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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유승도 이 산문집에는 ‘원시인’(?)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있는 산골 시인이 들려주는 백지에 그리는 삶이 강원도 산 허리춤을 휘감는 동강, 그 맑은 물소리처럼 우리들 가슴을 촐싹촐싹 적신다
시인 유승도이 산문집에는 ‘원시인’(?)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있는 산골 시인이 들려주는 백지에 그리는 삶이 강원도 산 허리춤을 휘감는 동강, 그 맑은 물소리처럼 우리들 가슴을 촐싹촐싹 적신다 ⓒ 이종찬

"땅보다 하늘이 가까운 새들은 고정된 집이 없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집을 가지려는 마음조차 없앤 듯하다.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번식기에 둥지를 만들긴 하지만 시기가 지나면 미련 없이 집을 떠난다. 고정된 집을 버렸다 하여 세상 전체가 그들의 집은 아니다. 잠자리가 될 만한 장소는 새들에게도 널려 있는 게 아니어서 매일매일 안전하게 밤을 보낼 만한 공간, 하룻밤 동안의 집을 찾아서 밤을 보낸다." - 33~34쪽, '새의 집' 몇 토막

충남 서천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강원도 망경대산 허리춤에 붙은 산골에서 살고 있는 시인 유승도. 토종벌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식의주를 해결하고 있는 산골시인. 시커먼 수염을 기른 그 시인을 짙푸른 하늘 한 귀퉁이에 하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뭉개구름이 떠있는 3일(월) 낮 3시, 그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만났다. 

산골시인을 만난 그날, 유난히 맑고 따가운 가을햇살이 산골시인 집 앞마당으로 '와아~와아~ 쏟아져 내렸다. 그 시인 집 앞마당에는 빠알간 입술을 촘촘촘 내민 다알리아꽃과 연보랏빛 엉겅퀴꽃, 경상도에서 '땡깔'이라 부르는 주홍빛 꽈리가 제멋대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에게 손대지 마세요'라고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그 집 마당 한 귀퉁이 놓인 평상 위에 들고 갔던 옥수수막걸리를 내려놓고 앉자 산골시인이 그가 펴낸 산문집 <수염 기르기>란 책과 토종꿀 한 병을 들고 나온다. "올해는 이상기후 때문인지는 몰라도 토종벌이 다 죽고 없어 작년에 딴 이 토종꿀 한 병과 하나 남은 벌통뿐"이라며, 어서 맛을 보라고 숟가락을 손에 쥐어주는 산골시인.   

작은 눈에 새까만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산골시인. 그가 펴낸 <수염 기르기>를 펴자 "그 책은 집에 가서 천천히 읽고, 지금은 토종꿀과 포도를 안주 삼아 막걸리나 마시자"며 싱긋 웃는다. 그 모습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산골시인임에 틀림없다. 무슨 일이든 '억지'를 부리지 않고 주어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자고 쓴 산문집이 <수염 기르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새 울음소리에 담긴 속뜻은?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힘이 약해 잡아먹힐지라도 삶과 목숨을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개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그 무엇의 노예도 되지 말아야 한다. 돈이 많건 적건, 학벌이 있건 없건, 배웠던 배우지 못했던, 여자건 남자건, 어른이건 아이건, 권력이 작건 크건 대등하며 위아래가 있을 수 없다" -'책머리에' 몇 토막

강원도 산골 비탈진 산에 있는 들에서 흙과 씨름하며 살고 있는 시인 유승도(51)가 펴낸 세 번째 산문집 <수염기르기>(도서출판b). 이 산문집에는 '원시인'(?)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있는 산골 시인이 들려주는 백지에 그리는 삶이 강원도 산 허리춤을 휘감는 동강, 그 맑은 물소리처럼 우리들 가슴을 촐싹촐싹 적신다.

이 책에는 모두 2부에 산골마을에서 살다 한순간 생각이 머물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하고 산문이 되기도 하는 시인이 쓴 산문 57편이 알찬 수수알처럼 박혀 있다. '노란 개구리' '쥐와 나 사이엔 덫이 있다' '고개 숙인 꽃' '삶의 빛깔은 붉다' '바보들도 살 수 있는 곳' '봄을 바라보며 깊어가는 늦가을 풍경 넷'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자연과 시''시린 어깨 위에 내려앉는 추억의 겨울' 등이 그것.

시인 유승도는 '책머리'에서 "배고프던 시절, 사람들은 소쩍새 울음소리를 '솥적다 솥적다'로 들었다"고 말을 조심스레 꺼낸다. 그는 "지금의 내겐 소쩍새 소리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며 "아무리 들어도 솥이 적다고 흐느끼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왜?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에 솥이 적다고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홀딱벗고새", 곧 검은등뻐꾸기를 슬며시 끄집어낸다. 시인이 그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고 들려오기도 하는 것이어서" 이를 곰곰이 들추면 "사람들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요즘 '만물<신까지 포함하여>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생각을 한다"라며 "인간과 자연 개개 물체는 일대일 대등한 관계"라고 못 박았다.   

