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언제나처럼 안개와 보슬비로 가득찬 네팔의 아침 
라미솔, 나, 이랄랄
언제나처럼안개와 보슬비로 가득찬 네팔의 아침 라미솔, 나, 이랄랄 ⓒ 고상훈

밖에는 언제나처럼 아침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네팔의 아침은 반소매로 나다니기엔 너무 추웠고, 안개가 자욱했다. 다를 바가 없었다. 구름 위 부미마타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날이었지만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이런 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를 저주했다. 나와는 반대로 3일을 같이 보낸 병엽이 형은 '곧 울 것 같다'며 어찌할 줄 몰라했다. 형은 금방이라도 왈칵하고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눈물은 형에게 맡기고, 나는 작별 인사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내려요 항상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부미마타
비가 내려요항상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부미마타 ⓒ 고상훈

"이놈의 비는 언제면 그치는 거야?"

마지막 날의 낮에는 발칼라얀 초등학교에서 실패했던 '명랑 운동회'를 열게 됐다. 다행히 변덕스럽던 네팔 날씨는 마치 운동회를 하라는 듯 화창했다. 운동회가 끝난 순간, 거짓말처럼 비가 와락 하고 쏟아졌다.

네팔의 하늘은 지겹지도 않은 걸까?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마지막 순간을 나누고 싶었는데, 이놈의 비는 그칠 생각이 없나 보다. 날씨는 이렇게 우리가 가는 날까지 말썽이었다. 아이들과 마지막 순간을 나누기는커녕 교무실에 맡겨뒀던 짐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정리를 끝마치고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오랜만에 짊어진 배낭은 너무나 무거웠다. 부미마타 친구들이 이것저것 챙겨준 짐들이 많아 그랬던 탓도 있었고, 너무 오랜만에 어깨에 큰 짐을 짊어진 탓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 다시 볼 지 알 수 없는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탓도 있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나오니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 버린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처마 끝자락에 비를 피해 모여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와 병엽이 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칼같이 집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아이들인데, 오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부탁했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던 형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형의 배낭도 유달리 무거워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날, 우리를 기다려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가장 오른 쪽은 병엽이 형)
아이들과 함께마지막 날, 우리를 기다려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가장 오른 쪽은 병엽이 형) ⓒ 고상훈

"하아…. 비도 오는데 여긴 왜 오신거야 대체…."

비를 맞으며 내려간 길 끝 부미마타 교문에는 약속에 없었던 손님이 있었다. 이랄랄(형제 결연을 맺은 네팔 친구)의 아버지가 와계셨다. 눈물이 터졌다. 참을 수가 없었다. 이랄랄의 집은 학교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네팔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하겠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산길의 연속이다. 종일 내리는 비는 산길을 더 미끄럽고 힘들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랄랄의 아버지는 성치 못한 다리를 이끌고 작별 인사를 하려고 산길을 걸어오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두 손을 모으고, 이를 보이며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하릴없이 한숨 가득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도 아이들의 뒷모습만 가득했다. 시간은 없었다. 흙길을 따라 부미마타를 남겨둔 채로 내려갔다. 형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돌아볼 수도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면, 고개를 잠깐이라도 돌리면 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오늘은 내 마음에도 병엽이 형 마음에도 아이들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부미마타에는 비가 내렸다. 오늘은 이 망할 놈의 비가 좋다."

울지마 울지마 얘들아...
울지마울지마 얘들아... ⓒ 고상훈

덧붙이는 글 | 2011년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네팔에서 ADRF와 함께.



#ADRF#해외봉사#네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