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주 월요일이면 서울 신림동 골목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아들 녀석과 만난다. 대학 2학년이던 지난해 가을 군 입대 후 금년 봄 공익근무 5개월(한 달 훈련기간 포함 6개월)로 병역의무를 마친 녀석이다. 아비가 상이등급 6급인 국가유공자이므로, 6급부터는 아들이나 형제 한 명을 6개월 복무로 병역을 마칠 수 있도록 한 특전이 아들 녀석에게 부여된 덕이다. 그것 때문에 녀석은 공익근무 중 동료들의 부러움을 많이 사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컸다고 한다. 녀석은 친구들보다 1년 6개월 이상 군복무를 단축시킨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작정으로(결과야 어찌 되든 공부 경험을 쌓을 요량으로) 현재 신림동 고시촌 골목에서 생활한다.

60대 아비와 20대 아들, 동지적 관계

논산훈련소 퇴소식 후 지난해 9월 30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던 아들 녀석은 한 달 동안을 교육을 잘 마치고 10월 28일 퇴소했다. 퇴소식 후 교육부대 연병장에서 누나도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논산훈련소 퇴소식 후지난해 9월 30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던 아들 녀석은 한 달 동안을 교육을 잘 마치고 10월 28일 퇴소했다. 퇴소식 후 교육부대 연병장에서 누나도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지요하

내가 매주 월요일 아들 녀석과 만나는 것은 오후 7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되는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에 매번 참례하는 덕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29일부터 시작된 여의도 '월요 시국기도회'는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 24일 제46차를 기록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45번을 참례했다. 지난 2월 설 명절 전에 다 한 번 빠진 것이 영 앞니 하나 빠진 것처럼 불편한 느낌인데, 그 '단 한 번의 결석'을 끝까지 올곧게 유지할 생각이다. 이 얘기는 이명박의 '4대강 파괴사업'은 지난 10월 22일의 '완공기념 쇼'로 일단락되었지만, 진정으로 4대강을 되살리고 되찾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장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후 두세 시쯤 태안을 출발하여, 요즘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을 정취를 즐기기도 하며, 오후 5시쯤 아들 녀석이 있는 신림동 골목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들 녀석과 만나 이미 단골이 되어 버린 동태 전문음식점에서 다소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이명박 때문에 돈 쓰고 시간 쓰고 고생하는 상황을 아들 녀석과의 일주일 간격의 재회, 그리고 오붓한 저녁식사로 상쇄시키는 기분을 갖는다.

아들 녀석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긴밀한 대화는 늘 즐겁다. 아들 녀석은 믿음직스러운 내 동지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3 시절에도 아비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참여했던 이력도 가지고 있다.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바쁜 동아리 생활 가운데서도 아비와 함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여러 번 참여했고, 매일 저녁의 '용산미사'에도 수없이 참례했던 녀석이다.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두세 번 참례했을 뿐이지만, 여의도 거리미사 때문에 매주 월요일이면 서울에 오는 아비를 녀석은 존경어린 눈으로 보곤 한다.

녀석은 6개월 복무로 병역을 마쳤을 때 재미있는 말을 했다.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시선들 앞에서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자랑스럽고 떳떳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국가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에서 국가유공자인 아버지 덕을 보면서 6개월이나마 군 복무를 하여 병역을 마친 사실이 정말 떳떳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국가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라는 시각은 현재 병역을 치르고 있는 친구들, 이 땅의 거의 모든 젊은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는 얘기도 아들 녀석은 덧붙였다. 오늘 병역을 치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 앞에서 병역을 기피한 저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부끄럽고 미안해지는 심정이다.

세상에는 '예뻐서 찍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들 녀석 제대하던 날 아들 녀석의 공익근무 마지막 날, 아들 녀석이 5개월 동안 근무했던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공원을 나도 처음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아들 녀석 제대하던 날아들 녀석의 공익근무 마지막 날, 아들 녀석이 5개월 동안 근무했던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공원을 나도 처음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 지요하

지난 24일은 '10·26 재보선' 이틀 전이었다. 자연 아들 녀석과의 화제는 선거와 관련하는 얘기였다. 현재 서울시민으로 서울시장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아들 녀석은 첨단 정보수단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의견집약'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놀라운 얘기도 하나 나왔다. 아들 녀석의 대학교 후배 중에 대구 출신 여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무슨 자리에선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공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여학생은 주저 없이 전두환을 들더라고 했다. 당연히 이유도 공표해야 했는데, 이유는 단 한 가지, 전두환이 대구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란다.

모두 놀라며 그 여학생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얘기는 친구들 사이에 오래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 좋고 공부를 잘한다 하더라도, 그런 단순하고 맹한 학생은 늘 끼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건 아무래도 대구에서 행세하며 사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일 거라는 말도 아들 녀석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아들 녀석은 더욱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걱정할 건 아니에요. 그런 애들은 소수에요. 훨씬 더 많은 애들이 그 대구 출신 여자애를 연민의 눈으로 보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 여자애도 확대된 시야를 갖게 되는 때가 오리라고 믿거든요."

