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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동안 이어진 네팔의 티하르(Tihar)가 끝났다. 원시적인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네팔인들이다. 특히 힌두와 불교가 어우러진 그들의 종교 의식을 보다보면 참 원시적 다신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티하르는 그것과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러구의 어머니가 그녀의 오빠들에게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 러구 어머니의 디까 의식 러구의 어머니가 그녀의 오빠들에게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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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까를 행하는 일곱 색깔의 꽃가루와 색소들이다. 색색이 꽃가루를 쓰기도 하고 페인트처럼 만들어져 나오는 색소 용품도 있다고 한다.
▲ 디까에 필요한 일곱색깔 뿌자 용품 디까를 행하는 일곱 색깔의 꽃가루와 색소들이다. 색색이 꽃가루를 쓰기도 하고 페인트처럼 만들어져 나오는 색소 용품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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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인정한 3일간의 공식 휴무는 물론이고 전통을 이어오는 그들의 욕심이 머무는 곳에서는 일주일 정도의 휴무가 인정되었다. 공식적으로 최대 명절인 더사인이 끝난 지 보름 정도 지났다. 그리고 이어진 티하르에는 더사인(Dasain)보다 더한 관습적 강제가 엿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방인의 눈에만 그렇게 비춰진 것은 아니다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된다. 멀리 지방에 공사장에 가있거나 카트만두의 가족들도 누이가 있는 곳이면 며칠간에 걸친 휴무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도 누이가 오빠에게 기원하는 날에는 찾아 나선다. 

어제 아침 기자는 한국주재 네팔기자협회 대표인 러구 트리파티(Ragu Tripati)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오늘 집에 오셔서 다주 바이(형과 아우)디까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디까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인도 네팔사람의 중요한 의식이다. 꽃을 으깨어 만든 꽃을 눈과 눈 사이 이마 한 가운데 붙여주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네팔인들은 그곳을 가리켜 붓다의 눈, 지혜의 샘, 제3의 눈 등으로 부른다. 네팔 말로 붓다란 의식이란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초대를 받고 집을 나섰다.

러구의 어머니가 자신의 큰 오빠인 러구의 외삼촌에게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 오빠의 이마에 축원을 비는 문양을 새기는 러구 어머니 러구의 어머니가 자신의 큰 오빠인 러구의 외삼촌에게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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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구의 어머니가 자신의 오빠에게 여러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상을 차려 내놓은 후 소화를 돕는 더위(네팔식 요구르트)를 마시도록 도와주고 있다.
▲ 소화를 돕는 요구르트를 대접하고 있다. 러구의 어머니가 자신의 오빠에게 여러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상을 차려 내놓은 후 소화를 돕는 더위(네팔식 요구르트)를 마시도록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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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초대라 9시 20분 집을 나서며 가까운 곳에 사는 화가 날 바하두르 비케이 집에 들리기로 하고 전화를 했다. 마침 집에 있었다. 꽃목걸이를 준비해서 그에게 걸어줄 생각이었다. 사실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는 네팔에서는 그들 방식대로 다양한 디까 의식을 한다. 그래서 통일된 것은 없다. 대개의 경우 어린 여동생이 손위 오빠에게 축원한다. 다른 경우는 형제끼리, 또는 자매끼리 서로 축원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오빠와 여동생이 없는 집에서 여자 형제끼리 혹은 남자 형제끼리 축원을 빌어주다보니 새로운 전통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비케이에게 축하한다며 축원을 해주었다. 디까를 행해준 것은 아니고 그냥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인사를 했다. 잠시 그의 작업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도 곧 300Km 정도 떨어진 치트완이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여동생 집을 찾아간다고 했다. 먼 여행길인데 다음날 돌아온다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행사인 셈이다. 곧 러구 집을 향했다. 러구가 집 근처로 찾아간 기자를 맞아주었다. 그의 집에는 어머니와 삼촌들 그리고 여동생이 와 있었다. 그의 부인인 먼주 트리파티는 포카라에 있는 친정집에 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혼한 여성들이 당당하게 친정집을 가는 날이다.

러구의 외삼촌들이 디까 의식을 행하고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준 여동생(러구 어머니)에게 답례로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 여동생에게 답례의 축원을 비는 오빠들 러구의 외삼촌들이 디까 의식을 행하고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준 여동생(러구 어머니)에게 답례로 디까 의식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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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구의 집에는 세 사람의 외삼촌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4형제인데 막내 동생이 외국에 있어서 러구 3형제와 여동생이 함께했다.

찌아와 간단한 셀로띠라는 쌀로 만들어 튀긴 튀김과자 같은 것을 내놓았다. 셀로띠는 이미 여러 차례 먹어본 낯익은 음식이고 우리 입맛에도 어울리는 맛좋은 음식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지 얼마 안 되어서 몇 차례 사양을 했지만 한사코 내놓는 음식을 사양만 할 수 없어서 맛있게 먹었다. 훌륭한 식성과 성의껏 마련한 음식을 사양하지 못하고 맛있게 먹는 습관이 또 다른 음식을 부른 셈이 되었다. 곧 또 다른 음식을 내놓았다. 모두 보통 때 같으면 간식이지만, 배부를 때 먹는 음식은 식사를 반복하는 셈이다.

