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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수목 드라마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KBS <공주의 남자>가 자체 최고 시청률 25.8%(AGB닐슨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를 기록하며 지난 6일 막을 내렸다. 이로써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공주와 그의 남자를 향하던 부동의 시청층 시선을 어느 드라마가 끌어올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난 5일 새로 시작한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반응이 심상치 않다.  

 SBS 새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SBS 새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 SBS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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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회 만에 운명적으로 얽혀있는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분명하게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담고자하는 철학까지 보여줌으로써, 예상치 못했던 배우의 호연과 함께 앞으로의 24부작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시작부터 이야기의 얼개를 뿌리 깊게 내린 이 드라마 1,2회를 본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바람으론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말 그대로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 깊은 시청자가 될 것이다. 그간 수목을 지배하다 물러나는 사극의 마지막 활개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사극의 첫 회는 11.1%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대의? 지랄하시지 말라 그래"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을 창제한 왕 '세종'과 창제된 한글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백성 대표 '채윤'의 이야기다. 1,2회에서는 상왕 태종 이방원(백윤식 분)의 기에 눌려 왕위에 오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임금 세종(송중기 분)이 스스로의 조선을 꿈꾸게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주축을 이뤘다. 가로 세로 크기가 같은 정사각형 안에 1부터 시작하는 숫자를 배열하되 모든 행과 열, 대각선상의 함이 모두 같게 하는 '방진'에 몰두하는 세종. 방진은 절대 권력을 위해 살육도 서슴지 않는 아버지 태종을 이해하려고 부단히도 애쓰면서도 희생당한 이들 생각에 괴로워하는 세종의 유일한 도피처다.

 <뿌리 깊은 나무> 1,2회 화면 갈무리
 <뿌리 깊은 나무> 1,2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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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종과 함께 극을 이끌어갈 또 다른 주인공 어린 채윤, 일명 똘복 역시 노비출신의 반푼이인 아버지 석삼이 역모로 위장한 태종의 계략과 숙청에 휘말려 죽게 되면서, 복수심에 불타 세종과 맞부딪힐 운명이 된다. 그에게 닥친 모든 불행의 근원이 세종 때문이라 오해하며, 백성의 어버이인 임금이 제 백성 하나 구하지 못하는 대의는 '지랄'이라고 매섭게 쏘아 붙인다. 세종은 어리지만 당돌한 똘복의 거친 지적을 아로새기며 진정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결국 절대 권력의 아들에서 군주의 길로 나아간다.

태종은 명석하지만 유약한 임금 세종이 매달려 있는 방진을 통해서 권력에 대한 가치관을 표현했다. 방진의 규칙 따윈 제쳐두고 삼방진 가운데 '1' 하나만 둠으로써, 피의 숙청을 통해서라도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강력한 왕권추구를 드러냈다. 그에 반해 세종은 분산된 왕권과 재상 정치를 지향하며 백성을 굽어 살피는 군주로 새로운 조선을 꿈꾸고 이는 한글창제로 이어진다. 대의라는 명분 아래 피로 권력을 잡은 태종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새 나라의 기틀을 잡아야 하는 세종이 꿈꾸는 조선이 무엇인가. <뿌리 깊은 나무>는 앞으로 이 드라마를 관통할 철학을 단 2회 만에 명쾌하게 제시했다. "대의? 지랄하시지 말라 그래. 우리 아버지 죽여도 되는 대의가 뭔데?".  

"왕을 참칭하지 말라. 상왕은 왕이 아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뿌리 깊은 나무> 어린 세종 이도 역의 '송중기'
 <뿌리 깊은 나무> 어린 세종 이도 역의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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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세종 그리고 똘복의 카리스마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며 숨 가쁘게 전개된 1,2회 이야기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린 세종 이도를 연기하는 배우 '송중기'다. 수목 이틀 방영 만에 그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킨 송중기는 피로 권력을 잡아 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쉽게 떨칠 수 없는 두려움,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치이는 젊을 세종을 치밀하게 표현해 냈다. 특히 이도가 "왕을 참칭하지 말라. 상왕은 왕이 아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라고 아버지 면전에다 외치는 2회 장면은 그런 아들에게 칼을 들이댄 태종과의 맞대결에서 고조된 긴장감만큼 압도적이었다.

조만간 중년의 세종을 연기할 한석규의 등장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어린 이도 송중기를 벌써부터 아쉬워하는 이유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아버지와 대항할 때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과 불안이 담긴 눈, 태종이 보낸 자결을 의미하는 빈 찬합으로 절망에 빠졌다가도 마방진의 힌트를 얻었을 때 희열을 느끼는 모습. 익히 알고 있던 세종대왕의 이미지를 뒤흔든 송중기만의 세종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나의 조선은 다를 것입니다" 나의 드라마는 다를 것입니다 <추리극>

자신이 꿈꾸는 조선의 답을 얻는 이도가 무장한 태종을 찾아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을 헤치고 걸어가는 것을 2회 마지막 장면으로 해,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한껏 끌어올린 <뿌리 깊은 나무>.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사극이 아니다. 제작진의 기획의도와 언론의 드라마 소개를 통해 알려졌듯, 한글 창제와 이를 둘러 싼 연쇄 살인 사건 추적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추리극이다.

세종이 즉위한 지 28년이 지난 후, 그를 이해하는 궁녀 소이와 한글 창제를 함께하는 집현전 학자들이 있지만 학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시작하고, 이에 어린 시절 아버지 죽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왕을 암살하려는 강채윤에게 사건의 수사를 맡기게 되는 것이 24부작 <뿌리 깊은 나무>의 주요 흐름이다. 한글창제를 담당하는 집현전 학자들의 연쇄 살인 사건을 왕을 암살하려던 채윤이 수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스토리를 통해, <뿌리 깊은 나무>는 궁극적으로 '과연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나아갈 것이다. 

나약한 왕 젊은 세종이 아버지 태종에게 대항하면서 왜 하필 문자를 통해 나라의 기틀을 잡으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그 과정이 전체 스토리의 핵심을 이룬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1,2화에 등장한 방진과 함께, 한자로 쓰여, 뒤바뀐 밀지의 내용을 빌미로 죽게 된 똘복 아버지 이야기는 세종이 꿈꾸는 조선에 왜 한글이 필요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문자가 곧 권력이던 시대, 백성을 위한 세종의 조선에 '뿌리 깊은 나무' 한글은 어쩌면 필수적으로 요구됐는지도 모르겠다. 

 <뿌리 깊은 나무>의 주요 주인공들
 <뿌리 깊은 나무>의 주요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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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를 세종의 한글 창제기로 얕봐선 안 된다. 문자와 권력, 당대나 지금이나 요구되는 진정한 리더십이야기를 24부작 안에 고스란히 녹여내려면 1,2회에서 보여준 치밀한 구성과 함께 <공주의 남자>를 잃고 방황하는 시청자를 끌어올 만큼의 몰입도를 유지해야 한다. "문자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이 거창한 물음을 쉽게 풀어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뿌리 깊은 나무>의 한 회, 한 회들이 중요하고 그 가운데 펼쳐질 살인 사건 역시 중요해진다.


#뿌리 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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