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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개그우먼 박미선씨가 지난 2009년 8월 26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2부 코너인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진행자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다시 태어나도 이봉원과 결혼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편으로 태어나겠다. 남편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느껴봐야 한다"는 말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 적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아내는 대부분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남편은 아내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다른 여성과 함께 가정을 일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굉장한 욕심이지요. 아내도 겉으로는 나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모르지요. 그래도 아내를 믿습니다.

"이름만 구절판이네요!"

지난 1일이 아내 생일입니다. 1997년 8월 26일부터 살을 같이 붙이고 살았으니 올해로 14년째입니다. 말 잘하지 않고, 살가운 맛이 없는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입니다. 말투도 투박합니다. 이런 남자 만나 14년을 같이 살아준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입니다.

14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아내를 위해 유일하게 한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이 한 가지로 모든 것이 다 넘어갔습니다. 바로 아내 생일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1년에 딱 한 번 차리면 그 걸로 끝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목요일이 생일이었는데 갑자기 창원이 볼 일이 있어 저녁 늦게 돌아와 차리지 못하고 어제(금요일) 하루 늦게 차렸습니다. 12번(2007년은 사정 때문에 못함)이나 생일상을 받았으면 식상하고, 별다른 감흥도 없을 것 같은데 아내는 좋은 모양입니다. 

달걀 노른자 지단 썰기. 참 어렵습니다
 달걀 노른자 지단 썰기. 참 어렵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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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구절판 만들기. 쇠고기를 볶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우입니다
 이름만 구절판 만들기. 쇠고기를 볶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우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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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이면 돼요."
"무슨 소리 1년에 한 번뿐인 당신 생일인데. 그냥 넘어갈 수 있나요."
"그럼 닭강정이나 먹어 볼까요."
"닭강정?"
"막둥이가 치킨 먹고 싶다고 했어요."
"결국 막둥이군. 닭강정만 하면 너무 섭섭한 것 같고. 구절판 어때요?
"구절판? 너무 과한 것 아니예요."
"말만 구절판이지. 쇠고기와 맛살, 당근, 오이, 달걀 지단, 해파리로 만들면 돼요."
"구절판에는 버섯도 들어가고, 전복도 들어가야하는데 아니니 이름만 구절판이네요!"

아내가 피아노 학원에 간 후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걀 지단을 굽고, 쇠고기도 볶고, 당근과 오이도 썰었습니다. 전복과 버섯은 없어도 맛살도 했습니다. 옆에 있던 막둥이가 엄마 생일상을 차리는 아빠를 보고 자기도 함께하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요. 앞으로 자라 가정을 가졌을 때 자기 배우자 생일상을 차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빠가 엄마 생일상 차리는 모습을 본 막둥이 거들었습니다.
 아빠가 엄마 생일상 차리는 모습을 본 막둥이 거들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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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워낙 치킨을 좋아해 생일마다 닭강정을 만들어 먹습니다. 치킨을 시켜먹는 것도 좋겠지만 다섯 식구가 배부르게 먹으려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이지요. 당연히 정성맛도 있지요.

닭강정, 돈도 아껴 정성맛도 있어

닭강정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간장과 물엿, 마늘, 후추만 들어가면 됩니다. 용량은 제 마음대로입니다. 닭은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를 뺍니다. 닭에 양념을 붓고 1시간 정도 절입니다. 그리고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붓고 달굽니다. 달군 후라이팬에 양념에 조린 닭을 조리면 됩니다. 지난 번에는 닭을 삶아 버려 닭강정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은 생일마다 닭강정을 만듭니다. 간장,마늘,물엿,후추만 들어갑니다. 얼마나 넣을지는 손 가는 대로입니다.
 우리 집은 생일마다 닭강정을 만듭니다. 간장,마늘,물엿,후추만 들어갑니다. 얼마나 넣을지는 손 가는 대로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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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과 이름만 구절판으로 아내 생일을 조촐하게 차렸습니다.
 닭강정과 이름만 구절판으로 아내 생일을 조촐하게 차렸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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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주 작은 것에 감동해

땀을 뻘뻘흘리면서 준비했는데 아내가 왔습니다. 얼굴은 싱글벙글입니다. 닭강정에 겨우 이름만 구절판인데 말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좋아요."
"좋지요. 생일상 받는데 안 좋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지요. 당신 한 것 정말 맛있다."
"닭강정은 조금 짤 수 있어요."
"괜찮아요. 맛있어요."

"아빠가 엄마 생일상 차렸는데 너희들 마음은 어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예."
"인헌이 너도 나중에 아내를 이렇게 대접해야 한다. 알겠어."
"아빠 나도 그렇게 할게요."
"막둥이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아내가 누구보다 좋아했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아내가 누구보다 좋아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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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생일상을 차리면서 깨달은 것 하나 아주 작은 것에 감동한다는 것입니다. 명품이 아닙니다. 명품을 사줄 경제력도 아니지만 설혹 경제력이 있다고 해도 명품은 당장은 기쁨을 주겠지만 감동과 감격은 주지 못하지요.

언제까지 살을 붙이고 살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아내 생일상만은 차릴 것입니다. 앞으로 40번 이상은 차려 줘 백년해로를 하고 싶습니다.

"여보, 나같은 남편 만나 잘 입고, 잘 먹지 못했지요. 1년에 한번 생일상 차리는 것으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이 못난 남편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내생일, #구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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