니까, 밖에 오토바이랑 차가 있더라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키 작은 사람이 '왜 들어가려고 하느냐' 그래. 그래서 '여기는 노인네 놀이터'다 하고 들어갔지. 들어가니까 노인네들이 추운데서 벌벌 떨고 계서. 불도 다 꺼지고 깜깜한 데서.

내가 본 사람은 얼굴이 갸름하고 키가 좀 큰 사람이었어. 그 사람하고 다른 사람이 2층 할아버지들 방의 손잡이를 바꾸더라고. 그러고는 제일 나이 많은 ㄱ 형님 팔에 손을 댔어. 그리고 내 팔을 잡아. 내 오른손은 오래전에 수술을 잘 못해서 팔이 철심으로 되어 있어 (조심해야 하거든). 그래서 '이 손 놔. 이것 아픈 손이거든.' 그랬더니 손을 놓더라구. 그러고는 어두운데서 계속 전화번호를 뒤적이는 ㅇ할머니 옆에 서서 한 참을 쳐다보고 있더라고. 밖에서 (복지담당자가) 나오라고 신호를 하니까 나가더라고.

모두들 위아래 까만색 옷을 입었고, 위에는 잠바를 입었어. 대부분 40-50대 정도 나이고, 얼굴이 번들번들해. 아주 삭막하더라구. 노인네들은 추운데서 덜덜 떨고 계시는데. 노인들은 피 순환이 잘 안 돼서 추운데서 그러고 있다가는 주저앉을 수도 있어. 그런데도 어떻게 가스를 끊고 전기를 내리고 그래.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추운데서 노인들 뭔 일 나면 어쩔라고 그래. 삭막해서 볼 수가 없었어. 잔인해. 아주 천한 놈들이더라고. 노인네 분들에게 반말하고 '나가 나가 나가' 하고."


아직 유리창도 떼지 않은 건물을 무참히도 부셨다. 급하게 철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뚜렸하다.
 아직 유리창도 떼지 않은 건물을 무참히도 부셨다. 급하게 철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뚜렸하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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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기

지난달 중순, 북아현1구역 재개발 지역을 둘러보다가, 북성경로당을 방문했었다. 이미 많이 부서지고 폐허가 된 지역 한 가운데, 포장이 된 건물 사이에 '북성경로당'이라는 나무문패가 걸려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겠지'하며 지나치려는데,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안으로 들어가셨다. 너무 반가워서 아래층 문을 열었더니, 훈훈한 온기가 느껴지면서 할머니 십여 분이 모여 계셨다.

할머니들께서는 "추워요, 어서 들어와요"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앞 동네 사는 사람이고, 지난주에 상가세입자 한 분이 다치셨다"고 하자, "포크레인이 밀어버렸다고 하더니만, 그 소리가 사실이었구먼" 하신다. "내가 그 소리를 들으니 오기가 나네" 하시며 깊은 동감을 나타내시는 분도 계셨다. 또 다른 분은 "자기 집 공사하다가 못이 다리에 박혔던 사람이 파상풍으로 다리 하나를 무릎 아래로 잘랐다"면서 "그 애기엄마 치료 잘 해야 한다고 꼭 전해 달라"고도 당부하셨다.

재개발로 지역 노인분들이 돌아가셨다고도 했다. 평생 모은 재산인 집을 잃게 되자 조합측과 싸우다가 다음 날 '혈압이 올라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다고 했다. 어떤 분은 "내가 지금 이 나이에 경기도 어디에 가서 살겠냐"며 하시다가 '홧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고도 했다. 또 한 분은 아들네와 경기도로 이사를 가고도 여기가 그리워서 계속 버스를 타고 여기를 방문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할머니들께서는 삼삼오오 모여 화투담요를 펴셨다. 울긋불긋 정겨운 화투장들과 십 원짜리 동전들이 보였다. "우리 이 재미로 살지." "두 판만 하자, 나는 3시에는 가봐야 해. 가서 반찬이라도 해 놔야지. 딸네 얹혀사는 사람이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래?"

할머니들은 그날, 주말에 담글 김장양념을 구입하고 돈 계산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 주 주말에는 모여서 김장을 담그셨다. 비싸서 많이는 아니지만 겨울을 날 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2층 할아버지 회장님과 총무님은 서대문구청에서 '새로운 경로당 자리를 알아보면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여기저기 부동산도 알아보고 돌아다니셨지만, 결국 구청으로부터 '그런 소리 한 적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서대문구청 노인복지담당 팀장은 12월 14일, 서대문구청을 방문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1월 30일 북성경로당에 갔으며, 이후에도 동사무소 사람들과 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를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의 법은 '가진 자, 법을 아는 자만이 이용해 자기의 배를 불리는 수단'일 때가 많은 반면, 프랑스의 법은 '도움이 필요한 계층, 노년층, 힘든 일로 평생을 고생한 노동자계층에게 그 수고를 보상하기 위해 나오는 연금 등을 명시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라고 한다. 두 번의 전쟁을 겪고 지금의 남한사회를 다시 세우는데 평생을 보낸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불쌍한' 복지 수혜의 대상이 아니다. '복지'는 그 공로에 대해 그분들께 당연히 돌아가야 할 명예이며 예우이다. "함께 모여 네 달 동안 겨울을 날 수 있게 해 달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근거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조합을 주민들은 더 이상 용서못한다. 재개발 온몸으로 저지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의 흔적이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조합을 주민들은 더 이상 용서못한다. 재개발 온몸으로 저지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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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아현, #뉴타운,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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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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