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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농사인 곶감달기가 마무리됐다. 경북 상주는 익히 알려진 대로 천년고수 곶감의 고장이다. 예로부터 삼백의 고장이라 불렸고, 삼백은 흰 쌀과 누에고치, 곶감에서 나오는 하얀 분을 일컫는다. 상주의 가을은 뽀얀(?)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감나무들로 장관을 이룬다.

상주 곶감 농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감나무를 소유해서 직접 감을 따거나, 감나무를 일 년 또는 수 년 단위로 임대해서 따는 경우, 아니면 공판장에서 감을 사와 곶감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간혹 아예 공판장에서 곶감을 사다가 포장만 해서 파는 이들도 있다.

감나무에서 바로 딴 감들 이 감을 따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한다.
▲ 감나무에서 바로 딴 감들 이 감을 따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한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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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자신이 소유한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 곶감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귀농자의 경우 대부분 소유한 감나무가 없으니 임대하거나 공판장에서 사서 만드는 경우가 가장 많다.

얼어버린 감나무, 욕심 버리지 못해 이중삼중으로 고생

나 역시 여섯 그루의 감나무가 있으나 5년간 무농약을 고수한 결과 이제는 거의 수확을 바라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작년에는 95만 원의 선임대료를 내고 다섯 그루의 감나무를 임대했으나 때 이른 강추위에 감나무의 감들이 얼어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감나무 농사짓는다고 풀도 매주고 약 치느라 얼마나 땀을 흘렸던가? 감나무에 약치는 일은 다른 밭에 약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우선 나무가 높다 보니 긴 약대를 하늘 높이 향해 쳐야 되는데 결국 비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약에 몸을 맡겨야 된다.

하룻밤 새 얼어버린 감나무, 다섯 그루의 감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따서 곶감 작업을 해보냐 기로에 섰다. 혹자는 얼어 버린 감은 못쓴다 하고 혹자는 괜찮다고 하기도 했다. 일말의 가능성에 미련을 못버리고 감을 따기로 했다. 그런데 감은 아무나 따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올라가기 적당한 높이면 몰라도 고목의 경우 나무에 척척 붙는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 감나무는 휘지 않고 바로 부러지는 성향이 있어 매년 감나무에서 추락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내게 감나무 타기는 아무래도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결국 나무를 잘 타는 이웃의 도움과 마을 할머니들의 일손을 빌려 곶감 작업을 했으나 결과는 역시였다.

곶감 만들기 작업 아내와 장모님이 곶감 만들기 1단계, 꼭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곶감 만들기 작업 아내와 장모님이 곶감 만들기 1단계, 꼭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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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얼어버린 감은 나중에 보니 새까맣고 딱딱하게 굳어져 곶감으로서의 상품 가치를 잃어 버렸다. 결국 감나무 임대료에 따고 깎는 수고비까지 이중 삼중의 비용까지 들어간 곶감의 대부분은 주변에 거저 주거나 우리 집 개들의 간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차라리 얼어버린 상태에서 깨끗이 포기했으면 추가 부담의 후회는 안 했을 터이나 만시지탄이었다.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또 임대한 감나무, 이상기후로 절반도 안 달려

감나무에 올라 갈 재주도 없으면서 감나무 임대의 제안은 뿌리치기가 힘들었나 보다. 한 번의 만시지탄을 겪고도 작년 말 집 주변의 감나무 열 몇 그루를 150만 원에 임대해 보라는 제안을 또 다시 받아 들였다.

감나무는 수요가 많아서 그런지 임대료가 선불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상당히 불만이 있지만 곶감을 해야 하는 아쉬운 처지에 왈가불가할 수도 없었다. 예로부터 농사는 도지(임대료)가 거의 후불이었다. 천재지변을 만나 흉년이 들 경우 지주도 어느 정도를 감안해 도지를 조정해 주곤 했는데 감나무는 여지없이 선불 받는 것을 보면서 돈 욕심 앞에 농심도 옛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비탈 곳곳에 자리잡은 감나무 관리를 위해 올해 세 차례의 풀베기를 해야 했다. 그 면적이 자그만치 천여 평이 넘었다. 예초기의 소음과 매연을 맞아가며, 늦가을 주렁주렁 달릴 수확의 기대를 안고 수고를 감수했다. 하지만 작년 겨울 극심한 동해 피해에다 기나긴 장마로 감나무의 감들이 절반 이상이나 빠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이상기후로 감나무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을 찾기가 힘들다는 말이 숱하게 들려왔다. 또 허망했다. 한 해도 아니고 두해씩이나...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감나무 주인 역시 이미 임대료는 받았지만 얼굴에는 민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천재지변으로 이렇게 됐으니 임대료 중 일부라도 돌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올해는 혹시라도 작년처럼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 올까봐 주변에선 서둘러 감을 따기 시작했다. 임대료만큼의 감이나 나올까 하는 우울한 심정으로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감을 땄다. 안 그래도 부족한 감, 한 개의 감이라도 더 따겠다는 작심으로 무리하게 올라갔지만 높은 곳의 감까지 딸 수는 없었다. 한계였다.

늦가을 감따기 내가 올라가지 못한 높은 곳의 감을 후배가 따고 있다.
▲ 늦가을 감따기 내가 올라가지 못한 높은 곳의 감을 후배가 따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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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라도 불어치면 다리에 힘은 더욱 더 들어가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꽉 잡은 팔과 허리엔 통증이 밀려왔다. 아주 가끔 떨어지는 감에 몸 어딘가를 맞으면 낙하의 무게가 더해져 대단한 충격을 주곤 했다.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하는 자탄의 소리가 가슴속에서 맴돌면서 나무에 매달린 내 모습이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저쪽 옆에서 여유 있게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는 윗집 형님과 비교하니 '후~'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주제 파악을 해야지, 올라가지 못하는 주제에 감나무는 사서 뭣 한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아내까지 옆에서 거든다.

"내년부턴 감나무 사지 말고 그냥 감을 사서 해."
"비싼 감 사서 뭐 남는 게 있다고?"
"그럼 어떻해? 감나무엔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감나무를 내려오면서 두 번 다시 감나무를 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결국 이웃 후배에게 나머지 감을 따주고 절반을 나누는 조건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곶감 농사가 가장 쉽다? 그건 아닙니다

곶감 매달기 아내가 곶감 작업 중 가장 힘들다는 곶감 매달기를 하고 있다.
▲ 곶감 매달기 아내가 곶감 작업 중 가장 힘들다는 곶감 매달기를 하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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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저온 저장고에 들어 간 감은 본적적으로 5단계 곶감 만들기에 들어간다. 감꼭지를 칼로 따고 반자동 기계로 감을 깎는다. 덜 깎인 부분은 다시 칼로 마무리 짓고 감을 매달면 작업은 완성된다. 이후엔 통풍과 햇볕 관리를 통해 50여 일간의 말리기 작업에 들어간다.

곶감달기를 끝내고 주렁주렁 달린 곶감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고생 끝에 보는 즐거움인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있겠는가?

남들은 쉽게 말한다.

"곶감 농사가 가장 쉽다며? 그냥 매달아 놓으면 되는 거잖아."

이 말은 직장 다니는 월급쟁이들에게 쉽게 내뱉는 말과 같다.

"월급쟁이 제일 편하잖아. 출근만 하면 또박또박 월급 나오고..."

어느 곶감이 그냥 매달리며 어느 월급쟁이가 그냥 월급 받겠는가? 수고하고 땀 흘리지 않으면 입에 밥을 넣을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가 감농사와 함께 새삼 와 닿는 계절이다.


#곶감#상주#이상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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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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