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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에 선관위 홈페이지 일부 기능이 정지된 것과 관련해 '나꼼수'가 '선관위 내부자 소행 의혹'을 제기하면서 선관위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만일 이러한 의혹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그 파장은 심상치 않은 수준까지 번질 것이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선거 관리위원회'가 앞장서서 '부정선거'를 획책했다는 것은,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불공정 선거'를 기도했다는 의미에서 바로 '체제부정'과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드리워진 의혹의 사실관계를 떠나, 그동안 선관위의 축적된 행태가 이번 의혹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 이를테면 이명박정권 출범 전후와 지금까지 선관위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어 왔으며, 그 연장선상에 이번 '선거부정 선관위 개입의혹'도 존재하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여지껏 선관위의 역할이 이론의 여지없이 공명정대했더라면 이번 '나꼼수'측의 주장은 결코 지금과 같은 파괴력을 가질 수 없다.

조금만 과거로 가보자. 소위 '선관위 유권해석'이라는 것이 있다. 선관위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그 파괴력을 여실히 증명했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매체를 통한 '개인간 의사표현'에 대해서 선거법 저촉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하여 대중적 선거 참여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진정 의사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인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태도였다. 가장 기본권에 속하는 '의사표현의 자유'가, 그것도 선거라는 특수한 기간이어서 더욱 더 격려되어야 마땅한, 후보자에 대한 '개인적 의사표현'이 왜 선관위의 관찰/개입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현대 국가에서 선거란 중요한 사회적 변화나 대중의 욕구를 잘 수렴해 좋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선거는 현대사 이전 역사적 격변기의 상징인 시민혁명이나 폭동, 내란 등과 같은 대체로 폭력적인 최악의 수단을 피하고 '일상적 국가제도'를 통해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유지와 변화를 꾀하는 상식적인 제도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서로 각축하는 후보자 혹은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다양한 방식의 의사표현을 통한 '호불호'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다. 선거기간에서의 다양한 의사표현은 과거의 '죽창'과 '곤봉'을 대체하는 가장 평화적인 수단이다.

선관위는 선거철이 되면 공중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해가면서 '선거참여'를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대목에서는 사실상 고조되어 가는 선거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다수의 선량한 유권자들을 '범법자', 혹은 '예비 범법자'로 만들었던 바 있다. 조금만 더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다수의 누리꾼들은 선거법 93조(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을 통한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금지조항)와 관련하여, 법조문에서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온라인 상의 개인적 의사표현'이 문제가 되어 '선거법 위반사범'으로 몰아 부쳐졌다. 천여명 이상의 누리꾼들이 이명박 당시 후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또는 온라인에서 부각되고 있던 문국현 당시 후보, 혹은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에 처해진 바 있다.

당시 경찰의 입건, 검찰 기소의 법적 근거는 바로 선관위의,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기본권과도 배치되는 '선거법 유권해석'에 있었다. 누리꾼의 입을 꿰맨 이명박후보의 압승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며, 당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던 BBK의혹도 그 파괴력이 반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거대 기구나 조직이 존재하는 국가는 불행하다. 통일을 실질적으로 포기한 듯 보이는 통일부, 4대강 사업과 같은 과거회귀적 대규모 토건 사업에 대해 입을 닫고 오히려 '환경적으로' 문제없다고 두둔하는 환경부, 한미FTA를 통해 국가의 '경제주권'을 사실상 미국에 헌납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감으로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외교통상부, 이번과 같이 '부정선거 개입의혹'에 휩싸여 있는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포괄하는 이명박 체제는 그래서 모두에게 불행하고 위험하다. 부여되어 있는 고유한 국가제도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측면에서는 어쩌면 그들 자신조차 불행한 셈이다.

옛말에 '배운 도둑놈이 더 무섭다'는 표현이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신의 사리사욕에, 출세욕에 눈이 멀어 자신이 배웠던 교과서 속의 도덕과 정의는 졸업한 학교의 책가방 속에 쳐박아 버리고, 썩어가는 세상에 편승해서 영혼을 팔아버린 '유능한 공직자'들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알고도 저지른 잘못은 그 책임이 더 무겁고 크다. 현재 선관위에 드리워진 의혹도 어찌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하지만 해법은 존재하리라 믿는다. 모든 사람이 다 썩었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음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을 망각하지 않고 '국가의 공정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분투하는 다수의 선량한 공직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힘을 믿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야 마땅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선관위#선거법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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