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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시합중인 윤구삼씨
▲ 윤구삼 배드민턴 시합중인 윤구삼씨
ⓒ 윤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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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청각장애인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장애인 체육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제 3회 세계 농아인 배드민턴 선수권대회>가 지난 10월 28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렸다.

세계 농아인 배드민턴 대회는 4년마다 개최되는 축제로서 1회 대회(2003)는 불가리아, 2회 대회(2007)는 독일에서 각각 개최됐다. 이번 대회는 오는 11월 7일까지 "셔틀콕! 세계를 하나로"라는 슬로건 아래 19개국의 2백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남녀 단식, 혼합복식, 혼합단체전의 경기를 펼친다.

윤구삼씨는 이번 대회에 덴마크 농아인 대표팀 중의 한명으로, 지난 10월 27일 한국에서 해외입양 보내진 지 34년 만에 처음으로 모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덴마크에서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모국방문의 목적이 두가지임을 알려왔다. "첫째 목표는 저를 낳아준 친부모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입양당시 윤구삼씨
▲ 윤구삼 입양당시 윤구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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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구삼씨는 모국에 오기 직전, 자신의 한국 방문 첫 번째 목적을 이루기가 이미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낳아준 친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소식에 그는 지금 실의에 빠져있다.

윤씨는 또한 지난 34년 동안 자신이 부산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34년만의 모국 방문을 앞두고 친부모를 수소문 하던 중 최근에 자신이 부산출생이 아니라 서울출생 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잘못된 기록과 정보를 가지고 30여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34년 만에 모국을 찾은 해외입양인 윤구삼씨에게 조국이 준 두 가지 환영선물은 "친부모의 사망소식과 자신에 대한 잘못된 기록"이었다.

나는 이제 그가 두 번째 목적이나마 이루고 출국하기를 기대하지만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윤구삼씨 지난 1998년 유럽 농아인 베드민턴 선수권전과 2003년 세계 농아인 베드민턴 선수권전에서 각각 복식 동메달을 땄던 경력이 있다. 그러나 복지천국이라는 덴마크의 농아인 베드민턴협회의 재정상황은 열악한 것 같다. 비록 농아인이지만 국가대표인데 그의 이번 한국 방문에 대한 정부지원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비로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다음은 청각장애 덴마크 입양인이자 배드민턴 국가대표 윤구삼씨와 34년만의 한국방문 감회에 관해 30일 서신으로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그동안 부산출생으로 알고 있다가 최근에야 서울출생인 것으로 처음 알았는데 출생년도와 입양 당시상황에 대하여 그동안 기록에는 어떻게 되어있었는가?
"기록에는 1977년 5월 7일생으로 되어있고 생후 4일 후인 1977년 5월 11일 부산시청 부근 계단에서 내가 행인에게 발견된 것으로 되어있다. 지나가던 행인이 나를 발견하고 경찰서로 데려왔고 시설을 거쳐 생후 3개월 후인 1977년 8월 2일 덴마크로 입양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최근까지 내 친부모님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내가 한국사회봉사회에서 받은 소식에 의하면 위의 기록 중 내가 입양된 날짜 외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새로운 기록에 의하면 나는 서울 친부모집에서 태어났고 친모가 난산 끝에 나를 낳으시고 돌아가시자 그 후 고모의 손에 의해 병원을 거쳐 해외입양 된 것으로 밝혀졌다."

34년 만에 모국에 돌아운 윤구삼씨
▲ 윤구삼 34년 만에 모국에 돌아운 윤구삼씨
ⓒ 윤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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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관련한 잘못된 기록 때문에 입양인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다. 친부모 소식과 그리고 자신의 입양기록이 그동안 잘못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또 이번에 한국방문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해외입양 보내진 지 어느 덧 34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모국을 방문할 여유나 기회가 없었다. 물론 한국에 대해 궁금했고 생각은 많이 했다. 그러나 그동안 친부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찾을 가능성도 0%로 봤기 때문에 많은 경비와 시간을 들여서 한국에 오는 것을 계획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2년 전 한국에서 세계 농아인 배드민턴 대회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한국에 갈 준비를 차고차곡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방문을 준비 하던 중 최근에야 친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사회봉사회를 통해 입양이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내가 부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친부모님을 수소문 하던 중 최근에 내가 서울 태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 참 마음이 무겁고 허탈하다. 그러나 상실감이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배드민턴 연습과 시합준비에 임하고 있다."

