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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술’이 아닌 ‘상술’이 된 현실을 그린 <하얀정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술’이 아닌 ‘상술’이 된 현실을 그린 <하얀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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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적지 않다. 자본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보다 많은 재화를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우대를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정도가 다소 과하다. 거칠 것 없는 자본의 흐름은 소비재가 아닌 사람의 몸을 상대로 한 의료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직종 뒤에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붙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그간 의사는 선망 받는 직종이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더 이상 의사를 존중만 하는 시대는 아닌 듯하다. 인술이라는 단어가 추억 속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법한 세상. 지하철과 버스에 경쟁적으로 널린 의료 광고들. 혹은 언론보도를 빙자한 낯 뜨거운 병원 홍보물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011년의 한 자화상이다.

이전투구의 시장바닥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의료계. 이런 현실을 도저히 못 견뎌하는 의사가 있다. 송윤희(NGO 활동가 겸 산업의학과 의사)씨. '미쳤냐?'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의사가 담아낸 한국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 제목은 <하얀 정글>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 영리를 향해 달려가는 의료시장

감독은 영리법인 병원과 의료 민영화를 염려한다.
 감독은 영리법인 병원과 의료 민영화를 염려한다.
ⓒ 하얀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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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60세 당뇨 환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감독은 단 돈 몇 만원이 없어서 병원을 몇 년간 못 갔다는 증언에 의사로서 참담함을 느낀다. 당뇨 합병증까지 와서 소변줄기를 달고 살면서도 치료비 걱정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

그뿐만이 아니다. 감독이 찾은 월곡동에는 독거 어르신들이 산다. 그들 모두 의료급여 혜택을 받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되는 비 급여비용 때문에 불편한 몸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 사실.

무릎관절이 서로 맞붙어버린 한 할머니는 인공관절 수술비용 700만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배에 정체 모를 덩어리가 있는 이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않고,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사망 보험금을 챙겨주겠다는 사례도 있다. 또 부당 청구된 치료비를 돌려달라고 했다가  '재발하면 치료 안 해 준다'는 으름장을 듣기도 한다.

영화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 동료 의사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환자들의 불신을 알지만, 윗선의 지시로 제약회사 리베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 실적 경쟁과 직업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의료진. 몇몇 대형 병원들은 일일이 각 과에서 한 달에 얼마나 벌었는지, 파워포인트로 순위를 매기고 실시간으로 문자까지 보내 의사들을 통제한다.

물론 일부 의사들 역시 욕망을 위해 비윤리적인 방법을 스스럼없이 택한다. 낮은 위 내시경 의료수가를 보완하기 위해 멀쩡한 정상 위도 무조건 생체검사를 해, 한 달 수백 만 원의 추가 이익을 올리기도 하는 것.

대한민국 의료계의 총체적 문제, 누구의 책임인가?

영화는 돈이 있어야만, 환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영화는 돈이 있어야만, 환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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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검사가 남발되고, 국민 총 의료비는 증가하고 그렇게 해야 원활한 경영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의사와 병원들의 모습. 감독은 병원과 제약 자본의 이기심이 직접적인 문제지만, 민간 시장에 의료를 일임한 국가 정책에 그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게 영화는 대한민국 의료의 총체적 문제를 짚어낸다. 그 사이 정말 아프지만 병원을 가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은 고통 받는다. 영화를 지켜보면 환자들과 국민은 특정 산업에 종사해 GDP 수치를 올려주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기계일 뿐이라는 표현이 전혀 극단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은 '하얀 정글'이란 제목에 대해 의사나 간호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외관도 하얀색인 병원과 의료 시스템은 외견상 평안해 보이지만, 내부는 냉혹한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정글 혹은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 결국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부담하게 될 고가 병원 광고의 불편한 진실, 호텔 못지않은 고급 병실 신축에 나선 병원들, 부풀려진 의료장비의 허실, 목이 빠지게 기다려 '30초 진료'만에 돌아서는 환자들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우리시대 의료의 한 모습임이 펼쳐진다.

영화는 공공의료 정책 확대에 소홀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의료 소외계층을 확대시키게 될 의료 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다. 송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원인을 짚고는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하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나 정책 당국이 물적 토대를 검토해 차근차근 마련해가야 할 일이다"

힘들게, 아주 힘들게 만들어진 영화

송윤희 감독은 의사로서 의료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풀어냈다.
 송윤희 감독은 의사로서 의료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풀어냈다.
ⓒ 하얀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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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각종 그래픽 자료와 사진, 내레이션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저 지켜만 봐도 의료체계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송윤희 감독은 "딱딱한 의료문제지만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지난 해 9월부터 9개월가량 촬영됐다고 한다. 인터뷰 대상자는 보건의료사회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개인적인 친분관계 등을 통해 섭외했다고. 예상했던 일이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거절하기 일쑤였고, 잡혀있던 인터뷰 약속을 번복한 경우도 많아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주변의 반대도 심했다고 한다. 한 지인은 의료계의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인데,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며 말렸다고. 가족들도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지만, 같은 의사인 남편이 적극 찬성했다고. 남편의 환자 중 몇 만 원이 없어 병원을 다니지 못한 사람이 있었기에, 바로 그 환자를 보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과잉진료 등 의료시장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제기는 그간 여러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던 일. 감독은 이것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로 그렇지 않은 의사들까지 싸잡는 결과가 올까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그간 보고 겪은 사실을 이런 식으로라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감독은 영화 블로그를 통해 광고비역시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꼬집는다.
 감독은 영화 블로그를 통해 광고비역시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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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에게 무척이나 불편할 이 영화는 한편으론 작은 발걸음의 시작이다. 감독은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실을 다룬 영화 <하얀 정글>의 수익은 모두 사회로 환원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저의 바람은 조금 진보적인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곁의 부모님, 어르신들, 조금 보수적인 분들 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환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시민 분들이 이 영화를 접하고 같이 사회의 문제를 알아가고,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지만, 동시에 현재 2011년 대한민국 사회의 산물이며 공공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짜로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영화로 들어온 재화는 다시 사회로 환원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 개봉 12월 1일.



태그:#하얀정글 , #의료민영화, #송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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