"보름달 아래서는 조용히 달빛을 받아먹으며 걸어야 한다"

유승도 산문집 <수염 기르기> 이 책에는 모두 2부에 산골마을에서 살다 한순간 생각이 머물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하고 산문이 되기도 하는 시인이 쓴 산문 57편이 알찬 수수알처럼 박혀 있다
유승도 산문집 <수염 기르기>이 책에는 모두 2부에 산골마을에서 살다 한순간 생각이 머물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하고 산문이 되기도 하는 시인이 쓴 산문 57편이 알찬 수수알처럼 박혀 있다 ⓒ 도서출판 b
"방송이나 신문, 잡지, 책 등을 통해서 자연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도시의 삶과 마찬가지로 산속의 삶도 그리 만만치 않다. 사람을 멀리 하고 인간 이외의 생물 혹은 무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을 지향한다고 해도, 사이좋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환상에 가깝다." -111~112쪽, '바보들도 살 수 있는 곳' 몇 토막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망경대산 허리춤을 끼고 살아가는 산골시인 유승도. 시인이 이번에 펴낸 <수염 기르기>는 <현대불교신문>에 1년 동안 연재했던 것들과 문예지, 사보 등에 실렸던 글들을 묶은 책이다. 시인은 이 산문집을 통해 15년 앞부터 산골에 들어가 사는 스스로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며 삶의 즐거움과 번식을 위해 싸우면서 살아간다"고 말하는 산골시인. 시인이 바라보는 자연생태계는 인간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첨단과학기술과 '빨리빨리'로 이어지는 물질자본주의 시대에 산골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빨리빨리'가 아닌 '느릿느릿'이며, 도시 사람들이 볼 땐 문명을 거스르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산골시인은 이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타고난 그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오늘은 해보다 밝은 보름달이 길을 비추고 있으니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 환해진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걸 볼 수 있겠다. 혹시라도 뛰지 마라. 보름달 아래서는 조용히 달빛을 받아먹으며 걸어야 한다"(겨울 보름달빛 훤하다)처럼 산골시인이 바라보는 자연과 사람은 언제나 한몸이다. 그 한몸을 둘로 나누는 것은 사람이 지닌 욕심 때문 아니겠는가. 

"'문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위한 것'이다"

"집 앞의 나무 한 그루를 위해서 글을 쓴다면 그것은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무를  위한 것일까? '문학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의 '사람'이 '자연'과 대비되는 존재의 의미라면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나도 단정을 지어 말해본다면 '문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위한 것'이다" -218쪽, '자연과 시' 몇 토막

산골시인이 쓴 산문집 곳곳에는 자연과 사람 이야기로 가득하다. 시인은 자연을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시인도 그 자연 한 부분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 가끔 산골시인이 짓는 농사를 헤집는 곤충이나, 새들, 야생짐승들, 잡초들, 나무들을 미워하기도 하고, 가끔 이웃들과 말다툼을 하기도 하지만 산골시인은 그들을 결코 멀리하지 않는다.

"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이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풀 한 포기나 벌레 한 마리 등 아주 하찮아 보이는 미물들조차도 사람처럼 그 존재가치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산골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까불거리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긴다. "인간에게서 약간이라도 시선을 틀어 바라본다면 무한한 크기로 열려 있는 자연이 보일 것"이기 때문에.

산골시인은 그가 쓰는 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툭 던진다. "내가 쓰는 시들은 사람들 잣대로 자연을 판단하는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이라고 귀띔한다. 시인은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 그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다가오고 멀어지는 교감들이 내 시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못 박는다. 시는 꼭 누군가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삼라만상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위'에 있는 귀한 존재가 사람?

"투툭 척, 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다른 가지들을 치며 떨어져 기존의 낙엽 위에 자리를 잡는다. 줄기차게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이어지더니 불현듯 가을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이건만 요 몇 해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나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지구오염에 의한 급격한 환경변화 탓일까?... 나는 세상이 급격히 변화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거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215~216쪽 '자연과 시' 몇 토막

시인 양문규는 "유승도 시인은 까만 눈과 까만 수염으로 세상을 보고 또 굽어본다"라며 "까만 눈에는 까만 세상보다 더 어두운 세상을 향해 "얻으러 하지 말고 / 차가운 마음으로 살"려는 형형함이, 그리고 까만 수염에는 "낭떠러지 아해 저 계곡 속으로 / 곤두박질친다 해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살아 있다"고 썼다.

시인 조기조는 "산골에서의 삶은 도회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때로 경이롭게 보인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자연, 여유, 한적, 소박 등등의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낭만적 시각일 때 더욱 그렇다"라며 "유승도는, 자신의 산골에서의 삶을 수사 없이 말하자면 한 꺼풀의 가감도 없이 드러내 보여주며, 그러한 부드러운 시각을 삐딱하게 교정해준다. 어느 곳에서나 삶은 고단하며 고단한 만큼 외로우며 외로운 만큼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서글프다는 사실을 통해서"라고 적었다.

산골시인 유승도 세 번째 산문집 <수염 기르기>는 '자연 그대로'를 뜻한다. 사람과 삼라만상은 '일대일' 평등한데, 사람들은 사람만이 삼라만상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위'에 있는 귀한 존재로 착각하며 자연을 제 맘대로 부리고 있다는 그 말이다. <수염 기르기>는 사람과 자연은 하나이며, 자연이 무너지면 사람도 함께 무너진다는 화두를 툭 던진다.    

시인 유승도는 1960년 충남 서천에 있는 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나의 새' 등 시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가 있으며,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를 펴냈다. 지금 강원도 망경대산 허리춤에서 자급자족하는 농사를 지으며 글밭을 가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수염 기르기 - 유승도 산문집

유승도 지음, 비(도서출판b)(2011)


#시인 유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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