- 친부모는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나? 한국에 다른 가족은 있나?
"한국사회봉사회에서 최근에 내게 알린 소식에 따르면 친모는 나를 낳자 마다 피를 많이 흘리시고 돌아가셨다. 친부모님은 나 외에 친누나도 있었다. 친부는 친모가 돌아가시자 생활고로 나를 키울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에도 심한 생활고로 고생하시다가 1993년 친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나를 낳으시고 그 때문에 친모가 돌아가셨고 그 후 친부도 생활고로 돌아가셨다는 최근 소식은 정말 내게 충격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 충격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좋은 소식도 있다, 내 친누나는 1976년 5월생으로 3살 때부터 고열로 앓은 후 친누나도 나처럼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같은 청각장애인과 결혼하셔서 지금 자녀 둘과 충북청주에 살고 있다. 나를 입양 보낸 한국사회봉사회의 주선으로 조만간 친누나와 34년 만에 만날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 덴마크의 양부모님이나 가족은 어떤 분들인가? 청각장애는 언제부터 있었나?
"현재 양부는 78세 양모는 76세, 덴마크 누나는 37세로 자녀가 둘 있다. 자식을 하나 더 원하셨던 양부모님은 한국아이의 입양을 원하셨고 결국 나를 선택하셨다. 그래서 1977년 8월 2일 나는 덴마크로 보내 진 것이다. 처음에 양부모님은 내가 청각장애아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2살 때 양부모님은 내가 청각장애아라는 것을 의사의 도움으로 우연히 발견 하셨다. 그 후 양부모님은 수화를 배우셨고 나에게도 가르치셨다. 양부는 변호사이고 양모는 교사다. 지금은 두 분 다 은퇴하셔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 34년 만에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충격 속에서도 감회가 많을 것 같은데?
"요즘 기분이 이상하다. 34년 전 나는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 보내졌고 지금 모국에 내가 와있다는 기분이 묘하다. 주변사람들도 유럽과는 달리 나와 외모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게 한다.

친모를 생각하면 더욱 어떤 사명감 같은 생각이 든다. 친모는 나를 낳으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고 돌아가셨다. 마음 한쪽에 어떤 말 못 할 부채감이 든다. 비록 이번에 이미 돌아가신 친부모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내가 태어난 나라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 배드민턴 시합준비와 훈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틈이 날 때 마다 친누나를 만날 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

연습중인 잠깐 휴식중인 윤구삼시
▲ 윤구삼 연습중인 잠깐 휴식중인 윤구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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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친누나 외에 다른 친척도 있나?
"한국사회봉사회에 따르면 친부의 여동생인 고모가 있다. 고모님댁도 생활이 어려워서 내가 입양 가는 것을 도울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나는 서울 집에서 태어난 후 고모님이 나를 입양 보냈다. 친부는 재혼하지 않으셨고 돌아가실 때 까지 생활고로 고생하셨다. 내 친누나는 고모님이 키우셨다. 생활에 여유가 있으셨으면 고모님이 나도 키우셨을 테지만 고모님도 생활이 어려워서 결국 나에 대한 양육은 포기하고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화제를 바꾸자. 먼저 덴마크 농아인 배드민턴 대표팀으로 한국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한다. 배드민턴은 언제부터 어떻게 배우게 되었나? 배드민턴이 유구삼씨 삶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나?
"배드민턴은 7살 때 양부로부터 배웠다. 21살 때인 1998년 네덜란드에서 농아인 배드민턴 유럽 선수권전이 있었는데 참가하여 동메달을 받았다. 2002년 스위스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복식부문 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3년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 1회 세계 농아인 배드민턴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그 후 2006년 오스트리아와 2007년 독일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전에서는 각각 복식부문 4위를 기록했다. 2010년열린 유럽 선수권전 대회에선 다시 동메달을 땄다. 이번 한국대회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배드민턴을 통해 나는 여러 곳을 방문했다. 위 경기위에도 프랑스, 대만 등 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열리는 배드민턴 대회에 선수로 참여했다. 배드민턴을 통해 나는 세계 여러 곳에 있는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결국 내 모국 한국도 방문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덴마크 농아인 스포츠 협회는 이번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농아인 배드민턴 선수들을 지원할 예산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회에 자비로 참여했다. 이번 대회는 11월 7일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연습에 여념 없이 지낸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조만간 만날 한국 친누나에게 미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친누나는 11월 7일 마지막 시합이 끝난 후 만날 예정이다. 처음엔 친부모님을 찾아서 만날 예정 이었지만 이미 돌아가셔서... 나는 친부모님을 만나면 "저를 입양 보낸 것을 용서해 드렸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안 계셔서.. 친누나를 통해서 친부모님에 대해 또 고모님에 대해 듣고 싶다.

지난 며칠간 내 생애에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친모가 나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막 울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합준비 및 연습 등으로 제대로 울어보거나 생각할 시간도 못 가진 것 같다. 시합이 끝나고 지금은 저 세상으로 가신 친부모님을 생각하며 한동안 나는 "우울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나에게 삶과 생명을 주신 친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이번 방문을 통해서 내 삶의 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자비로 이번 <제 3회 세계농아인 배드민턴 선수권대회> 에 참가한 덴마크 청각장애인 배드민턴 국가대표 윤구삼씨(Jesper Soendergarrd)를 후원하시고 싶은 분은 아래 메일주소로 연락 바랍니다. jesper_soendergaard@hotmail.com



태그:#윤구삼, #김성수, #입양, #배드민턴,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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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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