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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께 반팔 티셔츠 4벌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그러나 오늘까지(10월 12일), 한 달이 다 되도록 택배는 오지 않고 있으며, 판매자는 가타부타 뚜렷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의 트위터를 통해 추측하건대, 재고가 없어서 배송이 늦어지려니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곧 있으면 11월. 겨울이 시작될 텐데 아직까지 반팔 티셔츠를 보내지 않으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러나 더 신기한 건 구매한 제품이 근 한 달이 다 되도록 오지 않았음에도 내가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0만 원에 가까운 거금을 주고 산 반팔 티셔츠가 아직도 오지 않았는데도 태연자약한 나의 모습. 보통 인터넷으로 물건을 샀는데 배송이 안 되는 경우, 이틀만 지나도 전화해서 확인하던 내가 무엇 때문에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빨리 인증샷 찍고 싶다
▲ 한 달이 넘어도 오지 않는 티셔츠 빨리 인증샷 찍고 싶다
ⓒ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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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그 반팔 티셔츠가 일반 옷이 아닌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티셔츠이기 때문이다. 8월 말부터 <딴지일보> 사이트를 통해 예약 판매하고 있는 바로 그 <나꼼수> 티셔츠.

현재 <딴지일보>는 <나꼼수>에서 이야기했듯이 콘서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를 팔고 있는 중이다. 티셔츠 한 장당 25000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으로.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 티셔츠를 구매하고 있다. 그리고 혹여 그들이 깜빡 잊고 혹은 고의적으로(물론 그럴리 없겠지만) 티셔츠를 보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어차피 티셔츠 구매자들이 원한 것은 티셔츠가 아니라 자신이 듣는 <나꼼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팟캐스터 리뷰에서 후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가. 문제는 <딴지일보>가 그 후원을 그냥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원은 받지 않는다"... <딴지>의 정신 

자신을 "전 딴지일보 수뇌부이며 전 사업기획실땅님"이라고 밝힌 이의 글을 보자. 그는 현재 <딴지일보>가 경제상 매우 어려움에도 왜 후원을 받지 않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딴지 역시 거지다. 알거지다. 그러나 가장 싫어하는 말이 '거지면 거지답게 구걸하라'는 말이다. 거지처럼 굶을지언정, 거지처럼 구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꼰대들의 가오다시다. 그렇기 때문에, 허리 꼿꼿이 펴고 의연하게 굶는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최후의 자존심이다.

(줄임) 상황이 이런데도 딴지의 수뇌부는 후원계좌 공개를 거부한다. 아무런 서비스 없이 계좌를 공개하는 것은 '구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을 받는다면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딴지 매점에서 티셔츠를 팔고 머그컵을 판 것처럼 말이다. 독자들은 적선하고 싶지만 수뇌부는 구걸하지 않는, 자존심 게임이다.

(줄임) 무작정 후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자존심 외에도 그들의 철학에 있다. 대놓고 정기적인 후원을 받게 되면 후원자들은 어떤 요구를 하게 된다. 스스로 딴지에 지분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운영과 논조에 관여하게 된다. 편집부는 편집부대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변하게 된다. 그 결과로 '재미가 없는' 사이트가 된다. 이들이 생계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재미'가 없어진다면 그들은 딴지에 남을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소망과 현실을 맞바꾸는 타협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손으로 그들의 꿈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들의 굶주린 배를 움켜쥔다.

요컨대 <딴지일보>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움에도 후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언론의 독립성 때문이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 언론이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광고 수주를 위해 기업에 대한 비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오히려 <딴지일보>가 언론이 해야되는 고민을 모두 짊어진 것이다.

