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숲이 있고, 숲에 난 길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숲길을 걷습니다.
 숲이 있고, 숲에 난 길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숲길을 걷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길이 있습니다. '올레길'도 있고, '둘레길'도 있습니다. '백제의 미소 길'도 있고, '산막이 가는 옛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길을 걷습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타박타박 걷기도 하고, 가쁜 숨 헐떡거리며 몰아치듯이 걷기도 합니다. 혼자 걷는 사람도 있고, 무리를 지어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길에서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리고, 어떤 길에서는 산그늘에 젖어듭니다. 천년의 미소를 떠올릴 수 있는 길도 있고, 추억하는 고향을 더듬을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엉덩이 붙이고 잠시쉬어 갈 수 있는 아름드리 등걸도 있고, 벌렁 드러누워 등골이 시원하도록 쉬어갈 수 있는 너럭바위도 나옵니다. 뙤약볕이나 눈발에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벌거숭이 길도 있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도 있습니다.

다양한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숲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소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오리나무, 개암나무, 자귀나무, 똥나무…,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려보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더 많습니다.

소나무는 소나무라서 좋고, 참나무는 참나무라서 좋습니다. 상수리나무에서는 도토리를 볼 수 있어서 좋고, 개암나무에서는 고소한 개암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경전숲길> / 편역 정운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1년 9월 15일 / 값 24,000원
 <경전숲길> / 편역 정운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1년 9월 15일 / 값 24,000원
ⓒ (주)조계종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구불구불한 산길을 걷다보면 입대고 마실 수 있는 옹달샘도 나오고, 부채질 같은 산바람도 불어옵니다. 올망졸망하게 싸놓고 간 토끼 똥도 보이고, 푸다닥 거리며 튀어 오르는 꿩을 만나기도 합니다.

산바람이 불어고고, 물결소리가 들리는 숲길, 맑은 공기가 넘쳐나고 피톤치드를 쐴 수 있는 숲길처럼 선(禪)바람으로 불어오고, 교(敎)소리가 들려오는 숲, 지혜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경전의 숲길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피톤치드처럼 쏟아지고, 보리심과 자비심, 지혜와 효심이 이루고 있는 경전의 숲을 나그네 같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경전숲길>이 출간되었습니다.      

경전 19권 한 권에 담은 <경전숲길>

대한북교조계종에서 종단의 교육과 연구를 전담하는 교수아사리 소임을 맡고 있는 정운 스님이 편역해 조계종출판사에서 펴낸 <경전숲길>은 부처님의 체취가 담겨 있는 가르침인 '숫타니파타'부터 이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인 부모의 은혜에 대해 설하고 있는 '부모은중경'까지, 19권의 경전을 한권에 담아 경전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경전에서 화전을 일구듯 선정하고, 간벌(間伐)을 하듯이 솎아내고 정리해 길을 만든 경전의 숲길입니다.   

제아무리 크고 잘생긴 나무라도 덩그러니 혼자 자라고 있으면 숲이 될 수가 없습니다. 숲처럼 다양할 수가 없고, 아름다움과 조화로움도 연출 할 수 없지만 어떠한 길도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둘레길을 걷는 나그네가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고 등걸나무에 걸터앉아 쉴 수 있듯이 <경전숲길>을 걷는 나그네라면 해옥에 대한 갈증은 '법구경'에서 달랠 수 있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통해 지혜의 언덕에 오를 수 있습니다.

5명의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
 5명의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석가모니부처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올레길을 걷는 나그네가 솔바람을 쐬고 물결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경전숲길>에서는 '법화경'의 바람을 쐴 수 있고, 부모의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부처님도 제자를 '왕따'를 시킨 적이 있다

숲길의 초입처럼 <경전숲길>은 초기의 불교경전인, "부처님의 체취가 담겨있는 가르침 '숫타니파타', 행복의 길, 해탈의 길인 '법구경', 초기불교의 심장 '아함부', 부처님의 마지막 유행 '대반열반경', 불자로서의 올바른 삶 '육방예경'"으로 시작됩니다.

