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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의 보고 굴업도가 골프장 개발이냐, 친환경 관광단지 조성이냐를 놓고 옹진군 주민과 인천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인천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들과 4대 종단 종교인들이 직접 기행에 나서며 굴업도 지키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17일과 18일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 인천불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장로회-생명평화기독교행동 단체의 굴업도 기행에 함께하여 주민들 의견도 듣고 현장을 둘러봤다. 천혜의 비경과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굴업도 곳곳을 상, 하로 나뉘어 사진 속에 담아보려 한다.(기자 주)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굴업도 전경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굴업도 전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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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보다 걷는 게 더 좋은 천혜의 섬, 굴업도

17일 오전 9시 30분. 시간에 맞춰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모인 목사님과 스님들이 부푼 설렘을 안고 배에 올랐다. 2년 전에도 한 번 함께 가봤던 굴업도였기에 마치 고향에 가는 것처럼 혹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그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굴업도 중간 경유지인 덕적도에서 만난 풍경
 굴업도 중간 경유지인 덕적도에서 만난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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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로 가는 여행이었지만 준비물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칫솔과 외투 한 벌, 그리고 손전등 정도. 이유인즉 굴업도 민박을 직접 운영하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굴업리 이장 서인수씨가 모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바다는 말이 없다
 바다는 말이 없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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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불교 대표로 참석했던 보련스님(경운사 주지)은 2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서인수씨 부인이며 '굴업도 민박' 안주인이기도 한 최인숙씨의 음식솜씨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며 그곳에 한 번 갔던 사람은 그 풍부한 자연 의 맛에 매료되어 한 번은 꼭 다시 가게 된다고 전해준다.

굴업도로 가는 물때는 하루에 한 번, 홀수 날과 짝수 날이 있다. 들어가는 날이 홀수 날이면 덕적도를 거쳐 바로 굴업도로 갈 수 있지만 짝수 날이 걸리면 중간에 문갑도, 백아도, 울도, 지도 등을 거쳐 들어간다. 하지만 나오는 길은 반대가 되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 거리는 똑같다. 그리고 매주 들어가는 날이 할인되는 시기가 있어 미리 알아보고 가면 인천시민 할인까지 포함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 여행을 주선했던 윤인중 목사는 가는 배 안에서 내내 기타를 놓지 않았다
 이 여행을 주선했던 윤인중 목사는 가는 배 안에서 내내 기타를 놓지 않았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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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 중간 경유지인 덕적도 가는 길이 비교적 파고가 낮아 멀미에 민감한 여행객도 무난히 뱃길에 몸을 맡길 수 있어 좋았다. 잠시 덕적도에 내려 휴식을 취하고 나자 바로 굴업도 가는 배가 들어왔다. 이때 시각은 대략 오전 11시. 이날은 물때가 홀수 날이라 바로 굴업도로 간다고 선장이 전해준다.

밀물과 썰물의 견고함을 이겨내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던 황금 빛 해안가 풍경
 밀물과 썰물의 견고함을 이겨내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겼던 황금 빛 해안가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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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하늘과 요동치는 파도를 뒤로하고 한 참을 달린 배는 이내 굴업도의 백사장과 먼저 시선을 맞춘다. 섬의 지형이 물 위에 구부리고 떠 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굴압도로 불렸던 굴업도는 그 유래만큼이나 유연한 능선 지형이 감탄을 자아냈다.

전 이장님과 원주민 몇 명 남아
가시라와 골뱅이를 무쳐 밥상을 차려주며
시름 달래는 섬
도회지 사람들만 조심조심 찾아와
마음 다독 거리고 가는 섬
터주대감 먹구렁이가 전설처럼 남아있는 섬
남아있는 사람들과 살 부비며
함께 지켜주고 싶은 섬
굴업도                         - 시인 조혜영의 '굴업도' 중에서                  

인근 바닷가에서 혹은 밭에서 직접 채취하고 키운 무공해 음식들의 향연
 인근 바닷가에서 혹은 밭에서 직접 채취하고 키운 무공해 음식들의 향연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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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과 정오께 도착한 굴업도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점심을 먹었다. 굴업도에서 태어나며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민박집 안주인 최인숙씨의 입담과 손님 맞는 정성을 보고 있노라니 섬 주민 답지 않은 세련미와 섬세함이 묻어나 보인다. 인근 바닷가에서 직접 채취해서 만들었다는 가시리, 생굴, 게, 김 그리고 직접 키워 만든 총각김치까지 모든 반찬이 밥도둑 그 자체였다. 스님 하는 말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음에 또 한 번 감동한다.

"매번 오는 도회지 손님 맞이 하느라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괜찮아요(웃음). 일이 손에 익어서요. 오히려 조그만 섬에 이렇게 찾아주시니 저희가 정말 고맙지요"
"비록 몇 세대 밖에 살지 않고 주민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저만이라도 지켜야죠. 제 고향인데요. 일부 주민들 중에는 개발해서 돈도 많이 받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저는 굴업도가 생태관광단지로 조성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장소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알음알음 우리가 뭘 원하고 있는지 전해주신다면 일방적인 기업의 난개발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보네요. 그것이 굴업도에 나고 자란 주민의 마음입니다."