외삼촌들에 대한 러구 어머니의 디까 의식이 끝나고 러구 형제들에 대한 여동생의 디까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기자도 초면의 러구 여동생으로부터 축원을 받았다.
▲ 러구 여동생의 축원을 받는 기자 외삼촌들에 대한 러구 어머니의 디까 의식이 끝나고 러구 형제들에 대한 여동생의 디까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기자도 초면의 러구 여동생으로부터 축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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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으로부터 축원을 받은 러구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 축원을 받는 러구(한국주재 네팔기자협회 대표) 여동생으로부터 축원을 받은 러구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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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0여 분을 간식을 먹으며 세무 업무를 하는 그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티하르의 중심인 디까 의식을 한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옆방으로 갔다. 그런데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없단다. 티하르 의식이 치러지는 동안은 그 공간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는 수없이 러구에게 카메라 가방과 윗옷을 가져다 줄 것을 청했다.

디까 의식은 먼저 세 사람의 외삼촌과 한 사람의 나이 많은 조카에게 행해졌다. 이마 한 가운데 밀가루를 반죽해서 일자형으로 붙였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일곱 가지 색깔을 점처럼 붙였는데 그 일곱 가지 색은 무지개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색마다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러구는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우선 흰색은 일곱 색깔 무지개에는 없는 색인데 평화로움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 바탕에 일곱 색깔로 수를 놓는 것이다.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것을 축원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압축되는 것 같다. 다만 그 축원의 과정에 정성이 더해지면서 더없이 아름다운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여동생이 오빠들에게 정성스럽게 디까 의식을 행한다. 그러는 동안 오빠들도 마찬가지로 어린 여동생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리라. 더없이 사랑스런 누이로 어여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란 생각이다.

디까 의식이 끝나고 나면 이마에 일곱 색깔 무지개가 아름다운 상징이 된다. 그리고 동전을 머리와 양어깨에 얹어주고 꽃잎을 얹어준다. 그렇게 의식이 끝나고 나서 현실적인 선물이 이어진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옷이나 수건 등을 선물해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준비한 선물 중에서 더위(네팔 요구르트)라는 음식을 먼저 그릇에 담아 마실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잔을 받쳐주듯 입에 대어준다. 그것을 받아 마시고 나서 받은 음식과 선물은 잠시 한쪽에 정리해둔다.

곧 오빠들이 여동생들에게 답례로 디까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그들은 축원을 빌어준 여동생들에게 적은 금액이라도 용돈을 준다. 그리고 나서 여동생의 발 끝에 머리를 대고 최대한의 고마움을 표한다. 한 동안 그들의 의식을 사진을 찍으며 바라보다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았다.

러구의 동생이 자신에게 축원을 해준 여동생의 발 끝에 이마를 대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네팔인들의 우리의 큰절처럼 경배할 때 자신의 이마를 상대의 발 끝에 댄다.
▲ 모든 것을 바치는 축원, 흑백의 여백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러구의 동생이 자신에게 축원을 해준 여동생의 발 끝에 이마를 대고 감사의 표시를 하고 있다. 네팔인들의 우리의 큰절처럼 경배할 때 자신의 이마를 상대의 발 끝에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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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까 의식이 모두 끝나고 의식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앞 줄은 러구 어머니 형제들과 몸이 불편한 러구의 누나, 뒷줄은 그의 형제들과 기자다. 뒷줄 맨 른쪽에 러구, 그 다음이 기자다.
▲ 티하르의 정점인 디까의식이 끝나고 기념촬영 디까 의식이 모두 끝나고 의식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앞 줄은 러구 어머니 형제들과 몸이 불편한 러구의 누나, 뒷줄은 그의 형제들과 기자다. 뒷줄 맨 른쪽에 러구, 그 다음이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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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간의 의식을 본 기분이다. 마치 드라마 한편, 영화 한편을 보고난 그런 기분이었다. 잠시 후 러구의 어머니와 외삼촌들의 디까 의식이 끝났다. 곧 러구 형제가 여동생이 행하는 디까 의식을 통해 축원을 받을 차례라 한다.

그때 러구는 기자에게도 의식에 참여하란다. 나보다 손윗사람이니 여동생의 축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처음 본 여동생이고 오빠의 친구인 낯선 이방인에게 축원을 해준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나는 그 의식에 주인이 되어 함께 했다. 가장 먼저 축원을 하기 위해 솔잎에 물을 적셨다.

오빠들이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물을 뿌리며 정결히 하는 의식이 있었다. 곧 물을 머리와 귀에 적시더니 나중에는 피마자기름을 머리와 귓속에 발라주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머리를 감기듯 만져주었다. 낯설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깊은 경배 의식을 갖고 있는가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기쁘게 축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답례도 함께했다. 답례를 할 때 기본적으로 조금 큰돈에 잔돈을 얹어주는 것도 네팔인들의 관습이다. 기자는 잔돈으로 한국 돈 1000원을 주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둘러앉아 여동생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먹었다. 오빠들이 음식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여동생들은 음식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오빠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여동생들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그것도 모두 정성을 다하려는 의지에 표현이라 한다. 길고 긴 의식이 끝났다. 다른 초대가 있어서 곧 자리를 떴다. 여동생으로부터 받아든 음식을 다 먹지 못하자 러구가 그것을 싸주었다. 선물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디까 의식이 끝난 후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꽃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마치 자신의 형제애를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오토바이를 탄 형제가 디까의식을 마치고 거리로 나왔다. 디까 의식이 끝난 후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꽃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마치 자신의 형제애를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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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금메달을 딴 사람들처럼 꽃목걸이를 한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형제가 준 선물이다. 가족의 구심이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팔에 것을 한국에 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풍습을 전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과 사람 속에서 꽃 핀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들이 키워가는 가족의 사랑이 인류를 구원하는 힘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피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티하르 디까, #네팔 축제 티하르, #시인 김형효, #한국 주재 네팔기자협회 회장, #김형효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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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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