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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카 타입의 미니 CUV 레이가 제주도 해안을 배경으로 서 있다.
박스카 타입의 미니 CUV 레이가 제주도 해안을 배경으로 서 있다. ⓒ 정영창

네모난 상자 형태의 '박스카'가 나왔다. 덩치(1000cc)가 작은 경차 '레이'다. 모닝과 같은 플랫폼(뼈대)에서 생산된다. 디자인만 다를 뿐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도 같다. 출생기록만 보면 싱겁다. 모닝과 별반 다른 게 없다. 심장(엔진)과 변속기 등 핵심부품을 공유하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기아차는 왜 레이를 만들었을까? 국내 경차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모닝이 있는데도 굳이 레이를 내놓는 이유가 궁금했다.

파격적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 '경차 혁신'?

"레이는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을 중점적으로 개발, 모닝과 차별화했죠. 특히 조수석과 동승석의 경계를 구분하는 B필러(조수석 앞문과 뒷좌석 옆문 경계 기둥)를 없애고, 옆으로 밀어 문을 여닫는 슬라이딩 도어를 새롭게 넣었습니다. 기술의 혁신을 시도한 셈이죠."

지난달 29일 제주도에서 열린 레이 신차발표회에서 만난 기아차 임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레이는 SUV(Sports Utility Vehicle,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와 미니밴의 장점만을 뽑아낸 다목적 차량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레이를 미니CUV(Crossover Utility Vehicle)라 부른다고 한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큰 뜻은 없다. 자동차 회사들이 차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마케팅 단어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기아 임원 말대로 레이의 공간 활용성은 기존의 경차(모닝·쉐보레 스파크)보다 우수하다. 문제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 가솔린 모델을 기준으로 레이의 판매가격은 1240만~1495만 원이다. 경쟁모델인 모닝(825만~1235만 원), 쉐보레 스파크(829만~1280만 원)보다 가격이 비싸다. 이유는 고급 옵션(선택품목)을 달았기 때문이란다.

새로운 편의장치를 기본 장착해도 정해진 개발비용에서 흡수하지, 신차 가격에 전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경차가 중형차 수준의 호화 옵션을 달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중형차 수준의 럭셔리한 옵션으로 무장한 레이를 제주도 일대에서 시승했다.

레이, 충분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가?

 레이 실내는 경차답게 심플하며 단순하다. 기어박스가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
레이 실내는 경차답게 심플하며 단순하다. 기어박스가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것이 특이하다. ⓒ 정영창

생김새는 상자 모양 디자인으로 모닝보다 훌쩍 커졌다. 단순히 키만 커진 게 아니다. 제 몫을 하게끔 만들었다. 우선 차가 위로 우뚝 서다보니 공간이 넓어졌다. 간단한 물건이나 큰 짐은 쉽게 넣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외모로만 보면 폼이 나지 않는다. 단지 깜찍하고 귀여웠다. 좀 허풍(?)을 떨자면 '장난감' 같았다. 마치 초등학생들의 미술시간에 나올 만한 그림을 보는 듯했다. 눈이 호강(?)하기보다는 놀라움에 더 가깝다. 국산차에서 볼 수 없었던 상자 모양의 모습 때문이다. 박스카 레이를 본 첫 느낌은 이랬다.

레이는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화려하고 세련된 맛은 더욱 없다. 제한된 경차규격(길이 3600mm, 너비 1600mm, 높이 2000mm)에 맞춰 '폼 나게'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에 작은 체구의 장점을 살려 귀여움을 살렸다. 개구리 눈 모양의 불쑥 튀어나온 헤드램프나 앞뒤 바퀴를 감싸는 휠 하우스에 포인트를 준 점이 그렇다. 

