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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붉은 박물관의 겉모습은 조금 촌스럽기까지 했다.
▲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세계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붉은 박물관의 겉모습은 조금 촌스럽기까지 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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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막 떠나온 그곳에서 격렬한 시위가 번지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본 것은.

우리가 지나다니던 타흐릴 광장에서는, 카이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축출을 외치며 뒤엉켜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이집트를 여행하며 보낸 '조용한 날들'은 폭풍전야였던 셈이다.

이집트인들의 민주화 시위가 거세어지자 이집트는 여행자제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미국은 이집트 거주 자국민들에게 탈출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과 중국은 공항으로 몰려든 자국민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며 전세기를 동원해 탈출시키는데 반해, 우리 정부는 아무 조치도 없어 한국인들은 공항에서 쫄쫄 굶으며 '무사히 이집트를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혀를 끌끌 차며 아쉬워했다. 우리가 하루만 더 이집트에 머물렀더라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을 텐데. 카이로 공항에서 발이 묶였더라면 뜨거운 민주화 열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현대판 출애굽을 절절하게 경험하고 돌아와서 생생하게 풀어놓았을 텐데. 간발의 차이로 그걸 놓쳤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또 아쉽다.

콩, 쌀, 마카로니, 면 위에 소스를 얹어 먹는 이집트 대표적 서민 음식.
많은 사람들은 코샤리가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한번 먹어 보고 끝.
이집트 민주화 혁명을 '코샤리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 코샤리 콩, 쌀, 마카로니, 면 위에 소스를 얹어 먹는 이집트 대표적 서민 음식. 많은 사람들은 코샤리가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한번 먹어 보고 끝. 이집트 민주화 혁명을 '코샤리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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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보고 오길 잘했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을 두 번이나 들렀다는 사실이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박물관의 유물들이 파손되고 사라졌다고 뉴스는 전했다. 약탈자들은 지붕의 유리 천장에서 로프를 타고 박물관의 맨 위층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 보려면 아홉 달이나 걸린다는 이집트 박물관을 겨우 두 번 방문해서 뭘 얼마나 보았겠는가마는, 그래도 유물이 사라지고 약탈자들의 손을 타기 전에 들렀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사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의 첫인상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붉은 색 외관은 다소 촌스러울 정도였다. 박물관에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돌로 된 유물들 때문인지) 좀 으스스한 기운마저 돌았다(2층에는 미이라 전시실이 있고 투탕카켄의 유물들로 가득하다는, 말하자면 온통 무덤에서 파낸 것들 투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15만 점이나 되는 유물, 100개나 되는 방들,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 더구나 1층 메인 홀에는, 몇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색창연한 유물들 중 많은 것들이 유리관에 갇혀 있지 않고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저절로 새어나오는 말, "이게 창고야 박물관이야?"

죽음의 기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

2층에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과 미이라 전시실이 있었다.

투탕카멘의 미이라 바로 위에 씌워졌던 황금 마스크와 금관 앞에 서고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평소 금붙이의 누런빛이 촌스럽다 생각했었는데, 200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황금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11kg이나 되는 황금 마스크의 아몬드 같은 눈을 통해 18세에 죽은 소년 왕 투탕카멘의 눈매를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투탕카멘의 금박 입힌 커다란 관과 죽은 자의 몸에서 끄집어 낸 위, 장, 폐, 간을 담는 캐노푸스 단지들이 복도 전시실에 가득했다.

미이라 전시실 입장료는 박물관 입장료보다 더 비쌌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딸랑 미이라 12구 보는 데만 우리 가족은 260이집션파운드(우리 돈으로 5만7000원쯤 된다. 1E£는 약 220원)를 지불해야 했다.

가이드도 들어갈 수 없는 어둑신한 전시실에 들어서서, 유리관에 누워 있는 미이라를 내려다보는 순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내 상상 속의 위대한 파라오보다는 다소 왜소해 보였다. 엄청나게 큰 피라미드와 신전을 건축한 파라오라면 기골이 장대해야 마땅했다. 죽음과 오랜 시간 앞에서는 파라오도 별 수 없었던 걸까. 시커멓게 말라붙은 피부와 곱은 손가락은 생기 없이 쪼그라들어 손만 대도 바스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카데시 전투에서 인류 최초의 평화협정을 맺고, 그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을 건축한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은 비현실적으로 생생했다. 쪼그라든 발가락에 달라붙은 천조각들이며, 발톱이나 손톱, 속눈썹까지 그대로인 미이라도 있었다.

이 비현실성이 다가오지 않아 나는 미이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이라가 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다.

죽은 자의 콧구멍으로 쇠갈고리를 쑤셔 넣어 두뇌를 빼내고, 텅 빈 두개골은 탄산소다와 회반죽으로 채워 굳히고, 복부를 절개해 내장을 나누어 캐노푸스 단지에 담는다. 아차, 심장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건 저세상에서 심장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 심판을 받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텅 빈 몸속은 야자술로 깨끗이 씻고 몰약과 향료를 채우고 꿰맨다, 시신을 70일 동안 탄산소다에 담가 두었다가 씻어 붕대로 감는다, 생전의 모습을 닮은 황금 마스크를 씌운다, 그리고 미이라를 관 속에 넣는다, 또 관에 넣는다, 또 관에 넣는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처럼.

그러고 보니 박물관 2층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 흐르는 곳, 죽음의 기운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또 저절로 새어나오는 말, 이게 무덤이야 박물관이야?

이집트 박물관에서 사온 장식용 카노푸스 단지.
이집트인은 미이라를 만들 때, 죽은 자의 몸에서 꺼낸 간, 위, 장, 폐를 각각 4개의 단지에 나누어 담았다.
▲ 카노푸스 단지 이집트 박물관에서 사온 장식용 카노푸스 단지. 이집트인은 미이라를 만들 때, 죽은 자의 몸에서 꺼낸 간, 위, 장, 폐를 각각 4개의 단지에 나누어 담았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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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박물관을 두 번째 들렀을 때, 그 창고 같던 박물관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노출된 유물들을 들여다볼수록, 조명이 반사되는 유리관을 통해 보는 것보다 한결 선명하고 가까웠다. 슬그머니 손을 뻗쳐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가까이 마주하는 생생함이란.

으리으리하고 번쩍거리는 박물관이 아니라 창고 같고 무덤 같아서 더 좋았다. 잘 다듬어진 곳이 아니라 먼지 타고 손때 타서 더 정겨웠다. 날것 그대로의 유물들을 마주한 느낌, 온갖 포장을 벗어버리고 민낯으로 만난 순수한 느낌.

그리하여, 이게 창고야, 무덤이야, 하던 첫인상, 두 번째 들렀다 나올 땐 이렇게 변해버렸다.

창고이자 무덤인 이집트 박물관, 너 맘에 든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에 14일 동안 이집트를 여행하였습니다.
여행 경로 : 카이로 -아스완-아부심벨-룩소르-후루가다-알렉산드리아-시와-카이로



태그:#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이집트, #코샤리 혁명, #미이라, #이집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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