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
▲ 채표지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마르끄 슬로님의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은 저자가 3년에 걸쳐 집필한 도스또예프스키의 전기로 도스또예프스끼라는 위대한 작가와 그 작가의 인생에 관여했던 여성들과의 관계사를 추적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 여성은 세 사람. '마리야 드미뜨리예브나'와 '아뽈라니리야 수슬로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생애를 배경으로 깔고 그의 고난에 찬 삶과 문학 그리고 사랑 등을 폭넓게 다루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여자들, 그 여자들과의 사랑과 갈등, 관계와 영향 등에 집중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독한 궁핍과 여성편력, 질풍노도와 같은 사랑과 열정, 간질병 발작, 문학과 돈, 긴 유배생활,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복잡한 인물이었던 그의 성향과 사랑 등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사랑'(제1장)에서는 시베리야 유형생활과 출생, 성장배경, 첫사랑, 마리야와의 사귐과 결혼 등을 적고 있다. 1849년 12월 22일 아침, 부따세비치-뻬뜨라셰프끼 서클 회원 20명이 형장으로 실려 가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 가운데 도스또예프스끼도 있다. 음모에 가담해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사설 인쇄소를 통해 반정부서적을 유포하려고 기도했다는 이유였다.

사형수였던 도스또예프스끼는 극적으로 사형 집행이 중지되고 풀려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옥살이 4년간을 그는 "관 속에 생매장을 당했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끝없는 고통이었다"라고 편지에 썼다. 물질적 곤궁과 신경성 발작, 다리의 류머티즘, 위장병, 모욕과 학대,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는 살인자와 도둑 폭력배 미치광이 같은 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완전한 고독 속에서 홀로 지낼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4년을 보냈다."(p19)

도스또예프스끼의 감옥살이의 처참한 환경에 대해서는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1854. 2. 23.)에 잘 나타나 있다. 나중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하숙을 하면서 하숙집의 딸 중 작은딸과 친해지게 된다. 엘리자베따 니꼴라예브나(미하일로브나) 네보로또바는 처녀로 죽기까지 편지를 간직하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첫사랑의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만난 '마리야'는 교제하기 까다로운 여자였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걱정거리나 사소한 말다툼으로 자주 편두통을 앓았고 끊임없이 흥분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런 마리야를 사랑한 것은 어린 시절의 인상에서 이해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뒤에 가서 결혼의 의무 대신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쾌적한 가정도 사랑도 없는 결혼생활이 되고 만 것이다. 그의 유일한 기쁨의 근원은 작품 쓰는 일이었다.

마리야 드미뜨리예브나의 흔적은 도스또예프스끼의 많은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나따샤, <죄와 벌>에 나오는 마르멜라도프의 아내, 부분적으로 <백치>의 나스따시아 필리뽀브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까쩨리나. 창백한 뺨, 열에 들뜬 눈길, 돌발적 행동의 소유자 등 여기에 등장한 여인상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첫사랑이었던 마리야에게서 불려나온 인물들인 셈이다.

'영원한 친구'(제2부)에 등장하는 여성은 '아뽈리나리야 쁘로꼬피예브나 수슬로바'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빼쩨르부르크에 정착했을 당시, 대학생 파티에서 그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을 낭송하는 자리에서 만난 여성으로 나이는 스물두 살, 대학에서 청강을 하고 있었다. 아뽈리나리야가 먼저 구애를 해왔고 그녀의 편지에 답하고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된다. 마리야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수슬로바와 죽어가는 병든 아내와 헤어질 수 없는 도스토예프스키 사이의 갈등으로 그들의 사랑은 평탄치 못했다.

아뽈리나리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여동생 두냐,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 <백치>의 아글리야, <미성년>의 아흐마꼬바, <영원한 남편>의 여주인공, <악령>의 리자,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의 까쩨리나, <노름꾼> 등에서 여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마리야에게서도 아뽈리나리야에게서도 그가 원하는 가정의 평온함이라 쾌적함을 얻을 수 없었고 늘 빚에 쪼들렸다. 그의 형이 죽은 뒤 그의 형수와 형의 자녀들, 마리야의 전 남편한테서 난 아들 등을 그는 혼자서 다 부양했고 돈이 남아 있을 날이 없었다. 간질과 도박, 작품과 사랑…. 그런 가운데서도 작품 쓰는 데 마음을 쏟았다. 그가 얼마나 안정을 원하는지 '브랑겔'에게 쓴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장편소설이란 것은 시적인 일로서, 그것을 쓰려면 정신의 안정과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나는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감옥에 처넣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줄임) 나는 여러 가지 질병과 간질, 학질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도 못하고 보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줄임) 착한 친구여, 당신은 적어도 가정적으로 행복합니다만(브랑겔은 그때 결혼했었다) 나는 그 유일-최대의 인간 행복을 운명으로부터 거부당한 것입니다."(p202)

'행복한 결혼'(제3부)에서는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의 말 그대로의 행복한 결혼생활 얘기가 나온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의 삶이 안정을 되찾게 된 데에는 처음엔 도스토예프스키의 개인 속기사로 만났다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여인 안나 바실리예브나 꼬르빈-끄루꼬프스끼야'가 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반한 안나는 이제 막 스물한 살. 안나와 도스또예프스끼는 25년 차이.