반면, 엉성한 느낌을 준다는 평도 나온다. 기아차 패밀리룩(호랑이코 모양)을 적용한 라디에이터그릴은 가로로 길게 늘여져 심플한 맛이 없다. 뒤 범퍼도 너무 돌출돼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B필러 없애고, 슬라이딩 도어 사용... 기존 경차보다 '쓰임새 다양'

 레이는 2열 슬라이딩 도어를 채택했고 B필러(조수석 앞문과 뒷좌석 옆문 경계 기둥)를 없애 실내공간이 넓어 개방감이 돋보인다.
레이는 2열 슬라이딩 도어를 채택했고 B필러(조수석 앞문과 뒷좌석 옆문 경계 기둥)를 없애 실내공간이 넓어 개방감이 돋보인다. ⓒ 정영창

칭찬할 만한 아이디어도 있다. 앞문과 뒷문 사이의 기둥인 B필러를 없앤 점이다. 대신 고강도 수직빔을 기둥자리에 넣어 힘을 받게 했다는 것. 국산차엔 최초로 적용했다. 레이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뒤쪽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한 것도 신선해 보였다. 덕분에 실내 공간 활용도가 높아졌다.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 쓰임새가 다양해졌다는 뜻이다. 이 부문이 레이 개발의 핵심 포인트다. 실제로 덩치 큰 성인 남성이 타고 내리는 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시승회에 앞서 실내를 꼼꼼히 살펴봤다. 일단 차가 높고 다양한 수납함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는 길이×너비×높이가 각각 3595x1595x1700mm다. 모닝과 비교해 높이만 달라졌다. 천장이 모닝보다 215mm 높아진 것. 따라서 뒷좌석 의자를 접으면 초등학교 3학년(평균키 133㎝) 정도의 아이들이 서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란다.

껑충 커진 차 높이로 인해 유모차를 접지 않고 바로 싣거나 화분, 스노보드, 스키, 산악자전거 등도 넣을 수 있다. 조수석 문도 90도로 열려 아이들이나 노약자들이 내리고 탈 때 부담이 없다. 슬라이딩 도어를 확 열어보면 더 공간이 넓어 보인다. 특히 아이를 둔 여성운전자나 자영업자에게는 쏠쏠함을 더해 줄 듯하다.

실내에는 곳곳에 아기자기한 수납공간을 달았다. 운전석과 조수석 천장과 뒷좌석 바닥, 글로브 박스 등 공간이 허용되는 부문에는 모두 마련했다. 실용성은 모닝이나 스파크에 비해 뛰어나 보인다. 작은 체구의 경차이면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실용성을 높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개인적으론 실내공간과 다양한 수납공간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과연 '경차기준' 바꿀 수 있을까?

 레이는 카파 1.0 리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78마력, 최대토크 9.6kg·m, 연비는 리터당 17.0km에 달한다.
레이는 카파 1.0 리터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78마력, 최대토크 9.6kg·m, 연비는 리터당 17.0km에 달한다. ⓒ 정영창

운전석에 앉았다. 차가 높아서인지 전방 시야가 확 트여 보인다. 시원스럽고 답답함이 없다. 특이한 것은 4단 자동변속기가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점이다. 공간 확보에 불편한 감은 딱히 없지만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선택사양으로 들어가는 음성인식 기능의 7인치 내비게이션의 화면은 선명한 편이다. 에어컨 등 공조장치들의 디자인은 밋밋하다. 좀 더 개선했으면 한다. 센터페시아나 대시보드의 소재는 딱히 고급스럽지 않다. 물론 경차라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원가절감 티가 난다.

시승차는 카파 1.0 리터 엔진을 얹은 최고급 프레스티지 모델이었다. 최고출력 78마력, 최대토크 9.6kg·m, 연비는 리터당 17.0km에 달한다. LPG 연료가 소모되면 가솔린 연료를 사용하는 바이퓨얼 엔진도 나왔다.

