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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이 양평에 있고, 직장이 서울에 있습니다. 날마다 양평에서 서울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합니다. '양평'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부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도시 사는 사람들이 1년에 한번 큰 맘 먹고 휴가 오는 휴가지를 저는 날마다 오고가고 있으니, 그렇게 보면 저는 날마다 휴가지에 살고 있는 부러운 사람 맞습니다.

 

실제로 우리 동네는 눈 뜨면 초록이고, 공기 맑고, 햇볕 따뜻하고, 조용하고, 밤이면 마당에서 반딧불이가 춤을 추고, 산토끼와 노루가 내려와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곳입니다. 온갖 풀꽃들이 제 맘대로 피었다 지는 곳입니다.

 

출퇴근할 때는 산 허리를 지나 꼬불꼬불 언덕을 넘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를 지나서 남한강가를 오래 달립니다. 계절마다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색깔과 느낌이 다른, 갈대와 수양버들 사이로 물새들이 노니는 강가를 지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강가를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물빛처럼 맑아집니다.

 

뭉개진 갈대밭과 잘린 나무들...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강가를 지나는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강가에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걸리고부터입니다.

 

갈대와 수양버들이 가득했던 강가에 굴착기와 불도저, 덤프트럭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갈대밭을 깔아뭉개고 수양버들을 뽑아내더니 그 자리에 흙을 쏟아붓고, 시멘트 길을 만들고, 잔디와 느티나무를 심고, 방부목으로 난간을 설치했습니다. 느티나무는 말라 가고 고목이 된 수양버들은 마구 잘려 나갔습니다.

 

이 길은 누구를 위해 만든 길일까요? 누가 걸으라고 만든 길일까요? 농촌 사람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이 길을 걸을 일이 없습니다. 논이 없는 이 길을 걸을 일이 없습니다. 일하는 데 힘을 다 써서 비싼 자전거를 타고 따로 운동할 일도 없습니다. 원래 있던 갈대밭을 뒤엎고 만든 이 길이 정말 '한강 살리기 사업'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태그:#한강살리기사업, #사대강사업, #남한강살리기, #행복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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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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