전 아내였던 마리야가 사교계에서의 역할과 손님과 정식 만찬 등을 꿈꾸었던 여성이었고 아뽈리나리야 역시 화려하게 나타가기를 좋아한 여성이었지만 안나는 사교계엔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그런 데 현기증을 느꼈고 이 점은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와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의 결혼생활의 비결에 대해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지 몇 년 뒤) 스스로 이렇게 밝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장서는 빠샤가 헐값에 매번 팔아먹었고 채권자들은 이리 떼처럼 덤벼들고 식구들과 생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안나는 지혜롭게 행동했다. 채권자와의 협상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제쳐 놓았고 집안 살림과 금전적인 모든 난제들을 안나 자신이 떠맡아 그를 보호해주었다. 부채청산 기간은 길었지만 잘 처리했고 그녀는 또 남편의 작품을 관리하는 출판업자가 되었다. 소액으로 제공되던 인세를 고정적으로 만들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저작권 일체를 아내에게 맡겼다.

"14년 동안 도스또예프스끼와 같이 살면서 안나는 적지 않은 수모와 불안, 불행을 겪었지만(1875년에 태어난 둘째 아들 알렉세이는 곧 숨을 거두었다) 한 번도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자기는 위대한 작가의 친구이며 자기의 사랑은 그를 위해 일상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을 어리애처럼 보살피고 그를 위해 아이들의 교육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단호히 희생했다. 그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고 업무비서와 회계 임무를 떠맡고 소설을 정서하고 첫 독자이자 비평가이며 교정원이 되고, 새로운 장이나 새 작품의 구상을 경청하느라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우수와 질병, 죽음의 공포가 덮쳐 올 때 그를 위로해 주고, 도박-질투-생트집-피해망상증의 폭발을 아무 불평 없이 견뎌냈다. 그것은 진정한 헌신적 행위였다. 그녀는 도스또예프스끼를 위해 자신을 바쳤고, 수도사의 길을 걷듯 온갖 어려움과 고뇌의 길을 걸었다. 죽을 때까지 그녀에게 숭고한 가치였던 임무를 위해, 그녀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소설 속에서 말하는 활동적인 사랑의 전범이었다."(p308)

도스또예프스끼는 50세가 훨씬 넘어서야 안정된 생활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함께 했다. 산책, 독서, 대화…. 하지만 60이 넘어도 도스또예프스끼의 질투심은 여전했고 정열적이었다 한다. 그는 불간섭주의 안나와 함께 살면서 도박병에서도 완전히 놓여났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죽던 날, 그는 아내를 불러서 그가 감옥에서 가져왔던 복음서를 아무데나 펼쳐서 윗줄 몇 줄을 읽어달라고 했다. 안나가 펼친 곳은 <마태복음 3장 14~15절이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였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들었지. 지금은 이대로 하시오. 그러니까 나는 곧 죽을 거란 말이오. 안나, 기억하시오. 나는 항상 당신을 열렬히 사랑했고 공상으로도 당신을 배신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소."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안나는 그때 나이 35살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을 위해 봉사하는 데 온 삶을 바쳤던 것이다. 

"1906년 5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문헌 목록을 편찬하고 모스끄바역사 박물관 부속원고-유물-초상화부를 만들고 스따라야 루사에 도스또예프스끼 학교를 설립하고 그의 편지와 간단한 수기를 수집하고 친구들에게 연보를 쓰게 하고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했다. 그녀는 자신의 여가 시간을 그의 문학유산을 조직하는 데 전부 바쳤다."(p306)

도스또예프스끼의 출생에서부터 성장배경, 문학사랑, 간질, 사형에서 극적 사면, 시베리아 유형생활과 그의 사랑, 도박병, 평범하지 않은 기질과 특성들, 그가 사랑한 여성들, 행복한 결혼생활과 최후까지. 그리고 도스또예프스끼의 사후에도 그를 위해 살았던 한 여인. 감동이다. 지혜롭고 현명하고 유능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

한편으로는 이 전기는 남자의 편에서 썼다는 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성 전기작가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전기, 그것도 여성과 관련된 책을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다. 어쨌든 도스또예프스끼의 불안정했고 불행했던 삶에도 말년에 행복이 주어졌었다는 것에 깊은 위로가 된다. 안나라는 아내가 있었기에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문학세계는 지금도 더 빛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여자 안나, 한 여성의 위대함을 본다.

덧붙이는 글 | <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 마르끄 슬로님 씀, 이종진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11년 1월, 1만5000원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

마르끄 슬로님 지음, 이종진 옮김, 열린책들(2011)


태그:#도스또예프스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