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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북 봉화와 예천을 거쳐 흐르는 총 길이 100km가 넘는 강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의 중상류가 수몰돼 사라집니다. 또 하류로 운반되는 물과 모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그동안 낙동강의 정화를 담당했던 필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거대한 삽질에 의해 베이는 버드나무 군락, 파헤쳐지는 흰 모래 사장, 멸종 위기의 수달, 사라져가는 흰수마자….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주댐의 건설로 운포구곡을 비롯한 비경과 문화재, 농경지도 수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6~7일 사이 약 20명의 작가들은 낙동강의 젖줄 내성천으로 향했고, 삽질에 의해 찢기고 파괴된 강바닥을 다시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흐르는 내성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지금 내성천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 스스로 강이 되어, 모래의 강 내성천을 마침내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내성천 살리기 참여 작가 일동>

아름다운 물빛의 내성천
 아름다운 물빛의 내성천
ⓒ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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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어느 하루였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아니나 다를까, 창 너머에선 비 내리는 소리가 저주처럼 들리고 있었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추는 아주 잠깐을 제외하면 거의 한 달 가까이 내리는 비가 이토록 무섭고, 진절머리 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고, 집의 가구와 벽엔 혐오스러운 곰팡이가 판을 치며, 눅눅함이 빠지지 않는 이불과 어둠 속에서 발 빠르게 사각사각 움직이는 바퀴와 꼽등이가 악몽처럼 삶을 위협하는 이번 여름은 가히 지옥을 방불케 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잔잔하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쏴아아, 하고 몰아치기 시작할 때 서서히 커져가는 그 소리를. 징그러운 수준을 넘어 경악스러운 비였고, 여름이었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미친 날씨에 그야말로 돌아버리기 직전이었고, 눈에 띄게 급변하는 환경 악화에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아무리 만두 찜통 안처럼 후텁지근하더라도 시원한 에어컨이 팽팽 돌아가고 있는 실내에 들어오면 거짓말처럼 더위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확실히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지금의 상황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듯했다.

하기야, 여름엔 쾌적하고 겨울엔 따뜻한 청와대 집무실에서 사계절 내내 셔츠 차림으로 업무에 열심인 대통령 각하가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서 보도블록 공사에 비지땀을 흘리거나 주구장창 내리는 비에 일자리를 뺏겨 자살을 택하는 일용직 노동꾼들의 심정에 하등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리라. 올 여름, 중부지방을 덮친 스콜성 폭우는 북쪽의 찬 공기와 남쪽의 더운 공기가 맞부딪혀 형성된 일종의 구름 통로에 모인 비구름이 도심의 수증기와 합류하면서 생긴 결과물이란다.

그렇지만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무수한 피해를 입힌 일련의 사건 이면에는 나날이 증가하는 냉방기와 자동차가 만든 도시의 열섬 효과와 산림을 무차별적으로 파헤친 개발, 수해 복구 방지보다 청계 광장에 LED 조명 설치하는 데 많은 돈을 쏟아 부은 행정적 과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도시 내부의 역학적인 관계들이 이러한 재앙을 부추긴 셈이다.

에어컨을 가동한 자동차의 실내는 시원하겠지만 차체 주변은 과열된 철판처럼 뜨거운 기운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내가 시원해지는 대신 남들은 더워지는 게다. 너무도 당연한 이 부분에 대해 그 누구도 고찰하지 않는다. 환경 문제에 있어 안이하고도 자기중심적인 발상이 향후 재난 영화나 지구 종말 영화와 같은 아찔한 순간들을 불러오리란 예상은 단지 나의 병적인 걱정인 것일까?

댐이 완공되면 꿈에서나 만나게 될 강

얼마 전 내성천을 답사하기 위해 경북 영주를 찾았다. 낙동강의 지류이자 세계적으로 드문 모래톱을 품에 안고 있는 내성천은 현재 건설 중인 영주댐이 완공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로 인해 인근 마을이 수몰되는 것은 물론이고, 강을 파헤치는 당사자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내성천을 지키던 나무와 풀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영문도 모른 채 터전을 잃고 말 것이다. 이 얼마나 야만적인 일인가!

나는 바지를 허벅지까지 둘둘 말아 올리곤 동행에 나선 지율 스님을 따라 맨발로 추적추적 내성천의 모래 길을 걸어보았다. 요 며칠 사이 비가 끊이질 않아 평소보다 물이 많이 불었다는 스님의 설명대로 휴양지의 해변처럼 눈부시게 새하얀 모래들은 모두 물에 잠겨 있었고, 그 위를 걷는 나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은 늪지대를 걷는 악어가 된 심정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어렵게 옮겼다.

