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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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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는 불교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었던 스님 중 하나입니다. 불교는 집착이 모든 고통을 낳는 원인이라고 가르치는데 임제는 이것과 연관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인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종류의 권위가 집착을 낳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지요."

당당함.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가 꼽은 임제 철학의 핵심이자 매력이다. 강 박사는 지난 1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 아홉 번째 수업에서 선불교 승려 임제에 대해 강의했다.

임제의 말을 기록한 <임제어록>을 교재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강 박사는 "임제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은 무엇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게 주인이 될 때만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며 '어느 곳에 이르든지간에 주인이 된다면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참될 것(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임제의 말을 전했다.

선불교 "각자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이 목적"

임제는 당나라 선불교 승려로 본명은 의현이다. 그는 생전에 경론으로 불법을 주장하는 이들을 타파하며 사람들에게 말로써 불법의 핵심을 제시하여 깨닫도록 했는데 <임제어록>은 그가 죽은 후 그의 가르침들을 제자인 삼성혜연이 편집하여 기록한 것이다. 강 박사는 화두를 통해 선불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선불교의 특징은 경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좌선이나 참선을 하면서 각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이 목적이지요. 선불교의 묘미는 화두에 있는데 화두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실마리가 되는 일종의 질문입니다. <벽암록> 같은 책들을 보면 선불교에서 내려오는 유명한 화두들과 그에 대한 답들이 적혀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언뜻 봐서는 왜 그 질문에 그 답인지 이해하기 어렵지요."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은 중국 선종의 1대 조사인 보리달마와 관련된 유명한 화두다. 달마의 후계자인 조주는 한 제자가 그같이 묻자 '정원의 동백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강 박사는 "한국의 고승인 성철스님의 화두는 '왜 나무판때기에 이빨이 생기는가'였다"고 설명했다.

"임제를 설명하기 위해 좋은 화두가 하나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고승이 무지막지하게 생긴 죽장을 들고 제자들 앞에서서 묻습니다. '이 매가 있느냐 없느냐? 매가 있다고 답해도 때릴 것이며, 없다고 해도 때릴 것이며, 침묵해도 때릴 것이다. 매가 있느냐 없느냐?'. 고승은 그렇게 물으며 제자들을 후려패기 시작합니다.

이 화두의 답은 '새가 날아간다' 입니다. 보통 고승처럼 물어보면 눈앞에 있는 매에 집착하게 되지요. 더구나 스승 아닙니까. 새가 날아간다는 대답은 매가 있다는 대답도 없다는 대답도, 침묵한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어느 상황에나 맞는 정답도 아니지요. 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집착이나 권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깨달음인 것입니다."

"불가의 깨달음 얻으려면 일체의 집착 버려야"

임제의 철학은 사실 무척 간결하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일체의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강 박사는 "임제가 깨달음을 얻었던 대우선사와의 일화를 보면 임제의 철학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화상이라는, 혼자 초암에서 기거하기를 좋아하는 고승이 있었어요. 임제는 대우화상이 영리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갑니다. 그는 밤새 대우화상 앞에서 유가론(瑜伽論)을 이야기하고, 유식(唯識)에 대하여 설명한 뒤에 다시 이런저런 문제들을 질문하지요.

이 때 대우화상은 밤새도록 초연히 앉아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더니 아침이 되자 임제에게 "홀로 초암에 살고 있는 노승이 그대가 먼 길 온 것을 생각해서 하룻밤 묵어가도록 했는데, 그대는 어젯밤에 어째서 내 앞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방귀를 뀌어댔는가?"라고 말하며 죽장을 들어 임제를 후려칩니다.

임제는 얻어맞아 다친 몸이 낫자 다시 한 번 대우화상을 찾아가고 또 맞고 옵니다. 두번째 구타에서 깨달음의 실마리를 얻은 임제가 한 열흘 가량 쉬고는 다시 대우화상을 찾아가니 대우화상은 임제를 보자마자 또 방망이를 들고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임제는 재빨리 방망이를 빼앗고 대우화상을 껴안은 채 쓰러져서 대우화상의 잔등을 두어 주먹 때리지요.

그러자 대우화상이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합니다. '내가 초암에 살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한 아들을 얻었구나!' 대우화상은 자신의 권위에 초연할 수 있는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 박사는 "임제는 불법에 부합되는 견해를 얻으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며 "그는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리라고 가르쳤는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말이 여기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 속에 부처가 있으면 나는 계속 부처가 되고픈, 배우는 사람에 머물게 됩니다. 아버지가 있으면 나는 계속 자식인 자리에 머물게 되지요.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말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집착하게 되면 두 사람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벗어나야 두 사람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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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박사는 "<임제어록>에는 집착을 버리는 방법 중 하나로 '무위진인(無位眞人)'이 제시되고 있다"며 "무위진인은 위 즉, 자리가 없는 참다운 사람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는 아들, 선배에게는 후배 등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며 "무위진인이 되라는 것은 각자가 매여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당당해지라는 주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어느 곳에 이르던지 간에 주인이 된다면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곳이 모두 참될 것(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임제어록>의 구절이 임제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임제는 주인이 되어 서 있는 그곳이 바로 해탈의 커다란 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강신주, #임제, #철학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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