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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취직하면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추석 연휴 졸업한 제자들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의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올 추석만큼은 당당한 모습으로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죄송하다는 내용을 읽을라치면 스승으로서 외려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미 서른 안팎이 된 그들에겐 추석이란 즐거운 명절이 아니라, 자신이 '백수'임을 재확인시켜 잔뜩 움츠러들게 만드는, 달력에서 지우고픈 날이다.


귀성길과 귀경길,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열 시간 넘게 운전대와 씨름해야 하는 고통이, 하루 종일 차례상 준비에 시달려야 하는 며느리들의 이른바 '명절 증후군'이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가족과 친지들과의 만남 자체를 피해야 하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타박하는 친지들 앞에선 부모님도 움츠러드시죠"

 

고향에서 명절을 지내고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문자를 보낸 제자들 중 한 아이를 만났다. 배회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책가방을 멘 채 길거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른 누구와 만날 약속도 없으면서.


"제가 잠시 사라져있으면, 저를 잘 아는 친지들도 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못난 자식에 대해 친지들 앞에서 장황하게 '해명'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부모님은 시대를 잘못 만나 그렇다면서 자식인 저를 두둔해주시지만, 부모가 뼛골 빠지게 돈 벌어 대학까지 마치게 해주었는데 서른 넘도록 빈둥거리고 있다며 타박하는 몇몇 친지들 앞에선 저만큼이나 움츠러드시거든요. 친지들이 아는 주변 사람들은 늘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있고, 일찍 결혼해서 아이 낳아 잘 살고 있다는 '엄친아'들 뿐이에요."


그가 명절 만남의 자리를 애써 피하는 건 초라한 자신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그로 인해 움츠러드는 부모님과 어떻든 눈치를 보며 자신의 근황을 물어야 하는 친지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려는 '배려'라는 얘기다. 추석이 일요일과 겹쳤으면, 그래서 연휴가 짧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연휴 동안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이란 고작 커피전문점 밖엔 없단다. 줄곧 다니던 공공도서관도 연휴 기간엔 문을 닫기 일쑤고, 그렇다고 수험서 가득 든 책가방을 메고 고등학생들 마냥 PC방을 전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밤늦도록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공부도 하고 인터넷 검색하며 쉴 수 있는 곳은 커피전문점뿐이라는 거다.


그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또래 친구들과도 만나지 못했다. 해마다 두 번씩 명절은 돌아오지만, 못 만난 지 서너 해쯤 됐다고 한다.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마는 역시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젊은 사람들 태반이 백수인 세상에, '잘 나가는' 친구도, 또 그처럼 여전히 구직 중인 친구도 만남 자체를 무척 조심스러워 하게 됐다고 한다.

 

'주인 없는 하숙집' 지키며 추석 보내는 친구의 조카

 

추석 전날 밤, 내려간 고향에서 늘 그래왔듯 어릴 적 친구를 만났다. 해마다 두 번, 설과 추석 때는 어김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30년 지기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면서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약속장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은 밤인데도 잔뜩 멋을 부린 청춘들의 활기가 넘쳐났고,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버거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눈을 씻고 봐도 주변에 30대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등 너머로 들리는 말투와 관심사, 옷차림 등으로 보건대 20대 후반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기껏해야 스물 서넛 돼 보이는 젊은이들과 그들과 선뜻 구분되지 않는 10대 후반의 '조숙한' 아이들뿐이었다.


그곳은 본디 지금처럼 앳된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공간이 아닌, 지역의 유명한 랜드마크 같은 곳일 뿐인데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외려 20~30대의 광장이라고 여겨질 만큼 나이 찬 청년들이 많았고, 중년들에게도 부담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 많던 젊은이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친구도 그곳에서 똑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만면에 웃음을 띤 쟤네들, 몇 년 후에 과연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던 친구가 생뚱맞게 내게 건넨 첫 마디다. 내로라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지만, 회사 내에서 '청년'들을 본 게 까마득하다며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친구의 조카도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못 내려간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 역시 주인이 잠시 비운 하숙집을 지키며 명절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청년 백수 한두 명 없는 집이 없고, 명절 가족, 친지들의 만남에서 그들과 관련된 얘기들은 서로 암묵적으로 금기시 된 요즘, 청년실업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 노숙자 신세와 하등 다를 게 없어. 현재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보다 자괴감이 쌓이다 보니 시나브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야. 그건 일할 의욕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맹목적인 분노가 싹트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해.


흔히 '저주 받은 세대'라고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협박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거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방치했다고 여기는 순간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몰라. 수년 동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조카에게 귀성하기 전 위로라도 건넬 요량으로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했더니, 잘 먹고 잘 사는 직장인의 하나마나한 '값싼' 충고라며 백안시하는 거야. 섬뜩했지."


조카에게 졸지에 '기득권층'으로 낙인찍힌 친구는 요즘 청년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단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라이터의 가스가 가득 채워져 있어 부싯돌에 불꽃이 튀기기만 기다리고 있는 형세란다. 노년의 실업과 가난은 정서적으로나마 자식들에게 떠넘길 수라도 있지만, 청년들의 그것은 두루뭉술한 미봉책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폭발력을 지닌다.

 

"요즘엔 TV·신문 안 봐요... 겉멋 들었다는 꾸지람뿐이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도 얻을 겸 TV와 신문을 종종 보곤 했는데 요즘엔 아예 끊었어요. 청년실업 극복 사례라고 소개해주는 게 고작 '아이스케키 파는 고학생에서 대통령 됐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내용 일색이고, 그저 눈높이를 낮추라는 조언뿐이에요. 이런 것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상처만 주기 십상이에요. 말하자면, 우리들더러 노력이 부족하고 겉멋만 들었다는 꾸지람이잖아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며 다들 흥겨워하는 추석에 거리를 마냥 배회하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그도 날 값싼 위로를 보내는 '기득권층'으로 보게 될까봐 그저 제자의 하소연을 듣고 고개만 끄덕여주었을 뿐 힘내라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해서, 올해는 취직 좀 시켜달라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려고 했는데, 보름달조차 시커먼 구름 뒤에 숨어 버렸네요. 보름달도 우리 편은 아닌 모양이에요.


이제 집에 돌아가야겠어요. 친지들 모두 돌아갔을 시간이니까요. 선생님, 심란한데 제 말동무 돼주셔서 고맙습니다. 연휴도 다 끝나가니 다시 공부에 집중해야죠. 꼭 취직해서 다음엔 제가 선생님께 커피를 사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활달하던 아이였는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축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얼굴,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올해가 가기 전 과연 그의 어깨 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까. 안녕히 가시라며 인사를 건네는 커피전문점의 '알바생'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학비를 버는, 또 한 명의 가엾은 청춘이었다.


태그:#청년실업, #추석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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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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