내가 어느 신부님에게서 들은 얘기도 입에 올렸다. 그 신부님이 본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의 한 처녀 교사에게 "만약 서울시민이라면 누굴 찍겠느냐?"고 물었단다. 대뜸 '나경원'이라는 대답이 나와서 이유를 물으니 "예쁘잖아요. 이왕이면 예쁜 사람 찍어야죠"하더란다. 박원순은 어떠냐고 물으니 "음큼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나.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많을 거라는 내 말에 아들 녀석은 동의했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나이 먹은 남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내 말에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 거예요. 세상은 다수의 옳은 생각,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고 변모하고 움직여 가니까 그 법칙을 믿고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아들 녀석은 나를 위로했다.

아들 녀석은 아비가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향수>의 판매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했다. 녀석은 친구들에게 홍보를 하고, 친구의 친구들에게도 홍보가 이어지도록 하여 20~30권가량 판매가 되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말을 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하룻밤 자고 갔다고 했다. 그 친구가 인터넷 서점에서 <향수>를 한 권 구입해서 읽었는데, 20년 전에 지어진 소설임을 감안하면 주인공들이 아버지 또래일 것 같아서 아버지께도 한 번 읽어보시도록 권하려다가 '작가 서문' 때문에 포기를 했노라고 했단다. '작가 서문' 중에 이명박 정권이 자행하는 오늘의 심각한 '역주행 현상'에 관한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이 틀림없이 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 아버지께 <향수>를 드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럼, 그 친구는 아버지와 별로 긴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겠구나?"

이런 내 물음에 아들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가치관이 달라서 충돌 현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예 대화를 기피하는 것 같아요. 서로 긴밀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고…."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행복한 부자다. 부자 관계가 완전히 동지 관계이기도 하니까…."

내 말에 아들 녀석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각성과 쇄신이 필요한 노장층

월드컵 공원 아들 녀석이 공익근무로 군 생활을 마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공원 안의 '하늘공원'을 거닐며 군 복무 중인 오늘의 모든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월드컵 공원아들 녀석이 공익근무로 군 생활을 마친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공원 안의 '하늘공원'을 거닐며 군 복무 중인 오늘의 모든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 지요하

나는 흐뭇한 웃음을 머금는 가운데서도 일순 내 선친을 생각하며 죄송스러움도 삼켜야 했다. 나는 선친 생전에 충분히 효도를 하지 못했다. 의견 충돌도 잦았다. 1972년 유신체제를 만들기 위한 국민투표, 1975년 유신체재 신임을 묻는 요식 국민투표, 1980년 5․17 군사정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5공 군사정권의 독재를 겪는 과정에서 가치관의 불일치로 선친과 언쟁을 하곤 했다. 박정희에 대한 시각 차이도 워낙 심대했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늘 우리 집의 언쟁 요인이었다.    

선친 사후 내가 위령미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선친의 유작들을 알뜰히 챙겨 두 권의 동화집과 한 권의 시집을 만든 것은(그리하여 효자 소리를 듣는 것도) 사실은 선친 생전에 가끔 발생하곤 했던 언쟁, 그 불효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 아들 녀석은 나에 비해 행복한 편일 터이다. 아비의 가치관에서 행복을 느끼는 아들 녀석의 그런 심성과 의식세계는 곧바로 내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된다.

내 나이 어언 60대 중반 초입이다. 젊은 시절에는 50대 60대 어른들을 보면서 "저 늙다리들이 빨리빨리 죽어 없어져야 이 나라가 살고 민주주의가 산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고, 술에 취하면 그런 말을 지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내 또래 청년층 사이에서도 나는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언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다 보니, 내 젊은 시절과 똑같은 현상을 보게 되었다. 오늘 나는 내 또래 60대 늙은이들, 50대 후배들 사이에서 극심하게 외롭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을 보면 외롭지 않다. 20대 새파란 내 아들과 그 또래들, 팔팔한 30대 40대 내 당질들과 그 또래들을 보면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치를 하고 나라를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진부 고루한 사고방식, 돌덩이 같은 편견과 아집과 이념 따위에 얽매어 헤어날 줄 모르는 늙은이들에게 안주하거나 의존하려 해서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희망을 주지 못한다.

집권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투표율이 높지 않기를 바란다는 게 과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이 이기고,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이 이긴다는 이 '공식'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OECD국가들 중에서 이런 기현상이 통용되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는가?

'산토끼'들을 무시하고 '집토끼'에게만 의존하려는 술책은 미구에 파멸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아들 녀석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 그리고 여의도를 간다. 여의도 '거리미사'에 가는 일은 오늘의 역주행 현상을 바로잡고 까뭉개진 상식을 복원하려는 일이다. 또 미래 세대들에게 떳떳함을 보이기 위해서다. 그런 내 발걸음은 내 아들 녀석과 그 또래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임을 굳게 믿고 또 확인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가톨릭뉴스/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1026 재보선#2040의 통찰#이명박 역주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