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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다

 

주변의 탓하는 말 한마디에 함께 속상해 목청을 돋운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침묵의 산이 옳다는 것을 안다.

 

작은 성취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친구에게 수화기를 든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침묵의 산이 옳다는 것을 또한 안다.

 

인정물태(人情物態)는 산의 마음으로 보면 항상 찻잔속의 파랑임을 안다.

 

나는 그 산의 침묵이 좋다.

 

잠결에 사람들의 등살에 몸살을 앓고 있는 산의 모습이 떠올랐다. 깨어서 새벽에 밖을 보니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다. 이번 주말(10월 29일)에는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산이 여유롭겠구나, 여겨졌다.

 

나의 등반이 이 여유를 헤살 놓는 일이 아닐까, 머뭇거렸다.

 

"산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초목의 휴식에 성가신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사뿐사뿐 내디뎌야지……."

 

올해 봄에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마지막 졸업 등반 이후로 암벽을 타는 무리한 산행을 자제했다. 단지 장비를 없이 산의 품에 안기는 여유롭고 속박 없는 산행만 서너 차례하였다.

 

하지만 오늘은 등반대장님과 함께 하는 산행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한편으로는 나의 서툰 걸음이 대장님의 등산에 방해가 될까 걱정도 되었다.

 

첫길을 도봉산 보문능선으로 잡고 올랐다. 보문능선에서 동쪽으로 자운봉과 만장봉이 보이는 전망이 좋을 것 같다는 대장님의 배려였다.

 

예상대로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산행에는 아주 적절한 날씨였다.

 

잠시 내린 가을비가 산에는 단비가 되었다. 파삭하게 말랐던 산에 적당한 습도를 제공했다. 습기를 머금은 대지는 은빛으로 빛나고 가을의 도봉산 만 가지 초목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색으로 각기 다른 화려한 맵시를 뽐내고 있다. 마치 큰 잔치에 온갖 화려한 옷으로 단장하고 참석한 하객들의 모습이다.

 

붉은 색만 하더라도 오만가지다. 짙되 지나치지 않고 옅되 바랜 색이 아니다. 인간의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한들 어찌 아무리 눈을 맞추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저리도 다양한  붉은 빛깔을 어찌 낼 수 있을까. 산의 초입부터 나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스틱을 사용하며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전혀 다르다. 혹 도봉산 신선만이 마셔야 하는 것을 내가 마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괜스레 미안하다.

 

수만 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갖은 표정으로 이곳을 올랐을까. 하지만 자운봉·만장봉·선인봉·주봉·우이암은 여전히 우뚝 솟아 말없이 나를 맞아 주고 있다.

 

건곤일체(乾坤一體)

 

무리한 보행은 아니었지만 땀이 난다. 도봉능선을 만나 자운봉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주봉이 보이고 마당바위가 보였다. 주봉과 마당바위, 다가갈수록 표정이 바뀌었다. 멀리에서는 엄지손가락을 펼친 모습이었던 주봉이 1m앞에 다가서니 그 위용이 감동으로 바뀌었다. CD로 듣던 오페라를 공연장 특별석에서 듣는 감흥이다.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나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감격해서 내 지르는 환호성이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도봉산은 '조선왕조를 여는 길을 닦았다는 뜻과 뜻있는 지사들이 그 뜻을 키우고자 학문을 연마하고 민생을 구제하고자 도을 닦았다'는 뜻을 담고 있단다. 또한 '조선왕조의 흥업이 이 도봉산의 정기 때문'이라는 말도 전한다.

 

포대능선 정상에 오르니 좌우 360도가 펼쳐져서 파노라마 사진처럼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대능선은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에서 북쪽으로 몸을 뻗은 능선이다. 이 멋쩍은 이름은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병 부대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련하게 안개에 싸인 서울의 모습을  보니 거대한 한 폭의 동양화다. 스모그에 갇힌 서울 너머의 끝은 바다처럼 푸르게 보인다.

 

전투기를 몰고 흐린 날 바다 위를 비행하다보면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안 되어 보일 때가 있단다. 자칫 바다를 하늘로 알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전투기 조종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늘 그 조종사의 얘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신비를 체험한 것이다.

 

나는 다시 발길을 내디뎠다. 땅이 아닌 하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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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복자

 


#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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