굴업리 이장 서인수씨의 웃음은 굴업도 그 자체였다.
 굴업리 이장 서인수씨의 웃음은 굴업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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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민박을 운영하며 이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인수씨는 이미 많은 예술인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워보였다. 그는 요즘 민박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굴업도 개발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본인에게는 전혀 득이 되지 않고 오히려 주민들 간에 원성만 듣는 입장인데도, 서 씨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그야말로 굴업도 주인 답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굴업도 탐방에 들어갔다. 기독교 팀은 먼저 연평산과 무기미 해변 방향을, 그리고 불교 팀은 황금 빛 백사장이 내려다보이는 개머리초지 남쪽 산을 올라가기로 정했다.

개머리초지 정상에서 바라 본 바다 풍경.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삼형제 봉이 애처롭다
 개머리초지 정상에서 바라 본 바다 풍경.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삼형제 봉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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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언덕이 산 중턱까지 올라와있는 모습에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오른 개머리초지 정상은 그야말로 갈대밭과 형형색색의 꽃들로 분지를 형성했다. 산 주변으로 사방이 모두 바다니 바람의 세기가 무척이나 견고했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주변부로 들어가자 이내 바람은 멈추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온 것 같은 고요하고 적막한 비경에 그저 가슴만 쓸어 내렸다.

이곳이 과거 개항의 압력에 밀려 각종 무역선들의 중간 경유지로 이용했다는 보고서가 말해주듯, 능선 주변부 곳곳엔 돌로 만들었던 우물 터와 기단들이 놓여 있었다. 우물 터 안에는 땅에서 올라온 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심지어 미나리가 자라고 있을 정도였다.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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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머리초지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산 넘어 산이라는 명칭이 딱 어울릴 정도다. 그만큼 사람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자태와 위용은 감히 인간의 도전의식이 용납할 수 없는 숭고함마저 가득 차 있었다.

잠시 그렇게 돌아본 개머리초지에서 백사장으로 내려오다 보니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 개머리초지와 마주하고 있는 작은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각사각''철썩철썩''쉬이이'하는 소리가 가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해준다.

끝없이 펼쳐진 개머리초지 정상 풍경
 끝없이 펼쳐진 개머리초지 정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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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4시께 도착한 야트막한 산 주변엔 강낭콩 만한 크기의 염소 똥 무더기가 곳곳에 보였다. 듣기로는 이 굴업도 산 곳곳에 사슴과 염소가 가득하다고 했는데 가는 내내 똥만 봤지 염소나 사슴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산을 넘어 또 다른 바다가 발길을 재촉했고, 바다위에 등대처럼 서 있는 연평산을 마주하고 17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쉬운 것은 그토록 아름답다는 일몰의 장관은 날씨 탓에 마주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굴업도  

굴업도는 굴업도다
 굴업도는 굴업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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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군도에는 변경의 비참이 들어있다
목멱산이 되기 위해
황해를 건너오다
그만 먼저 당도한 산이
목멱산이 되었다는 이유로
화가 난 마귀 할멈
주먹으로 산을 내리쳐
산산이 군도가 되었다는
덕적군도의 유래에는 비극이 서려있다        - 시인 이세기의 '굴업도' 중에서)

500년 역사를 품은 천혜의 섬  굴업도는 과거 무인도로 전해졌으며 대형 어종인 민어가 많아 어업에 종사하는 어선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과거 충신들의 유배지로 전해진 굴업도는 유배 충신들의 처절하고 참혹한 광경에 파도 위에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백로 등의 뜻 없는 새들도 운다고 하여 구로읍도라 불렸다. 하지만 역사문헌에는 아직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산신 할매의 정령이시여,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산신 할매의 정령이시여, 굴업도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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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해변을 걷다 보면 선사시대 토기 같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재에서 쓰이지 않고 있는 빗살무늬 토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천작가회의가 최근에 발간한 굴업도 생태 기행 작품집에 따르면, 굴업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은 강화 동막리와 함께 연평도, 오이도, 소야도 등에서 발견된 일너무늬(점무늬) 토기조각이 굴업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개머리초지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개머리초지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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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에는 또한 이름만으로 희한한 생태식물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갯채송화, 갯메꽃, 뗏부르나무, 금방망이꽃, 보라색엉겅퀴, 수크령, 은빛 억새, 소사나무 군락 등등. 이밖에도 왕은점표범나비, 송골매, 검은머리물떼새, 먹구렁이, 두루미천남성, 황새, 검은 물새, 덕물산 왕거미 등의 천연기념물이 굴업도의 주인 노릇을 하며 오랜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연평산으로 향하는 해안가 풍경
 연평산으로 향하는 해안가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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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천금순씨는 말한다. "그대 그리움이거든 굴업도로 가라"고.

온갖 생명들이 살아 숨 쉬며 나무늘보처럼 아주 느린 삶 속에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는 굴업도의 천연자원들은 여행객들이 단순히 만끽하는 자연유산을 넘어 인천 시민들의 천연기념물로 긴 역사만큼 기억되어야 할 이유이다.

왼쪽으로 낙타 머리 형상이 보인다. 마치 낙타가 바짝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으로 낙타 머리 형상이 보인다. 마치 낙타가 바짝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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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료 참조. 인천작가회의 작품집 <생명, 생태 그리고 역사를 품은 굴업도>



태그:#굴업도, #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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