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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에서 노래하는 백자
 11월 23일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에서 노래하는 백자
ⓒ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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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정말 기사를 쓰고 싶지 않다. 11월 30일 '백자'의 콘서트를 보고 온 지금, 나는 이런 인터뷰 기사가 아니라 시를 쓰고 싶다.

이름도 다 모를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가 텔레비전과 길거리를 점령하면서부터 노래를 통해 '서정'을 만날 일이 많이 적어졌다. 하지만 작은 공연장에 잔잔히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백자의 울림 있는 목소리를 통해, 오랜만에 소싯적 '문학청년'의 서정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고나 할까.

백자가 누군가 하고 생소하게 느낄 분들이 있겠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에서 불린 <다시 광화문에서>를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진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의 싱어송라이터다. 2009년 소품집 <걸음의 이유>를 내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해, 지난해 솔로 1집 음반인 <가로등을 보다>를 냈다. 그가 11월 23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서울 장충동 웰콤씨어터에서 '걸음의 이유'라는 이름으로 첫 단독 장기 콘서트를 열고 있다.

백자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로 시작하는 <혁명동지가>로 백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 콘서트가 좀 낯설 것이다. 거리에서 '팔뚝질' 하며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래들이 아닌, 잔잔한 선율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듣는 이를 위로하는 서정적인 노래들로 콘서트는 채워졌다.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은 오후 10시쯤 끝났고, 무대 뒤에서 한숨 돌리는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기타 두 대만으로 관객과 나누는 '깊은 대화'

이날은 3주간 모두 16번 열리는 장기 콘서트 가운데 6번째 공연이 열린 날이었다. 콘서트 일정의 3분의 1 정도를 소화한 지금의 소감이 궁금했다.

"역시 매일 매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목 관리 때문에 각별히 긴장하고 있어요. 사실 11월 초에 감기를 한번 걸려서 요즘 회복하고 있는 상태죠. 매일 두 시간 동안 에너지를 쏟아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원래 술도 많이 마시는데 9월부터 술도 끊었어요. 살도 3~4킬로그램 정도 빠지고."

11월 23일,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싱어송라이터 '백자'의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 모습
 11월 23일,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싱어송라이터 '백자'의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 모습
ⓒ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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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가수로 살아온 그도 이런 긴장을 느낀다니 조금 뜻밖이다. 무대에 오를 때 신발을 벗고 맨발로 공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무대 위 모니터스피커에 발을 살짝 얹은 모습이 말 그대로 음악을 피부로 느끼는 모습인가 싶었는데, 사실 그것도 긴장감을 덜려는 뜻이었을까.

"맨발로 공연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편안한 것 같아요.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어쿠스틱 공연이니까 더 자연스럽고. 사실은 바닥에 깔린 융단이 녹색이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잔디같이."

1부와 2부 사이 쉬는 시간에 잠깐 나오는 게스트 한 팀을 빼면, 두 시간 동안 무대에 서는 사람은 그와 기타리스트, 딱 두 명뿐이다. 오직 기타 두 대 만으로 모든 노래를 연주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쿠스틱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좀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텐데, 무리한 결정은 아니었을까 걱정이 됐다.

"지난 4월에 공연할 때는 풀밴드로 했거든요. 드럼에 베이스까지 해서. 그런데 이번 공연은 다른 것 다 빼고 가사와 목소리, 그리고 어쿠스틱 사운드 중심으로 들릴 수 있게 가보자고 얘기가 됐죠. 예전에 김광석 선배님도 기타 하나에 베이스 하나로 공연하셨잖아요. 사실 저는 겁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6회 정도 공연을 해보니까 관객과 더 깊게 대화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날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은 10명 남짓. 아무리 60석 정도 마련된 소극장이라고 해도 썰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콘서트 시작 하루 전인 22일부터 시작된 '한미FTA 정국'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농담을 던져봤다. 민중가요 노래패인 우리나라와 백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드느라 콘서트를 보러 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도 "주변에서 저보고 '한미FTA의 최초 피해자'라고 그래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아쉬움은 그것만이 아닐 것 같았다. 광장이 '고향'인 그에게, 콘서트 때문에 그 광장에서 노래하지 못하는 것도 큰 아쉬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거기 마음이 가 있죠. 지난 토요일(11월 26일)에 공연이 없어서 저도 나갔죠. 다음 날 공연이니까 소리는 못 지르고 조용히 '비준 무효' 하면서 촛불만 들고 있었는데, 역시 거기 같이 서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김광석 닮았다' 영광이지만 '넘어야 할 산'

11월 23일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에서 노래하는 백자
 11월 23일 첫 단독 장기 콘서트 '걸음의 이유' 공연에서 노래하는 백자
ⓒ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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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에서 부른 노래는 모두 18곡. 대부분 두 장의 솔로 음반에 담겨 있는 노래였지만 아직 음반에 실리지 않은 신곡도 두 곡 있었다. 그중 바다를 보며 이별이 남긴 '짠 맛'을 노래한 <경포대에서>가 기억에 남았다. 그의 노래는 '서정시' 같은 가사가 주는 감동이 큰데, <경포대에서>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그런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노랫말을 직접 쓰는 그.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 시를 많이 썼어요. 그런데 대학교 때 음악을 하고부터 시가 안 써지더라고요. 뭘 쓰려고 하면 다 가사가 돼버리는 거예요. 경포대는 사연이 많은 곳이에요. 대학시절 수배를 당해서 숨어 있던 곳이거든요. 혼자 쓸쓸히 바닷가를 많이 걸었죠. 최근에 바닷물 3분의 2가 외계에서 온 것일지 모른다는 기사를 읽고 묘한 느낌이 들어서 오랜만에 시를 쓴 건데, 결국 또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곡을 만들게 된 거죠."

지난 4월, <오마이뉴스>에 <그는 김광석을 이을 만한 가수다>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김광석이 1000회 넘게 라이브 공연을 했던 학전블루소극장에서 백자가 사흘간 콘서트를 열었을 때 나온 기사다. 실제로 그의 노래가 주는 '단정한 슬픔'과 '낮은 울음'은 김광석의 노래와 비슷하다. 포크가수의 '전설'인 김광석에 비견된다는 것은 큰 영광일 텐데, 어쩐지 그는 마냥 기쁘지는 않은 표정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 김광석과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첫날 공연에서도 어떤 관객분이 김광석 생각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김광석 선배님의 사람을 젖게 만드는 노래를 좋아하고 공연에서도 가끔 부르는데, 사실 이번 콘서트에서는 김광석 선배님 곡들을 일부러 안 불렀어요. 새로운 백자만의 음악을 만들어야죠. 김광석과 닮았다는 말은 영광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해요."

그의 노래에서 김광석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동준이나 김현식 같은 또 다른 어떤 가수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패 우리나라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백자라는 이름의 가수로서 그는 과거의 누군가를 닮아가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이름을 더 단단히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듯했다. "뭔가 끝없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 스스로 '무리수'라고 말한 이번 장기 콘서트가 그에게는 백자라는 이름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래는 '기다림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을 기다려주고 달래주는 노래. 고단한 일상에 등 떠밀려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정류장에서 듣고 싶은 노래. 그의 노래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느끼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백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서기 위해 도전을 계속하는 그를 기다리고 달래주는 것 또한 아름다운 소통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노래패 '우리나라' 누리집 http://www.uni-nara.com



태그:#백자, #우리나라, #걸음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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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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