세찬 물결을 따라 발가락 사이를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모래의 감촉을 느껴보거나 밑도 끝도 없이 모래 바닥 아래로 쑤욱 빠져보는 경험은 그 지역민이 아니라면 접하기 어려운 것이라 퍽 신기했다. 비록 온종일 먹구름이 머리 위를 떠다니며 이따금 비를 뿌리기도 했지만, 왕버들의 나뭇가지가 길게 뻗어 있는 강가를 걸으며 훼손되지 않은 시골의 풍경을 구경하는 일은 오감이 즐거운 체험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성천 답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도시 생활에 푹 잠겨 있던 내게 신선하고도 잊고 있었던 순간을 다시금 깨우쳐 주었다. 다리 위에 서서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는 내성천을 볼 적엔 언젠가 꿈에 다시 나올 것만 같아 그 모습을 세세히 새기듯 오래토록 응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댐이 완공되면 이제 이러한 풍경은 꿈이 아니라면 더 이상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밀양댐 공사현장 입구
 밀양댐 공사현장 입구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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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이 모래뿐이랴

사라지는 것은 비단 내성천의 모래뿐만이 아니다. 일찍이 옛 선조들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했거늘, 요즘은 1년을 달리하고 모든 것이 휙휙 무너지고 잃어버리고 사라진다. 한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업종을 바꾸거나 리모델링하는 도시의 상점들은 물론이고, 시골의 산이나 논밭도 개발을 핑계로 쑥대밭이 되기 일쑤다. 이제 길을 걷다가 덤프트럭과 같은 중장비 차량이 옆을 지나가면 또 어딜 파헤치려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날 정도다.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숲이 엉터리 이발사에게 깎인 머리처럼 깡그리 벌목되어 있는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난다. 아무렇지 않게 나무들을 베고, 저 자리에 너절한 공장 따위를 짓는 사람들의 두뇌 속엔 대체 무엇이 들었을까? 자연을 한낱 상품과 다를 게 없는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는 발상과 잇속 불리기에 눈이 뒤집혀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행태는 그저 천박할 따름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땅과 산, 강과 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수밖에 없다. 정착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땅에 깃발을 쿡쿡 박으면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내 땅이니 넘볼 생각하지 마" 하고 말한다면 그는 비웃음만 살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유욕과 집착은 농경 생활과 봉건사회가 발달해가면서 함께 강박처럼 성장했고,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주식이나 도박과 같은 투기로 왜곡되었다.

이번 여름, 자전거를 타고 우리 마을을 이리저리 탐방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나는 시간과 날씨가 허락될 때마다 밖을 쏘다녔다. 저탄소 녹색 성장을 들먹이면서 홍보하듯 자전거로 출근을 하는 정부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만 같아 다소 꺼림칙스럽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자전거는 아주 훌륭한 이동 수단이자 여가의 방편임이 분명하다. 좋은 영화나 책처럼 아는 사람들마다 권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에선 결코 볼 수 없던 풍경과 순간을 만날 수 있다. 구름의 모양,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의 선명한 윤곽, 그늘 속에 푹 쓰러져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 밀린 자동차 행렬 속에서 지친 표정의 사람들… 자동차로는 갈 수 없었던, 혹은 갈 일이 없었던 새로운 길을 따라 무작정 페달을 밟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다. 십여 년이 넘도록 지낸 곳이지만 여전히 모르는 곳이 즐비하여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떠돈 김정호처럼 자전거 여행을 통해 마을의 지도를 대강이라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런 노력이 별 볼일 없는 수고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주 운이 좋으면 천연 폭포나 아무도 모르게 헤엄을 칠 수 있는 못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주변을 힐끗 살펴보고 인기척이 없다 싶으면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땡볕에 푹 익은 몸을 입수! 더할 수 없이 시원한 물에 몸을 가만히 담그고 있으면 그야말로 행복감에 의식이 흐물흐물 풀어지고 만다.

일찍이 동양철학에서 현자는 냇가의 물 흐르는 소리 속에서 깨달음을 구한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눈을 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자연의 신비한 존재감이 느껴지곤 한다. 이는 안개로 뒤덮인 깊은 산이나 하늘을 흙빛으로 뒤덮을 정도로 폭폭 내리는 눈발과도 같은 압도적인 자연 경관을 마주했을 적에 느껴지는 기묘하고도 벅찬 기운과 같을 것이다.

