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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박사가 10월 3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10월 3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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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 배우가 TV 속에서 '떠나는 길에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망보장금을 지급하는 보험에 가입시켜준다고 말한다. 보험의 내용은 가입 이후 2년 후에 사망하면 무조건 천만 원을 지급해주는 상품이다.

65세에 이 보험에 가입하고 12년 동안 보험료를 내게 되면 이미 납입한 보험료만 해도 천만 원에 육박하게 된다. 당초 보험에 가입한 목적(?)대로라면 가입 후 2년 후부터 12년이 지나기 전까지 죽어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천만 원을 마련해 주는 것이 자식사랑일까?

'사랑은 반드시 돈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신주 박사가 꼽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강 박사는 지난 10월 3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철학고전읽기' 수업에서 자본주의 사회 속 자본의 종교성을 지적한 마르크스의 통찰에 대해 강의했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교재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과도 교환되는 자본과 돈, 화폐가 숭배의 대상이 되며 그로인해 전통적인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수평적인 관계들로 유대를 맺으면 자본을 이길 수 있다"며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자본을 맹신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철학 수고>, 마르크스 인문정신 정수 담겨

<경제학-철학 수고>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의 강렬한 인문정신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세 개의 초고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마르크스가 가지고 있던 영국의 고전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독일의 관념론에 대한 이해가 결합된 최초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1844년 쓰여진 이 책에서 보여지는 마르크스의 사유는 각각 이후의 저작인 <독일 이데올로기>,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자본론>으로 이어졌다.

강 박사는 "마르크스가 남긴 3대 저작의 성격은 <프랑스=정치, 영국=경제, 독일=철학>이란 공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정치를 사유할 때 경제와 철학의 시선으로, 경제를 사유할 때 정치와 철학의 시선으로, 철학을 사유할 때 정치와 경제의 시선으로 볼 줄 알았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 무국적자로 전전하며 저술활동을 했던 마르크스는 머물렀던 나라들의 각기 다른 국가색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세 저작의 철학적 뿌리가 되는 것이 <경제학-철학 수고>라는 얘기다.

"<경제학-철학 수고>의 가치는 이 책이 마르크스의 인간적인 면모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데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인간은 억압받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산당의 주도적인 역할을 부정해야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채택하고 있던 당시 공산당 지도자들에게는 상당히 짜증나는 부분이었지요. 그래서 1843년에 쓰여진 이 책은 계속 숨겨지다가 1932년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지요."

"자본주의, 화폐 숭배하는 거대한 종교체계"

<경제학-철학 수고>는 내용적으로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세 수고를 관통하는 영국 정치경제학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 두 번째 부분은 '소외된 노동'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 세 번째는 사유재산과 화폐, 헤겔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불평등해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사유재산과 그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화폐를 꼽았다. 강 박사는 <경제학-철학 수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하나 들라면, 그것은 세 번째 부분 중 '화폐'에 대해 분석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며 '화폐는 특정한 성질, 특정한 사물, 특정한 인간적 본질력과 교환되지 않고 인간적·자연적·대상적 세계 전체와 교환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무엇과도 교환되는 자본과 화폐의 전지전능함을 지적하며 그것이 "종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양은 크게 '신이 지배했던 시절'과 '자본이 지배했던 시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시절의 양상은 비슷해요. 신도 전지전능하고 자본도 전지전능하지요. 그리고 인간은 노예의 신분을 갖습니다. 마르크스 저작들에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들 중 하나가 자본은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가 <자본론>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은 자본이 거대한 종교체제라는 통찰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지요. 지금은 돈이 무엇과도 교환되니까 사람들이 돈이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지요."

강 박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이 사랑으로만, 신뢰가 신뢰로만 교환되지 않는다"며 "이런 조건에서는 무엇과도 교환되는 자본과 돈, 화폐가 숭배의 대상이 되며 그 순간 전통적인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순재 아저씨가 보험 광고에서 '먼 길 떠나기 전 자식들한테 천만 원 정도는 남겨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잖아요. 여기에는 사랑은 반드시 돈으로 환산되어야 한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가 숨겨져 있어요. 천만 원 남겨주는지 안 남겨주는지가 자식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과연 이게 사랑일까요? 천만 원 남겨줘야만 자식들을 사랑하는 걸까요?"

강신주 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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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이런 속성을 가진 자본주의를 무너트리기 위해 생전에 다양한 책들을 저술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언제, 어떻게 했을 때 무너질까? 강 박사는 "자본주의가 종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10년 안에 세계적으로 굉장한 동요들과 재편들이 이뤄질 텐데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자본을 맹신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돈도 주고 옷도 주고 밥도 사주는 등 반자본주의적 행태가 이뤄진다"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수평적인 관계들로 유대를 맺으면 자본을 이길 수 있다"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강신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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