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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신기 마을의 늦가을

상신기 마을의 살림살이
 상신기 마을의 살림살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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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펜션도 사라지고 정말 터줏대감들만 사는 상신기(上新基)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은 개짓는 소리와 집에 널려있는 빨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어귀에 해바라기를 하는 노인이 한두 분 보인다. 그들에게 상신기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물어보아도 잘 대답하질 못한다. 신기라는 이름은 새터라는 뜻이다. 아마도 화전민들이 들어와 새로 마을을 형성하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상신기 마을이 한창 번성할 때는 32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5가구만이 살고 있다. 콩과 깨 같은 밭농사를 조금 하고, 산에서 잣을 채취하면서 살고 있다. 밭에 배추는 모두 뽑았고, 무들은 아직 그대로 심겨져 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무를 어쩜 이리도 잘 키울 수 있느냐고 감탄을 한다. 자기는 무를 키우면 잎만 무성하지 뿌리는 영 시원치 않게 된다면서. 어릴 적 밭에서 무를 뽑아 먹던 생각이 난다. 무밭을 지나자 길은 정말 산속으로 이어진다.

상신기의 무밭
 상신기의 무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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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부터 늦은목이재까지는 인가 하나 없는 산길이다. 산으로 접어들기 전 화전을 일궜던 지역에 억새 군락이 펼쳐진다. 여길 지나자 좁은 산길이 이어진다. 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산길을 사오십 분 걸어 우리는 늦은목이재에 도착한다.

늦은목이재와 내성천 이야기

늦은목이재는 조선시대 봉화와 영양 등 경상도 북부의 오지 사람들이 서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늦은목이재를 넘어 영춘 땅에 이르면 배를 타고 4~5일이면 한양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길은 등짐을 지고 장사를 하던 부보상(또는 보부상)들이 즐겨 이용했다고 해서 보부상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서해안으로부터 올라온 소금과 새우젓을 지고 늦은목이재를 넘어 경상도 산골 마을에 공급했던 것이다.

늦은목이재
 늦은목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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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목이재 고갯마루에는 소백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만들어 놓은 표지판이 서 있다. 해발이 800m이고, 북쪽의 선달산(1236m)까지 1.9㎞, 남쪽의 갈곶산(966m)까지 1㎞이다. 갈곶산을 지나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마구령과 고치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지나 박달령과 도래기재로 이어진다. 선달산은 경상도 북부의 젖줄인 내성천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내성천은 이곳에서 발원해 봉화군, 영주시, 예천군을 거쳐 예천군 용궁면과 문경시 영순면 경계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문경시 동로면과 산양면에서 흘러내리는 금천을 아우른다. 그러므로 세 강이 합류한다고 해서 이곳을 삼강리(예천군 풍양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1900년대 초까지 삼강주막이 있어 안동 예천, 문경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해 주곤 했다.

내성천 회룡포 마을
 내성천 회룡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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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길이가 109.5㎞로 모래사장이 가장 많고 수질이 좋은 하천으로 유명하다. 내성천은 산골지역을 굽이도는 전형적인 사행천으로 영주시 문수면 무섬 마을(수도리)와 문경시 용궁면 회룡포 마을과 같은 절경을 만들어냈다. 그 외에도 내성천에는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의 선몽대, 영주시 순흥면의 죽계구곡 같은 명승지가 있다. 우리는 이곳 늦은목이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생달 마을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소백산 자락길과 외씨버선길이 만난다

푹신한 낙엽길
 푹신한 낙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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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목이재에서 생달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정비가 되어 다니기가 좋은 편이다. 이곳으로 백두대간을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나무와 돌로 계단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산길에 비해 사람들의 통행이 적어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길가로는 조림한 잣나무와 낙엽송 군락이 보인다. 길바닥은 이들 나뭇잎이 떨어져 푹신한 느낌이다. 이런 길을 1㎞쯤 내려가자 콘크리트길이 나타난다. 이곳에 있는 용운사 절에 가기 편하도록 포장도로를 내 준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콘크리트길을 따라 내려간다. 잠시 후 왼쪽으로 사천왕 참배라는 표지판에 나타난다. 뭔가 하고 가 보았더니 바위에 제단을 설치한 단순한 기도처다. 주위를 살펴보아도 사천왕은 찾을 수 없다. 마침 기도하는 사람이 오길래 사천왕상이 어디 새겨져 있나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각상은 없고 그저 바위에 대고 기도하는 곳이라고 말해준다.

