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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세종은 수양대군의 아버지다.
▲ 세종대왕 동상. 세종은 수양대군의 아버지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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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간 승지와 환관으로부터 아무런 전갈이 없다.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놈들이 그놈들과 한패?"

수양이 일단의 무사를 이끌고 시좌소로 치고 들어갔다. 놀란 임금이 옥좌에서 일어났다.

"웬 피가?

수양의 옷자락에 묻은 피를 보고 기겁한 임금이 말끝을 잇지 못했다.

"종사를 위태롭게 하는 자가 있어 먼저 베었습니다."
"종사를 위태롭게 하다니요?"

지엄해야 할 임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김종서가 안평과 작당하여 거사하려 하기에 먼저 역적 괴수 김종서 부자를 베었습니다."

수양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숙부는 나를 살려 주시오."

숙부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인지 숙부께서 내 목숨을 지켜달라는 애원인지 알 수 없다. 안평 숙부는 기대고 싶은 나무 같았지만 수양 숙부는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 오늘따라 더 무섭다. 수양의 눈과 단종의 눈이 마주쳤다. 어린 눈동자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무리 임금의 자리에 있지만 12살 어린아이다.

영월 장릉 역사박물관에 있는 단종
▲ 단종 영월 장릉 역사박물관에 있는 단종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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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은 임금의 곤룡포가 이리 허약할지 미쳐몰랐다. 찌르면 들어가는 것이 옷이고 곤복도 그 옷의 일종이지만 임금의 옷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었다. 조선팔도의 산천초목과 만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임금이 이다지도 약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버지 세종이 입고 있던 곤룡포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강열한 그 무었을 가지고 있었다. 경외감이다. 헌데, 그 용포가 떨고 있지 않은가. 아니 열두 살 어린아이가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떨고 있지 않은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었다.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어렵지 않습니다. 황보인·이양·조극관·한확·정인지·허후·이사철과 도승지 박중손을 불러들여주십시오."

명인지 부탁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12살 어린 임금이 떨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임금이 대신을 불러들이는 패. 조선 말엽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고종의 수결이 압인돼 있다
▲ 명패 임금이 대신을 불러들이는 패. 조선 말엽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고종의 수결이 압인돼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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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다리가 풀려 있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승지가 명패(命牌)를 내었다. 전령을 태운 말들이 시좌소 문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임금이 발행한 신표를 소지한 저승사자들이다.

국가 위난시에 퇴청한 대신들을 불러들이는 증표가 명패다. 임금의 수결을 압인한 패를 두 쪽으로 나누어 하나는 승정원에서 보관하고 하나는 부름을 받는 자에게 전달했다. 신표를 소지한 사람이 궁에 도착하면 숙위하던 승정원 주서가 패를 대조하고 입궁시켰다.

전령이 떠난 것을 확인한 수양은 입직하던 봉석주로 하여금 내금위 군사들에게 갑주를 갖춰 남문을 방비하게 하고 입직하는 별시위 갑사와 총통위로 하여금 홍달손을 엄호하게 했다.

길거리에 혁명사령부를 설치하다

밖으로 나온 수양은 순졸(巡卒) 수백 명과 함께 가회방 입구 돌다리에 지휘소를 설치했다. 순군(巡軍)으로 하여금 시좌소 앞뒤 골목을 차단하게 하는 한편 서쪽으로 영응대군 집 동구와 동쪽으로 서운관 고개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게 했다.

시좌소 외곽에 군사를 배치한 수양은 가회방 돌다리로부터 남문까지 마병(馬兵)과 보병(步兵)으로 네 겹의 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하에서 가장 힘이 센 함귀와 박막동 그리고 수산과 막동에게 제3문을 엄중히 지키라 명했다. 제3문은 시좌소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만반의 준비를 완료한 수양이 영을 내렸다.

"시좌소가 좁으니 들어오는 재상은 수종하는 종을 데리고 들어오지 말고 혼자 들어오도록 하라."

칠삭둥이가 작성한 살생부에 따라 피고 지는 꽃잎들

이윽고 임금의 부름을 받은 병조판서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가마에서 내린 사람이 조극관이라는 것을 확인한 한명회가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순간, 함귀의 철퇴가 작렬했다. 골이 튀고 피가 튀었다. 시강원 세자 사부로 양녕대군을 잘 보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태종에게 내침을 당했던 조극관이 그의 손자 수양에게 희생된 것이다.

잠시 후, 한확과 정인지의 가마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한명회의 손을 주시하던 막동이가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허나, 한명회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입구를 통과하던 한확과 정인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널브러져 있고 피가 낭자하지 않은가.

"이게 어찌된 일이냐?"

정인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에혀, 알려고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셔. 더 알려고 하면 다친다니깐."

구레나룻이 시커먼 사내가 눈알을 부라렸다. 노 재상 정인지와 한확이 젊은이들의 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간 다음 예사롭지 않은 수레가 도착했다. 외바퀴 수레(軺軒-초헌)였다. 일인지하만인지상 영의정의 수레라지만 조금은 사치스러웠다. 하얀 수염을 흩날리며 수레에서 내린 사람이 황보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한명회가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막동이의 칼이 번쩍였다. 황보인이 선혈을 쏟으며 꼬꾸라졌다.

칠삭동이 한명회의 수결
▲ 수결 칠삭동이 한명회의 수결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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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후와 박중손이 죽음의 문을 통과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 길이 없는 우찬성 이양이 가마에서 내렸다. 한명회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수산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이양은 외마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양은 의안대군 화의 손자로 수양과는 종친이다.

임금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사람들이지만 어떤 자는 불귀의 객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관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에 살(殺)로 표시된 자는 죽었고 생(生)으로 표시된 자는 살았다. 권력을 좇아 부나비처럼 달리던 자들이 한명회의 손끝에서 생과 사가 갈린 것이다. 피의 향연 3막 5장중 1막 2장이 끝났다. 제작, 감독 주연은 수양이었지만 연출은 한명회였다.


태그:#수양대군, #단종, #세종, #살생부, #한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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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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