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학관 모습  지상 3층이며 1만 2천여평에 달한다. 일대 야산을 문학테마파크로 구성했으며 작가의 생애와 문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 문학관 모습 지상 3층이며 1만 2천여평에 달한다. 일대 야산을 문학테마파크로 구성했으며 작가의 생애와 문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지난 10일, 기차를 타고  양평역에서 내려 황순원 문학관을 찾았더니 아는 이들이 없다. 그러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기차를 타려던 한 촌로가 자기가 거기에 살고 있는데 황순원문학관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아무튼 서종면을 찾는 다니 같이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양수역에서 내렸다.

양수역 앞에 서종면으로 가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후 버스는 북한강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십여분 달리던 버스는 작은 정거장에서 촌로를 내려주고 다시 몇 분을 더 달려 종점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황순원문학관을 알고 있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상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소나기마을을 물어야 한단다. 황순원 선생보다는 소나기마을이 더 잘 알려 진 모양이었다. 

해가 서쪽에 반쯤 기운 때였다. 얼마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니 자연경관도 구경할 겸 부지런히 걸으면 해걸음 전에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초입인 입동이 지났는데도 날씨는 봄날처럼 따듯하다. 한참 걸으니 이마에 송송 땀이 난다. 이미 가을 걷이가 끝난 논이 황량해 보인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계절을 잊은 듯 했다.

30여분 걸었을까, 소나기마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길가에 카페가 보이고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카페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와 늦은 가을 해, 수확을 끝낸 황량한 논이 잘 조화되어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빈들에 닭들이 벼이삭 줍기에 정신이 없다. 해묵은 나무 밑에서 콩을 터는 할머니의 얼굴이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황순원로에 들어섰다. 개울물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소나기마을이 가까워서인지 주위 풍경이 소나기마을에 등장하는 분위기와 흡사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산 밑 풍치좋은 곳에 고급주택들이 즐비하게 서 있어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개울물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얼마간 올라가자 저만치 소나기마을이 눈앞에 보인다.    

철잃은 코스모스  입동이 지났지만 소나기마을로 가는 길가에 철을 잃어버린듯 코스모스가 나그네를 반기고 있다.
▲ 철잃은 코스모스 입동이 지났지만 소나기마을로 가는 길가에 철을 잃어버린듯 코스모스가 나그네를 반기고 있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소나기마을  소나기마을이 1,8키로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황순원문학관보다는 소나기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 소나기마을 소나기마을이 1,8키로 된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황순원문학관보다는 소나기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시멘트 다리를 건너자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이라는 큰 표지석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 옆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매표소가 있고 매표소 정면에 황순원문학관이 보인다. 얼마나 와보고 싶엇던 곳인가. 선생님이 생전처럼 밝은 웃음으로 맞아 주는 것같아 발걸음보다 마음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

묘소를 참배하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리 높지 않은 산, 울창한 소나무 숲, 졸졸 흐르는 개울물, 주위환경이 너무 좋아 선생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 잠시 묘소 옆에 앉아 까마득하게 지나간 세월을 회상해 본다. 나는 선생님이 생존시에도 오늘처럼 불쑥 찾아 뵈웠다. 그리고 떠나서는 몇 년이고 소식을 드리지 못했다.

그 후에 만나도 선생님은 늘 인자한 모습으로 대해 주셨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복을 입고 꺼벙한 모자를 쓴 시골 학생이  문학을 하겠다며 당돌하게 선생님을 찾아 뵈웠을 때도 반갑게 맞아 주셨다. 겨울이었다. 겁없이 찾아온 시골 학생을 들어오라고 하시며 차를 대접하고 과일도 주시며 고생했다고 따뜻이 대해 주셨다.

원고를 보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두고 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나는 시골로 내려온 후 선생님을 찾아뵌 일이 없었다.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지나고 상경하여 통신사 잡지사를 전전하다가 불쑥 선생님 생각이 나서 찾아 뵙고 용서를 구하고 술이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기자가 무슨 돈이 있느냐며 오히려 분수에 넘게 대접을 받았다.

소나기마을 표지석 소나기마을 입구에 표지석이 서 있다. 왼족 길로 조금 오르면 황순원문학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 소나기마을 표지석 소나기마을 입구에 표지석이 서 있다. 왼족 길로 조금 오르면 황순원문학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수숫단 오솔길  소설 속 소년과 소녀가 즐겁게 거닐던 수숫단 오솔길의 모습, 이 외에도 너와 나만의 길, 고백의 길 등을 재현해 놓았다.
▲ 수숫단 오솔길 소설 속 소년과 소녀가 즐겁게 거닐던 수숫단 오솔길의 모습, 이 외에도 너와 나만의 길, 고백의 길 등을 재현해 놓았다.
ⓒ 김학섭

관련사진보기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많은 술을 마셨다. 이후에도 나는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 본 일이 없다. 술에 취해 선생님에게 무슨 응석을 부렸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그 후에도 몇번 불쑥 불쑥 찾아뵙지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했다. 나는 선생님에게 폐만 끼치고 살았다. 그동안 성공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 기회마저 놓지고 말았다.

나는 늘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길 없다. 훌륭하신 제자분들이 많으시지만 보잘것 없는 나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고 대접해 주시고 용기를 주셨다.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은 먼길을 떠나셨다. 선생님과의 무언의 약속을 아직도 나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죄송할 따름이다.  언젠가는 그 약속을 지키리라 다짐해 본다.   

이제 또 불쑥 찾아와 묘소 앞에 서니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으랴. 나는 알고 있다. 선생님은 아무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난 나를 전처럼 빙그래 웃으시며 맞아 줄 것을,  나는 선생님을 하루라도 잊어본 일이 없다. 선생님의 모습은 언제나 내 가슴에 함께하고 계신다. 아마 내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는 잊지 못하리라. 

서산으로 기우는 해가  반쯤 얼굴을 가리고 있다.  긴 산그림자가 길을 덮고 있다. 어둠이 곧 내려올 것만 같았다. 나는 서둘러 문학관을 나섰다. 오늘도 선생님을 처음 뵙고 돌아설 때처럼 발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봄  꽃이 만개하면 다시 찾아오리라 선생님과 약속했다.

선생님을 편히 쉬도록 만들어주신 양평군과  양평군 주민에게 늦지만 감사를 드리고 싶다. 


#황순원 문학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