"차나 비구가 스스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말하도록 내버려 두되, 다른 비구나 비구니들 쪽에서 절대 말을 걸지도 질책하지도 말라. 더구나 가르치는 일은 더더욱 하지 말라."-경전숲길 187쪽-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부처님 시대에도 집단에서의 '왕따'는 고통이며 벌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고루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경전에서 마실 수 있는 웃음의 옹달샘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차나 비구를 왜 왕따 시켰을까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열반에 든 석가모니 부처
 열반에 든 석가모니 부처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부파불교 경전인 "서양그리스인과 동양 비구와의 문답 '밀린다왕문경'"으로 마음을 축이고 나면, 초기대승불교 반야부 경전인 "지혜의 언덕에 오르는 '마하반야바라밀다경', 견고한 다이아몬드 지혜로 번뇌를 깨트리는 '금강경', 재가신자의 청정한 삶 '유마경', 대승불교의 꽃 '화엄경'"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을 집착하는 것이 번뇌이고, 자신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청정행입니다. 우바리 존자님, 이 세상 모든 것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입니다. 모든 법이 서로 의지해서 잠깐 있는 것일 뿐,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허망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경전숲길 271쪽-

유마경 제3 제자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물속에 비친 달 같고,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과 같은 번뇌와 집착을 씻어낼 수 있는 산들바람을 일으키는 숲길입니다.  

숲길의 조화로움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초기대승불교 화엄·정토·화엄 경전인 "불자의 아름다운 행원 '보현행원품', 법장비구의 48대원 '무량수경', 중생이 곧 부처인 '법화경'"의 숲을 걷게 됩니다.

반가사유상, 마음으로 <경전숲길>을 걷고 난 필자의 마음을 모양으로 그린다면 이럴 겁니다.
 반가사유상, 마음으로 <경전숲길>을 걷고 난 필자의 마음을 모양으로 그린다면 이럴 겁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중기대승불교 경전인 "중생 곁에 늘 함께하는 부처님, 불성사상의 정수 '열반경', 여인 성불과 그녀의 설법 '승만경',"이 이루고 있는 숲길을 걸을 때쯤이면 경전의 숲과 맞닿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저만큼 보입니다.

마음 나그네가 그 길을 걷습니다

피톤치드처럼 쏟아지는 부처님의 가르침, 솔바람처럼 불어오는 보리심, 물결소리처럼 들려오던 자비의 숲길을 지나니 지혜의 길, "원융한 본성과 차별적인 수행의 조화로움 '원각경', 북방불교 최초의 경전 '사십이장경'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 '불유교경' 이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 부모의 은혜를 설한 '부모은중경'"이 숲을 이루고 있는 깨달음의 길로 들어섭니다.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명예를 추구한다. 그러나 명예가 세상에 드러날 즈음, 육신은 쇠퇴하고 만다. 명예에 탐닉되어 도를 배우지 아니하면 헛되이 공을 들여 몸만 피로하게 된다.

마치 향을 사를 때, 사람들이 향냄새를 맡지만 그 향은 재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명예는 그 몸을 태워버릴 위험한 불씨를 가지고 있다." - 경전숲길 482쪽-

"적은 소유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넉넉하고 즐거우며 평온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에 누워 있어도 편안하고 즐겁지만, 늘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천당에 있어도 불편하다고 불평만 일삼는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도 늘 가난하다고 신세 한탄하지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만족스러우며 부유하다고 생각한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늘 오욕락에 빠져 지내므로 많은 사람의 지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수행자는 소유지족(少有知足)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경전숲길 497쪽-

경전이 숲을 이루고, 그 숲에 보리의 길, 자비의 길, 지혜의 길, 효심의 길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길이 있기에 마음의 나그네가 걷습니다. <경전숲길>에서 걸을 수 있는 마음의 길은 보리의 올레길이며 자비의 둘레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숲을 이루고 있는 백제의 미소 길이며, 부모의 은혜를 기리며 걷게 하는 효심의 길, 지혜의 길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경전숲길> / 편역 정운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1년 9월 15일 / 값 24,000원



경전숲길 - 한 권으로 읽는 경전

정운스님 편역, 조계종출판사(2011)


태그:#경전숲길, #정운, #조계종출판사, #올레길, #산막이가는옛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