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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면...진짜 큰일이라고 느꼈어요

지난 3일, 기자는 한양대 제2 법학관 회의실에서 국내 최대의 대부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윤모씨와 함께 서울 중앙지법에 공익소송을 제기한 법학대학원(로스쿨)생들을 만났다. 회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지난 9월 12일 보도된 KBS 뉴스를 통해 사건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당시 뉴스에는 이들이 제출한 소장의 원고인 윤모씨가 동네에 설치된 ATM기계를 이용하던 중, 대부업체의 서비스 버튼을 잘못 눌러서 뜻하지 않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에이앤피파이낸셜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제기한 한양대 로스쿨 학생들.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에이앤피파이낸셜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제기한 한양대 로스쿨 학생들.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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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원치 않는 대출을 받게 됐다는 윤씨의 소식을 접하고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윤씨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 학생들은 보도된 내용들과 윤씨의 주장이 달라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학생들이 전한 윤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하나 SK카드 고객으로서 하나은행 인출기에서 현금 서비스를 신청했으며 대부업체는 평소에도 이용하지 않았고 이용할 계획도 없었다고 한다. 뉴스에는 대부업체 서비스 버튼을 실수로 잘못 누른 것으로 보도 됐지만 자신은 애초에 대부업체의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대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저희도 상식을 벗어난 사건이라서 미심쩍었어요. 피해를 당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무조건 처음부터 믿어선 안 되기도 하지만...주장하는 내용 자체가 믿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게 진짜면...진짜 큰일이다'라고 느낀 거죠."

우선 학생들은 윤씨가 증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이용했다는 ATM기계를 찾아가 봤다고 한다. 기계에는 분명히 하나은행 매직뱅크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동네 주민들도 그 기계는 하나은행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물론 동내 주민들은 이 기계가 하나은행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 윤씨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ATM 기계 윤씨는 물론 동내 주민들은 이 기계가 하나은행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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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기계로 어떻게 대부업체 서비스가 이뤄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문의해 보니 정작 해당 은행에선 기계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조사해 봤더니 훼미리 뱅크라는 업체에서 소유 및 관리를 하고 있었어요. 하나은행은 물론 대부업체와도 제휴를 맺고 설치했다고 하더라고요. 소송을 준비하면서도 하나은행 쪽에서는 본인들 역시 이러한 사실의 피해자라고 했고요."

그런데 추가로 밝혀진 사실에 학생들은 또다시 당황했다. 해당 기계가 대부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긴 하지만 윤씨에게 대출을 해줬다고 주장하는 러시 앤 캐시(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와는 전혀 제휴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윤씨가 대부업체의 버튼을 실수로 눌렀더라도 기계와 제휴된 웰컴론(웰컴크레디라인대부) 쪽에서 돈을 주는 것이 정상이었다. 도대체 러시 앤 캐시가 어떠한 과정으로 윤씨에게 대출을 해줬다는 것일까?

사건을 조사하며 예기치 못한 사실들이 드러나자 사안의 심각함을 느낀 학생들은 한 달이 넘도록 윤씨와 함께 러시 앤 캐시(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를 상대로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씨를 향한 러시 앤 캐시 측의 독촉은 계속되어갔다. 윤씨에 의하면 업체로부터 하루 빨리 대출계약을 인정하라면서 협박까지 당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마침내 11월 1일 담당 지도 변호사인 배금자씨와 함께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를 상대로 대출계약은 무효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접수했다. 그들은 소장을 통해 이렇게 진술했다.

