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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삶을 살았죠. 그러면서도 그게 행복인 줄 알았어요. 돈도 특별히 부족하지 않았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착각이었더라구요. 시간적으로 쫓기고 물질적으로 쪼들리고. 도시빈민의 삶이 따로 없었어요. 지금은 삶의 질이 달라졌죠. 적은 돈으로 살고 있지만 여유가 생겼어요.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요."

 

서울과 일산에서 27년 동안 살다가 전라남도 장성으로 삶터를 옮겨와 살고 있는 유충열(57)씨의 얘기다.

 

광주에서 살다 결혼과 함께 서울로 간 유씨는 늘 전원을 그리며 살았다. 10년 전부터선 귀촌을 염두에 두고 틈나는 대로 광주 근교의 담양, 장성, 화순을 여행했다. 나이 쉰 즈음에 삶터를 옮길 것에 대비한 여행이었다.

 

주변에선 서울 근교의 경기도나 강원도를 권했지만 남도를 향한 그의 그리움은 변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쯤이었어요. 남도를 여행하다 우연히 축령산 휴양림을 알게 됐죠. 거기서 숲을 조성한 임종국 선생의 삶을 전해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편백나무 숲을 거닐면서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씨는 밤마다 농업관련 책자와 자료를 뒤적였다. 인터넷 자료도 검색했다. 귀촌을 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쉼 없이 찾고 고민했다. 몇 년 전엔 큰 아이를 전남대학교로 진학시켜 남도생활에 적응토록 했다.

 

유씨는 지난해 6월 축령산 자락,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모암리에 둥지를 틀었다. 땅 5000㎡를 구입하고 편백나무로 집을 지었다. 나머지 땅엔 배추와 고추를 심었다. 고구마, 콩, 깨도 심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첫 농사였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농업관련 자료를 모조리 섭렵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주말농장 같은 곳에서라도 체험해보고 올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서로 돕고 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고 살아요. 옆에서 시킨 대로만 하고 있어요. 시골 분들 정말 지혜롭더라구요.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정말 좋은 분들이에요."

 

부인 박정옥(51)씨의 얘기다.

 

 

장성의 산골로 옮겨온 지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주민들과 부대끼면서 이들 부부의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엇을 받으려하기 보다 줄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가지고 있던 생각도 바뀌었다.

 

"재밌는 일이 있는데요. 제 집사람이 예전엔 소똥을 보면 일이십 미터를 돌아갔어요. 근데 지금은 '소중한 소똥'이라며 냄새까지도 고소하다고 얘기를 해요."

 

"길에 떨어져 있는 소똥까지도 주워오고 싶더라구요. 한번은 소똥을 한 트럭 얻어가지고 오는데. 빨리 가서 밭에 뿌릴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밭을 기름지게 하고, 내가 먹을 것들을 안전하게 키워 줄 소똥이잖아요."

유·박씨 부부는 벌써 '소똥 예찬론자'가 돼 있었다.

 

소출은 아직 별 것 없다. 하지만 정성껏 가꿔 지인들과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룻밤 묵으러 온 민박손님의 간식거리로도 내놓는다. 이보다 큰 보람이 없다. 함께 사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내 일, 네 일도 따로 없다. 이웃의 일도 힘닿는 데까지 거든다.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마음도 아파해 준다. 지역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는 것도 일상이다. 지역 농산물의 소득화도 관심사다.

 

"지역에 보물이 참 많더라구요. 오래 전부터 여기에 살고 계신 분들은 귀한 줄 모르는데요. 보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마을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내 소득사업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저희처럼 귀촌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 같아요."

 

귀촌 1년 만에 산골주민으로 뿌리를 내린 유충열·박정옥씨 부부. 이들의 '보물찾기'에 관심이 모아진다.

 


태그:#유충열, #박정옥, #귀촌, #실로암농원,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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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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