상주보 공사현장
 상주보 공사현장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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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개발은 누구의 행복을 보장하는가

이러한 놀라운 경험은 결코 인공적으로 조성될 수도 없으며, 자본과 시장이 형성할 수도 없는 즉흥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 산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정녕 마련해주고,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워팰리스와 같은 고급 아파트나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 원어민 영어 강사 따위가 아니라 위와 같은 자연과의 교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단 이과수 폭포처럼 장엄한, 혹은 장자의 철학처럼 심오한 무엇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오렌지 빛의 저녁 햇빛 아래를 걷는다거나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갖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동네 아저씨의 경운기를 얻어 타는 경험처럼 무척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관계야말로 우리 삶의 근간이라 했을 때, 자연은 그 자체로 훌륭한 철학 교수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관계 맺기에 있어 나날이 실패를 거듭하고, 장애에 가까울 정도로 서투른 이유가 자연과 너무도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생활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고도로 발달한 도시일수록 자연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있지 않는가. 모든 땅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이고, 나무는 매연과 오물 속에 서서히 죽어간다. 거기서 대체 무슨 예술이며, 서정시며, 관계며, 삶의 태도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느 졸부가 땅굴 속에 마련한 인공공원처럼 그로테스크하고, 어리석거나 가짜 오르가슴처럼 모두를 기만에 빠트리는 행위다. 요컨대 나는 단지 내가 자연 속에서 느꼈던 즐거움과 행복을 또 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존재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개발 광풍은 그런 전달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만 보인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둘러보다가 ○○기업 사원 주택 단지의 공사 현장을 발견하였다. 이미 나무를 베고, 산을 깎은 자리에 대규모 돌담까지 쌓은 상황이었다. 그 앞에는 조경도가 걸려 있었는데, 유럽풍 고급 휴양지를 표방했는지 장난감 같은 전원주택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물가에서 선탠까지 할 수 있도록 쉼터가 마련될 예정인 듯했다.

공사 현장에는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함께 온 일행들에게 손짓을 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니 열불이 터지는 거였다. 대통령부터 이 나라의 모든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을까? 무엇이든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을 않고, 어떻게든 갈아엎거나 돈을 벌 궁리만 하고 있는 아저씨의 표상이 떠올라 참기 어려울 정도로 미워졌다.

사원들을 위한 비버리힐스를 건설할 꿈에 부푼 저 아저씨는 자신이 파헤친 숲이 내가 열 살 때 호랑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 바로 그곳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까(암만 생각해도 소를 호랑이라 착각한 것 같지만…). 묘하게도, 나는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철거되어 허물어진 현장을 목도한 바 있다. 게다가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주택가도 아주 고맙게도 곧 재개발된단다.

지금도 정신없이 자연을 해치는 이들이여, 망해라!

이렇듯 과거의 추억이 철거되는 것이 비단 나뿐이랴. 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에겐 철거될 자연과의 추억마저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성천의 모래와 자전거 여행과 계곡에서의 수영과도 같은… 쌀이나 과일은 가격이 싼 외국산을 수입하면 된다는, 배춧값이 비싸 김치를 못 담그면 양배추를 사라는 대통령 각하의 철학대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지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파국이냐, 아니면 질질 끌면서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냐. 자연을 등지고 시멘트로 밀봉된 도시에서의 삶은 그런대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미래는 더욱 피폐하고, 비인간적으로 흐를 것이다. 어떤 것이 인간적인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최근 부쩍 증가한 재난 영화, 지구 종말 영화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회의와 공포, 강박을 갖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색내기일 뿐 본질적으로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는다. 환경오염이 거대한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영화를 보고 나와도 우리는 여전히 에어컨을 쉴 새 없이 가동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기업의 상품을 꼬박꼬박 구매한다. 하긴, 지구적인 규모로 오염을 일삼는 글로벌 기업이나 한 어종의 씨를 말리고 있는 일본 참치협회에 비하면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만행은 애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하간, 지금 이 순간도 정신없이 모든 삶을 바쳐 자연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고한다. 분노하는 것 이외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사뭇 슬프기도 하지만, 모두 망해라!

덧붙이는 글 | * 이준하 : <사람세상> 편집위원. 남양주에서 태어나 오늘날까지 남양주를 벗어난 적이 없는 남양주 토박이다.
* 내성천 한 평 사기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공식 홈페이지 : http://www.ntrust.or.kr/nsc
내성천 지킴이들 카페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 http://cafe.daum.net/naeseongcheon
내성천 답사를 원하는 단체는 위 카페를 참조해주세요.



태그:#4대강사업, #내성천, #영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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