그들에 대한 후원은 신기원이다
▲ <나는 꼼수다> 그들에 대한 후원은 신기원이다
ⓒ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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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고민은 <나꼼수>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김어준은 <나꼼수> 시작과 함께 광고를 받지 않겠노라고 멤버들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골방에 모여 넷이 키키덕거리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료광고나 공개방송도 하지 않는다. 공개방송은 이벤트처럼 한번은 할지 모르지만 그걸 수익모델로 생각하지 않는다. 꼼수다에 광고문의도 들어오지만 총수는 수용하지 않는다.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줄임) 만약 광고를 넣는다 해도, 그 업체에 돌아갈 광고효과보다 불이익이 더 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적지 않은 이들이 나에게 꼼수다에 광고하고 싶다는 문의를 하지만 내 답은 '목숨 걸고 광고하시게요?'다. 물건 몇 개, 책 몇 권 팔아보자고 곧 세무조사 당하고 싶으셔도, 미안해도 광고 못해줄 꺼다. 아쌀하게 300만 원짜리 광고 낸다고 하면 또 모를까.

결국 현재 <나꼼수>가 광고를 받지 않는 건 그들의 철학도 철학이지만 엄중한 시대상황에 의거한다. 2008년도 촛불시위 나온 이들에 대해 벌금형을 부과하는 이 치졸한 정권 하에서 <나꼼수>에 광고를 한다는 건 최소 400일 동안(대선까지 이제 한 400일 남았다) 회사 문을 닫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나꼼수>를 계속 들을 수 있을까? 글쓴이는 같은 글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딴지에 정기적인 후원을 하지 못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비정기적이고 자발적인 후원뿐이다. 그냥, 아무 말없이, 아무런 요구 없이, 입금하면 된다.

그렇다. 자발적인 후원. 다행히 현재 <나꼼수>의 자발적인 후원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확인할 수는 없지만 티셔츠 재고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티셔츠 구매를 명분으로 진행되는 <나꼼수>의 후원은 아직 진행형인 듯 하다. 많은 이들이 <나꼼수>를 계속 듣고 싶다는 일념 하에 자발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꼼수> 토크콘서트를 가려면 그래도 <나꼼수> 티셔츠 정도는 입어줘야지 않겠는가.

<나꼼수>에 대한 자발적 후원의 의미

현재 모아지고 있는 <나꼼수>에 대한 자발적 후원금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노사모의 돼지 저금통이 떠오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깨끗한 선거를 하겠다며 각 개인들에게서 한 푼 두 푼 받았던 돼지저금통과 <나꼼수>의 후원금은 그 성격상 여러모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 포함해서 돈을 내는 주체가 많은 부분 겹칠 것이며, 그 주체들이 돈을 내는 목적 역시 대동소이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그러나 이와 같은 점들로 미루어 <나꼼수>에 대한 후원을 노사모의 돼지저금통과 마찬가지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자 실수이다. 두 후원의 차이가 비록 작다고 할지라도 바로 그 차이가 근 10년간 이루어진 변화이며,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야만 현재 <나꼼수>로 몰려드는 후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두 후원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제 주요 인사가 되버린 그들
▲ <나꼼수> 4인방 이제 주요 인사가 되버린 그들
ⓒ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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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 그 후원의 대상이다. 앞서 말했듯 두 후원 모두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바람을 담지하고 있지만, 노무현의 돼지저금통은 노무현이라는 인간 개인에 대한 팬심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 <나꼼수>에 대한 후원은 <나꼼수> 패널 개인이 아닌 <나꼼수> 프로그램을 향하고 있다.

즉, 돼지저금통이 정치인 노무현의 성공을 기원하고 돕는 방법이라면, <나꼼수>에 대한 후원은 시민으로서 내가 모르는 바를 깨닫게 해준 이들에 대한, 그리고 나 대신 열심히 불의와 싸워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따라서 <나꼼수>에 대한 후원은 노무현의 돼지저금통보다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돼지 저금통은 노무현에 대한 팬심을 기반으로 했던 만큼 노무현의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나꼼수>에 대한 후원은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시민의식,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연대의식의 발현인 바, 변질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나꼼수> 후원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꽤나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민 없는 시민사회, 시민 없는 시민단체를 자조적으로 읊어왔는데 <나꼼수>에 대한 후원은 우리 사회에 그동안 담론으로만 존재했던 시민이 적극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돼지저금통으로부터 10년, 드디어 깨어 있는 시민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나꼼수>는 그것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읽고 <딴지일보>를 후원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인터넷을 통해 (주)딴지그룹 계좌를 찾으시면 된다.



태그:#나는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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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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