외씨버선길 트레킹 행사
 외씨버선길 트레킹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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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 계곡을 따라 더 내려가자 산장이 처음 나타난다. 주목산장이다. 이곳에는 마침 봉화와 영월을 잇는 30㎞ 외씨버선길 트레킹 행사가 11월 11일과 12일(1박2일)에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내용을 보니 11일에 춘양면에 있는 춘양목 체험관을 출발, 주실령과 박달령을 넘고 오전약수탕을 지나 이곳 주목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12일에 늦은목이재를 지나 선달산으로 오른 다음 회암령-어래산-곰봉을 거쳐 김삿갓 문학관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평균 고도가 800m가 넘는 산길로 걷기라보다는 등산에 가까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외씨버선길은 청송군 청송읍 운봉관에서 시작해서 영양, 봉화를 거쳐 영월군 김삿갓면 사무소에서 끝나는 170㎞ 옛길이다. 외씨버선이라는 명칭은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따왔다. 이 길이 외씨버선처럼 그렇게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도 하고 또 이 길을 사뿐사뿐 걸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에서는 버선 대신 보선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이 시를 쓴 조지훈의 고향이 영양이다.

길가에 핀 꽃
 길가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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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온통 펜션촌이 되고 만 선달산 계곡

선달산 계곡의 펜션 및 민박 안내판
 선달산 계곡의 펜션 및 민박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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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산장으로부터는 100m마다 하나씩 펜션이 있다. 일청산방, 신선골 선암산장, 산골쉼터, 수다원, 선달산 민박 등. 조금 더 내려와 선돌골로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니 그곳에도 여섯 군데 펜션 안내판이 보인다. 선달산 계곡은 이제 온통 펜션과 민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맑은 물과 공기 속에서 만년을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생달 마을에는 2010년에 지은 호연정(浩淵亭)이라는 큰집도 보인다. 이 집은 별장 개념으로 지은 것 같다. 물가에 목조 2층으로 집을 짓고 정원도 잘 가꾸었다. 이곳부터는 집들이 여럿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윗말인 사기점 마을에는 상대적으로 펜션이 많은 편이고, 아랫말인 생달 마을에는 상대적으로 현지 주민이 많은 편이다.

생달 마을 세대별 위치도
 생달 마을 세대별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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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달 마을 사람들은 김장도 하고 무청도 말리는 등 겨울 준비에 바쁘다. 마을 입구에 세대별 위치도라는 재미있는 그림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도로를 나뭇가지처럼 표현하고 그 가지에 나뭇잎 형태로 거주자가 사는 모습을 표현했다. 정말 독특한 아이디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곳은 산골인지라 포도나무와 산수유 같은 유실수들을 많이 재배하는 모양이다. 가지를 가지런하게 자른 포도나무가 지지대에 고정되어 있고, 주택 옆 산수유에는 아직도 빨간 열매가 몇 개 남아있다.

물야저수지 위 마을 공터에서 점심을 먹고

이제 우리는 물야저수지 위 마을 공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산내 들내 길을 찾아 걷다 보면 음식을 사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면 적당한 곳에서 도시락을 풀어 밥을 먹는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 할 때 이곳 생달 마을 입구 공터가 좋을 것 같아 그곳에 자리를 편 것이다.

물야저수지 위 포도밭
 물야저수지 위 포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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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까운 곳에 젊은 여학생이 버스 주변을 서성인다. 선달산 산행을 온 일행이 산으로 올라갔고, 그들을 따라가지 못해 버스에서 점심을 먹으며 기다리려 했는데, 버스 기사가 문을 걸고 어디론가 가버려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선달산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쏜살같이 산으로 올라가는 팀을 만났는데 그들이 이 여학생의 일행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들을 보면서 웬 산을 그렇게 빠르게 오르지 하면서 의아해 했던 생각이 난다. 마치 산을 점령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우리는 늦은목이재라는 큰 고개를 넘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번 삼도접경길은 문화유산이 별로 없어 스토리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산경과 생태적인 측면에서 배울 게 많은 특징도 가지고 있다. 부보상들이 애환이 서려 있다고 하니 앞으로는 그들의 이야기도 발굴을 해야 할 것 같다. 이곳 물야면에서 가장 유명한 오전약수터를 발견한 것도 부보상들이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우리의 최종목적지는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봉황산 부석사다.


태그:#상신기 마을, #늦은목이재, #선달산, #외씨버선길, #생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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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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