버튼 시동키를 누르고 가속페달에 발을 올렸다. 첫 출발은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탄력을 받고 치고 나가는 데 약간의 시간이 요구된다. 한 박자 쉬고 나면 제대로 반응을 보이면서 탄력을 받는다. 시속 100km 이내의 중저속 구간에서 밟으면 RPM(1분당 회전수)이 급격 상승하면서 엔진음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심하다. 하지만 무리 없이 달린다. 120km/h를 훌쩍 넘어서는 버겁다.

핸들링은 공차중량 998㎏ 무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급 코너링을 만나게 되면 조심스러워진다. 차가 높아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공략지점을 잘 찾아 쉽게 돌아 나선다. 그래도 코너 구간을 만나면 사전에 브레이크를 한 번 잡고 천천히 움직여야 안전할 듯 싶다. 브레이크의 반응은 빠르다. 서스펜션은 적당히 단단하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약간의 충격이 따르지만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짐을 많이 실었을 때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레이는 경차다. 한계가 있고 쓰임새가 다르다. 작은 차에 무리한 달리기 성능을 요구할 수는 없다. 편안한 승차감과 가속성은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 레이의 변신이 경차의 기준을 바꿔 놓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제주도 서귀포시 일대를 질주하고 있는 레이.
제주도 서귀포시 일대를 질주하고 있는 레이. ⓒ 정영창

가격이 너무 비싸다. 가솔린 모델은 1240∼1495만 원, 가솔린과 LPG를 함께 쓰는 바이퓨얼 모델은 1370∼1625만 원이다. 이 정도의 가격은 쏘울의 기본 모델(1355만 원)보다 높다. 경차가 아니라 준중형차급이다. 경차는 좋은 연비와 싼 가격이라는 콘셉트를 벗어나면 안된다. 옵션(선택품목)을 잔뜩 달게 되면 경차인데도 소형차나 준중형차에 버금가는 수준에 이른다.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은 선택을 꺼리게 된다.

소비자들이 필요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으면 한다. 이른바 마이너스 옵션제 같은 것 말이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신차개발 초기부터 모두 집어넣는 것은 개선해야 할 것같다. 레이가 출시되자마자 소비자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것도 옵션 때문이 아닌가. 레이는 기본 옵션 이외에 쓰임새가 다양한 품목들을 별도로 묶은 패밀리(50만 원)와 엘레강스(70만 원) 패키지 옵션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보면, 유모차를 접지 않고 싣거나 큰 짐을 실기 위해서는 뒷좌석 슬라이딩과 6대4 폴딩(좌석을 분할해 접은 방식) 기능을 선택해야한다.

그런데 이 기능은 패밀리와 엘레강스 패키지에 묶어났다. 레이의 최대 장점인 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패키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게다가 기본 모델인 디럭스(1240만 원)와 스페셜(1290만 원)에는 이 기능을 넣을 수가 없다. 고급형인 럭셔리(1375만 원)나 프레스티지(1495만 원)만 가능하다는 것. 경차는 프리미엄 럭셔리자동차가 아니다.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분명, 이부문은 개선돼야 한다.

레이의 전체적인 실내 마무리가 다소 떨어지는 점이 아쉽다. 원가절감을 이유로 고급 소재를 사용하지 못하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걸 핑계로 대충대충 정리하면 안 된다. 고객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작은 것부터 나온다. 시트의 바느질이나 창문 틀 고무 등 세심한 부문까지 살펴봤으면 한다.

또한, 안전성과 관련해서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앞문과 뒷문사이의 기둥인 B필러를 없애고 그 자리에 일반 승용차보다 2배 이상의 고강도 수직빔을 사용,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여전히 걱정된다. 빠른 시일에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서 시험테스를 거쳐 확실한 인증을 받아내야한다. 소비자는 냉정하다. 더욱이 서민의 발로 비유되는 경차를 구입하는데 있어서는 민감하다. 모닝에 이어 레이도 경차시장에서 독주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답은 오직 소비자들에게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 정영창 기자는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닝> 취재부장입니다. 이 기사는 오토모닝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레이 제주도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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