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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꿘투> 표지
<꿘투> 표지 ⓒ 삶이보이는창
시집을 읽는 건 좋다. 시를 통해 시인의 눈으로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되니까. 하지만 시집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시라는 게 내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내 마음대로 실컷 지껄였어도 시는 결국, 읽을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끄덕이며 읽은 시도, 이해할 수 없다며 휙 넘겼던 시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평가가 바뀐다. 당장 내일의 내가 봤을 때 지금 읽은 이 시가 달라질 수 있으니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래도, 감히 시집을 읽고 글을 쓴다.

<꿘투>는 '삶창시선'에서 나온 새 시집이다. 선배의 추천으로 이장근 시인의 시를 처음 읽게 됐다. 그이가 누군지 몰라 궁금했으나 시를 읽다보면 알겠지 싶어 그냥 읽었다. 읽다 보니 '어떤 사람'이겠구나는 조금 알겠어도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더라. 가족이나 다른 이들, 그리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을 관찰해서 그려내는 걸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표제시인 <꿘투>는 권투를 '꿘투'라 말하는 관장님을 그리고 있다. "꿘투는 훅도 어퍼컷도 아니라/ 쨉이란다", 한 방에 눕힐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간 큰 선수가 되지 못한다, '쨉'이 여러 번 먹혔기 때문에 KO도 가능한 거라고 말하는 관장님의 삶이 그대로 시로 남았다. 그이는 관장님을 통해, 이 시집을 통해 꾸준히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다른 이를 통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나 아닌 다른 이를, 내 둘레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누군가 집 밖에 잠시 내놓은 컴퓨터 모니터를 들고 가려다가 걸려서 경찰차에 타는 노인을 보고 물새를 떠올리고("노인은 부리를 꽉 다물고 있었다/ 눈빛만이 요란했다/ 먹이를 찾는 듯 했다" <저공비행>), 폐휴지를 줍는 이를 보면서 "그녀의 걸음이 수상쩍다/ 계단을 내려오며 옆으로 옆으로/ 게걸음이다/ 그녀의 무릎이 계단의 어금니에/ 씹히고 있다 (중략) 그녀가 걸을 때마다/ 길은 치통을 앓는다"(<게걸음>)고 썼다. 그리고 택시 운전기사의 "손에 요금을 쥐여주며/ 줬다 받았다 줬다 받았다/ 손을 꼭 잡고 싶다"(<택시 드라이버>)는 시인의 눈과 손은 크고 따뜻할 것 같다.

둘레의 작은 것을 돌아보는 시인의 크고 따뜻한 손

어렵지 않은 시어, 길지 않은 내용이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뚝뚝 끊어지는 암호 같은 글이 아니라서 좋다. 복잡하게 꼬아 놓거나 너무 압축해버려서 뭔 소린지 모르겠는 글, 그리고 너무 관념적인 생각만으로 쓴 글, 그런 글이 아니라 나도 바로 옆에서 보고 듣는 '시' 같아서 좋다.

쫓아 읽는 입모양만으로도 시 '읽는' 맛이 났던 "쪽쪽쪽/ 태엽 감는 소리가 힘차다"(<母子의 시간>)는 구절도 좋았다. <수상한 직립>을 통해 "수상한 나의 자세/ 끝나지 않는 직립/ 무엇과의 교미가 이렇게 긴"지 잠깐 생각했고, <꼬리의 근성>을 읽으며 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꼬리 중 하나로서 "꼬리의 근성을 믿"게 됐다.

그리고 하모니카를 "'도'를 불고 다음 음을 내려면/ 급하게 자리 옮기지 말고/ 같은 구멍에서 거꾸로 들이마셔야 한다/ 불고 마시며 건너는 징검다리"라 말하며 "임종 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높은 '시' 음을 내셨던 할머니/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찰나에 내신 음은/ 끝이자 시작인 '도'였을 것이다" 하고 할머니 이야기로 쓰여진 <하모니카를 불다가>가 내게도 '나는 지금 생의 어느 음에 와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그이는 "300 이하 맛세이 금지"인 당구장에서 맛세이를 치며 저항하곤 하지만, 식탁에 올라오는 마음에 안 드는 신문을 바꾸기는 쉽지 않고(<브랜드 있는 밥상>), "싸파리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이 셋 키우기 위해 일을 한다.

시집을 다 읽어도 자기 노동에 관한 이야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 그 점이 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아, 그렇군. 이런 시를 쓰는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아이들은 좀 더 솔직하고 따뜻한 눈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완제품'인 시는, 1차 생산자인 시인이 '쓰고', 2차 가공자인 내가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좋은 시들을 보면 나도 가공자에서 생산자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내 삶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렇게 드러내도 거리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나도 시를 쓸 날이 오겠지?

덧붙이는 글 | <꿘투> 이장근 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11년 9월, 140쪽, 8000원



꿘투

이장근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1)


#꿘투#이장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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