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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음반심의위원회(이하 음심위)는 지난 16일 2PM의 'Hands Up', 인디밴드 10cm의 '아메리카노', 장혜진의 '술이야' 등의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최종 지정했다. 음심위의 청소년유해매체물 리스트에는 이밖에도 김조한, 옴므, 장기하와 얼굴들, 김현중, 백지영, 노라조, 이장희 등의 노래가 포함됐다.

예쁜 여자와 담배 피우면 19금?

'아카페라 송'으로 10cm와 함께 하지원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광고의 한 장면
 '아카페라 송'으로 10cm와 함께 하지원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광고의 한 장면
ⓒ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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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밴드 '10cm'(십센치)의 '아메리카노(장르 인디뮤직, 발매 2010.08.04, 배급 미러볼뮤직)는 발매 1년이 넘었고 이미 광고 등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일명 '아카페라 송'으로 불리는 CM송으로 10cm와 함께 배우 하지원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광고로 화제를 모은 노래다.

이 곡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은 건 기본적으로 장르도 특이하지만 무엇보다 노래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메~아메~아메~'로 시작하는 이색적인 반복 구는 인디 음악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
이쁜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에
짜장면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아메리카노 깊어 깊어 깊어
어떻게 하노 설탕 설탕 설탕
빼고 주세요 빼고 주세요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필 때
다른 여자와 입 맞추고 담배필 때
마라톤하고 감질나게 목 축일 때
순댓국 먹고 후식으로 (중략)
.....

-'10cm'(십센치)의 '아메리카노'중 일부

음심위는 '아메리카노' 가사 중 '이쁜 여자와 담배피고 차 마실 때, 다른 여자와 입 맞추고 담배필 때' 부분이 건전한 이성교제를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말이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황당' 사유다. 물론 '여자 친구와 싸우고서 바람필 때'이라는 가사도 문제 삼았다. 청소년들에게 외도를 연상하는 불건전한 교제를 조장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바람 필 때'라는 표현이 꼭 '외도'를 지칭하지 않고 포괄적인 젊은이들의 연애 행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유추할 수 있고 노래의 전반적인 흐름이 커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비유로 이해한다면 다소 무리가 따른다.

특히, 선정성과 관련된 판정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발매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정규 2집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졸업'도 '아메리카노'와 유사한 경우다. 이 곡은 졸업 후 방황하는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을 표현한 곡이었지만, 음심위 판정 이전 KBS가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짝짓기에 몰두했지/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갈 곳이 없고/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곡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도, 특정 가사의 선정성만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곡에서도 문제가 된 부분은 '짝짓기'와 '팔려가는'이라는 표현. 동물의 교미행위를 빗대어 성행위를 연상케 하고 성매매나 인신매매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TV앞으로 불러들이는 각종 가요순위 프로그램. 물론 출연자의 대부분은 시도 때도 없이 자극적이고 야한 율동을 선보이며 온몸을 흔들어대는 걸그룹 일색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래도 여전히 직접적인 성적 표현의 강도가 높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걸그룹의 노래는 대부분 허용하면서, 어떤 곡들은 가사 중에 나오는 단어 한 두 개 때문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거나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는 것은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여성가족부 조롱하는 누리꾼들의 자체 심의

이후 포털사이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메리카노가 19금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가요차트 상위권에 오른 아이돌 노래 제목에 자체 심의를 달아 심의 행태를 조롱하는 글이 올랐다. 누리꾼들의 절묘하고도 기발한 자체 심의를 한번 살펴보자.

*미쓰에이 - '굿바이베이비' (아기를 버려서 유해판정)
*GG - '바람났어' (유부남이 클럽 가서 청소년 유해판정)
*티아라 - '롤리폴리' (가슴이 떨려서 유해판정)
*처진 달팽이 - '압구정날라리' (신사동 사람들이 서러워서 유해판정)
*현아 - '버블팝' (밤늦게 나가 놀아서 유해판정)
*2NE1 - '내가 제일 잘나가' (청소년들에게 자만심을 심어줄 수 있어서 유해판정)
*애프터스쿨레드 - '밤하늘에' (밤길을 여자 혼자 걸어서 유해판정)
*지디앤탑 - 'High High' (청소년들이 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어서 유해판정)
*2PM - '핸즈업' - (피로회복제를 귀로 잘못 넣을 수 있어서 유해판정)
*지디앤탑 - '집에 가지 마' (뭘 할지 몰라서 유해판정)
*빅뱅 - '러브송' (사랑노래 안 부르면 전국의 노래방이 망할 수 있어서 유해판정)
*엠블랙 - '모나리자' (눈썹 없는 청소년들이 놀림거리가 될 수 있어서 유해판정)
*f(x) - '핫섬머' (외국인들은 걸을 때 무조건 땀을 흘린다는 인식을 심어서 유해판정)
*바닷길 -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대중가요인데 가수만 부를 수 있어서 유해판정)
*2NE1 - 'Hate You' (청소년들에게 배타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 유해판정)
*리쌍 - 'TV를 껐네' (그냥 방송사들이 별로 안 좋아할 듯)
*슈퍼주니어 - 'Mr.Simple' (Ms.Simple은 없다고 여성부에서 태클 들어올 듯)
*비 - '부산여자' (광주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어서 방송불가 판정)
*달샤벳 - '블링블링' (청소년들이 명품에 빠질 수 있어서 유해판정)
*걸스데이 - '한번만 안아줘' (안는 걸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유해판정)
*민경훈 - 'She' (boy가 서러워서 유해판정)
*바비킴 - '사랑 그 놈' (바비킴은 남자인데 '놈'과 사랑을 해서 유해판정)
*에이트 - '그 입술을 막아본다' (입술을 손으로 막는지 입술로 막는지 몰라서 유해판정)

-출처 : 네이트판

한 음원제공사이트의 최신곡 차트
 한 음원제공사이트의 최신곡 차트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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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사에 술 포함되어도 유해성 단정 어렵다"
25일 SM엔터테인먼트가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낸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통보 및 고시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 승소 판정을 받았다.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는 "술은 마약류나 환각류와는 달라 노래 가사에 문구가 포함돼 있다고 해서 유해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유해매체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SM 더 발라드'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 가사 중에 '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등의 부분이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며 여성가족부로부터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은 바 있다.


누리꾼들의 조롱처럼 요즘 음심위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 잣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방송에서는 배신, 복수, 폭력 등을 소재로 한 선정성과 폭력성이 농후한 막장드라마와 연예오락물들이 버젓이 전파를 타고 있다. 이런 방송에는 관대하면서 가수들만큼은 버르장머리(?)를 잡겠다는 것 아닌가.

자막으로만 '15세 시청가' 등급을 표시하고 있지만 어디 중학교 2학년(15세)이 볼 만한 내용이던가?

'~을 연상케 하므로 유해판정?'이라는 유해매체 지정과 방송 불가곡을 발표할 때 쓰는 이 표현, 이젠 식상하다. 나름대로 기준은 있겠지만, 너무 '입맛'대로 심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가수 위에 방송국 있고 방송국 위에 여성부가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한두 번 무너지면, 음악가들의 자존심은 결국 창작 의지 결여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가볍거나 욕설이 난무하고 자살을 암시하며 게다가 선정적 퍼포먼스까지 남발하는 경우라면 무척 염려스럽다. 하지만, 모호한 기준이 과연 납득이 가느냐는 반문이나오는 상황이다. 음악마다 추구하는 스타일과 내포하는 의미가 다른 만큼 무대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필요 이상의 규제가 없어졌으면 한다.


태그:#아메리카노, #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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