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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한 해 전 아들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일요일에는 쉬게하라"며 스스로 몸을 태웠다. 그 아들이 남긴 외침을 어머니는 평생 가슴에 앉고 살았다. 아니 몸으로 살았다. 사람들이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 어머니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가셨다. 이 땅에 온 지 여든한 해 만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 20년 이상 경찰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 다녔고, 구치소에 4번이나 가두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아들이 마지막 남긴 말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인 이 땅의 1000만 노동자를 위해서라도.

누리꾼 추모 이어져...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잠드소서"

그는 지난 7월, 쓰러지기 직전까지만해도 전광훈 목사가 1000만 원을 어버이연합에 줘 "희망버스'를 막았다"고 자랑하던 그 희망버스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있는 한진중공업에 이르기를 바랐다. 희망버스를 막으려는 목사와 희망버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소선 신자(감리교신자로 알고 있음) 중 하나님은 누구 편을 드셨을까.

이소신씨 별세한 소식을 듣고 누리꾼들은 애도하고 있다. <노컷뉴스> '1천만 노동자의 어머니 끝내 잠들다...이소선 여사 소천' 제목 기사의 <다음> 누리꾼 '카로우'는 "이 시대의 불효자식들이 웁니다. 부디, 평등한 세상에서 열사와 함께 평안하시길" '강물처럼'은 "이제 무거운 짐 여리지만 강했던 그 어깨에서 내려 놓으시고 편히 잠드소서!"라고 애도했다.

'달마과장'은 이런 글을 남겼다.

"어머니로서는 못난 아들을 둬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정말 선구자 같은 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노동자들이 자기 소리와 자기 권리를 부르짖을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아드님의 뒤를 이어서 이 세상에 아직도 억울하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남을 위해 밤낮 고생하셨던 어머니 중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 당신을 보며 아직 이 세상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 만큼 정의롭지 못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국에서 아드님과 그동안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나누시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소식에 누리꾼들은 애도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여사 별세 소식에 누리꾼들은 애도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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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와 함께 행복하시길"

그리고 트위터에도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jb_10***는 "이소선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아드님 전태일 열사의 뜻을 따라 40여 년간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사셨던,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서민의 어머니! 고이 잠드소서"라며 애도했다.

@saje***는 "이소선 여사 하늘의 영원한 평화를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아들 전태일님과 함께 모든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며 부탁했다.

@bari_***는 "이소선 여사의 부음을 처음 접했을 때 전태일 열사의 기일,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다독이던 스무 해 전 기억 때문에 고즈넉히 가라앉았다"며 "이제 김진숙을 떠올리며 그 어머니와 아들을 생각하니 더운 물줄기가 가슴을 휘돌아 눈으로 들이달린다"고 말했다.

전태일을 만났던 첫 기억은 지난 1983년 6월에 나온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평전>(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엮음, 돌베개)을 통해서다. 이소선 여사는 '태일이의 진실이 알려진다니' 제목 글에서 "고난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무언의 발걸음 속에 태일의 뜨거운 절규는 기어이 살아있으리라고 믿는다"며 "태일의 염원인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하루라도 빨리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 아직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태일을 '빨갱이'로 몰았던 그들은 '희망버스'에도 붉을 덧칠을 하고 있다. 자본권력과 결탁한 정치권력이 시민을 보호하기 존재하는 공권력을 사권력으로 행사하는 비극까지 낳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그 바람을 자본과 정치권력은 막을 수 없다. 평안히 잠드소서.

아래는 전태일 열사가 청옥시절-1963년 5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당시 대구 명덕 국민학교 안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말함-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서 전문이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 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를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 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우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 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평전>(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엮음, 돌베개)234쪽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태일, #이소선,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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