"이 사건 기계에는 피고(에이앤피파이내셜대부)가 계약의 상대방이라는 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어떠한 표시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기계에는 '하나은행 현금자동지급기'의 표시와 '웰컴론'의 표시만 되어있을 뿐 그 어디에도 피고에 대한 표시가 없습니다...이 사건 기계를 관리하는 훼미리뱅크와의 어떠한 업무 제휴도 없는 피고가 대부계약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 기계의 전산망을 통해 원고에 대한 정보를 가로챈 조작과정이 있었다고 추단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개인정보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한민국의 고객정보는 도대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언론에 간단히 보도된 것처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학생들이 제기한 의혹이 너무도 컸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나 통신 요금 등이 연체되고 나서 얼마 후 갑자기 걸려오는 대출업체의 전화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자가 취재 도중 모 저축은행 직원으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넘겨받아 자신들의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사건이 지닌 중대함에 비해서 이 내용을 자세히 보도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을 이 세상이 필요로 하고 있다"

기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지난 2일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 본사를 찾아갔다. 회사 쪽에선 소송이 제기된 만큼 본인들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출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는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본인들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윤씨를 협박했다는 것 역시 부인했다.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친절과 서비스 교육은 철저히 시킨다고 한다.

또한 ATM기계를 사용해 러시 앤 캐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는 무려 10단계 이상의 화면을 거치며 도중에 핸드폰 인증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 회사 관계자는 대부업체인 것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느냐며 항변했다.

<러시 앤 캐시>, <미즈 사랑>등의 대부업 브랜드를 가진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 본사.
 <러시 앤 캐시>, <미즈 사랑>등의 대부업 브랜드를 가진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 본사.
ⓒ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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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러시 앤 캐시 쪽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증거를 보여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회사 관계자는 한 장의 인쇄물을 내밀었다. 그것은 윤씨가 러시 앤 캐시 대출을 받는 모습이 찍힌 CCTV 사진이라고 했다.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엔 보여주지 않았지만 오늘 기자님께 최초로 보여드리는 겁니다. 이 사건은 소송하면 저희가 100프로 이깁니다."

이윽고 회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본인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이미지 손상을 언급했다. 평소에도 대부업이 고리사채라는 인식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데 이런 일까지 터졌다는 것이다.

"저희는 대부업을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ATM을 통한 대출도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급전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사람들이 대부업에 관한 편견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6조에 의하면) 대부업자가 대부계약을 체결할 땐 주요사항을 설명하고, 자필로 기재하게 하여 이 내용이 적힌 대부계약서를 상대방에게 교부하게 되어 있지만 확인 결과 귀사 쪽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취한 바 없다고..."

"콜센터, 인터넷, ATM 기계를 이용한 대출은 그런 규제를 안 받게 되어 있어요. 이 세 가지는요, 관련 법규 자체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법정으로 가서 소송하면 저희가 100프로 이깁니다."

러시 앤 캐시는 자신들과 제휴를 맺고 있는 이 기계를 통해 윤씨가 대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측에서 주장하는 ATM 러시 앤 캐시는 자신들과 제휴를 맺고 있는 이 기계를 통해 윤씨가 대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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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앤피파이낸셜 본사를 나온 후 윤씨가 러시 앤 캐시 측이 주장한 대로 대출을 받았다는 ATM 기계가 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러시 앤 캐시 대출 과정은 현금 서비스 과정과는 달랐고 휴대폰 인증까지 거쳤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들이 정상적으로 대출이 이뤄졌다고 언급하는 ATM기계는 윤씨 본인이 사용했다고 주장해온 기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기자는 소송을 제기한 한양대 로스쿨생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소송준비 과정에서 윤씨가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ATM 기계의 고유번호를 확인한 후 러시 앤 캐시 측에 문의했으며, 해당 기계로 윤씨가 대출을 받은 것이 맞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윤씨의 사건이 처음 보도된 9월 12일 KBS 뉴스에서도 기자가 러시 앤 캐시를 통해 사실 확인을 거쳤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러시 앤 캐시 쪽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자신들이 법원에 소장을 접수하자마자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윤씨의 모습이 찍힌 사진에 대해서는 그동안 보여 주지 않다가 갑자기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표시하며 답변을 미뤘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무분별한 대출을 방치하는 풍토가 제대로 개선 될 때까지 공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입장을 정리했다.

한편 소송이 시작되자 다음날 금융감독원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권 공용 ATM 위탁계약을 시정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지난 4일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ATM을 통한 대출영업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 대부업체의 고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윤씨와 한양대 로스쿨생들이 제기한 소송은 현재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대부업체, #한양대 로스쿨, #공익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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