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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겉표지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겉표지
ⓒ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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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법을 통해 강한 자에게 핍박받는 약자를 도와주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변호사가 너무 많다. 그런 부조리한 세상이 싫었던 나는 한 때 변호사를 꿈꾼 적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법과 거리가 먼 길을 걷게 된 나지만, 꽤 오랫동안 변호사에 대한 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라면 응당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아직도 깊게 남아있다.

박원순은 내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변호사였던 것 같다. 대구지검 검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연 뒤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한겨레>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았고,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 중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책에는 그의 사상이 가득 담겨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말은 죽는 순간에도 사형 집행에 임하는 집행관에게도 의연했던 토머스 모어의 유언이기도 하다. 박원순은 재판장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선고받은 토머스 모어, 소크라테스, 잔 다르크, 예수, 중세의 마녀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드레퓌스, D.H. 로렌스, 페탱, 그리고 로젠버그의 용기 있는 법정 드라마를 책에 담담하게 담아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주저한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가장 큰 변화이다. 그 앞에서 사람들은 한없이 작아지고 나약해진다. 그러나 책 속 인물들은 깨어있는 자의식으로 인간의 그러한 본능마저 뛰어넘었다.

"아쉬운 것은 (소크라테스가) 너무도 평안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마지막 운명의 순간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안타깝게 절규하였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며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고통과 불평과 절규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바람에 오히려 흠집을 낼 정도였다."(본문 36쪽)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필요 이상으로 평안하게 죽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예수는 상반된다. 태도가 어찌됐든 그들의 공통점은 '죽음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정열'이라 부르고 싶다.

부활절, 교회에서 하는 예수 수난극을 영어로는 passion play라고 한다. 직역하면 '정열의 극'이다. 정열은 그냥 생성되지 않는다. 시련을 겪고 수난을 당하면서도 그들 안의 꺾이지 않는 용기와 의지들이 정열을 만들어낸다. 역으로 정열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삶에 있어 수난과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을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생애에 한 일을 익히 알고 있다. 또 그들이 그런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죽임을 당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죽었고,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줬는지도 모른다. 생의 막바지에 이른 그들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변호사 박원순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변호사인 내가 이런 죽음을 막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러하듯이.

지난 26일, 한 달 가까이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박원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촌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하고도 학생운동으로 인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박원순. 그의 인생 자체가 정열이었다. 사람들은 안정된 길을 걸어온 사람보다는 어려운 길을 걸어온 사람을 더 좋아한다. 시련을 극복해야만 진정 현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저서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의 삶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모두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극복해낸 사람들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그가 '작은 대한민국'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을 잘 이끌 수 있을지 다소 걱정스럽기는 하나, 정열이 그의 삶을 이끌었듯 서울도 그렇게 이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새롭게 변화할 서울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내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박원순 씀 | 한겨레출판사 | 1999.10. | 1만2천원)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한겨레출판(1999)


#내목은매우짧으니조심해서자르게#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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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감명 깊었던 현대문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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