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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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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대중, 그 분은 산이었다. 모진 비바람과 거친 천둥 번개에도 꿈쩍하지 않는 단단하게 쌓인 크고 깊은 도랑을 가진 산이었다. 평생을 세상 풍진에 시달렸지만 한 번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역사와 국민을 배신하지 않은 진정한 이 시대의 지도자였다. 그 분이 가고 없는 지금 더욱 당신께서 남기신 자취가 짙고 그윽하게만 느껴진다.

평생 색깔론과 싸워온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을 당신에게 덧씌워진 색깔론과 싸워 왔다. 독재자들이 정권찬탈과 유지를 위해 가공한 색깔론은 국민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생각할 권리마저 붉게 색칠하여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무찌르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다. 한국에서 진보적 가치와 사고는 어김없이 빨갱이, 종북주의자라는 굴레가 덧씌워졌다. 그리고 그 피해의 정점에는 정치인 김대중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재의 사슬에 묶여 종북주의자로 낙인찍힌 채 사형수가 되었다. 이후, 색깔론은 정치 여정의 고비와 갈림길마다 어두운 그림자처럼 여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차례의 정치보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치보복의 금지는 갈등의 역사를 화해로 만들고 이 땅에 색깔론과 같은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인 폐습의 정치를 끝내자는 용서와 화해를 염원하는 세리머니였다. 진정한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손 내밀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 바로 정치인 김대중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아픔을 녹여 내일의 희망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의 정부 이후 비로소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로움은 비단 정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 등 우리사회 전반적인 곳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었으며 언론의 자유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상향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개인의 표현으로 인해 자유를 억압 받지 않는 시대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 자유가 신장된 것은 물론이며 한국의 문화예술은 세계에 자유로운 정신과 예술을 전파하는 자랑스러운 한류문화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종북주의자 척결' 아닌 '정치검찰 척결'이 필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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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께서 가신 지 2년 만에 다시 어두운 색깔론의 그림자가 대한민국을 드리우고 있다. 엊그제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종북주의자 척결'을 외쳤다. 신임 검찰총장의 '종북주의자'라는 말에 불에 데인 것처럼 가슴이 끔쩍하다. '종북주의자'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억압이 불안한 기시감처럼 되새김되기 때문이다. 한상대 검찰 총장에게 묻고 싶다.

종북주의자란 누구를 어떤 사람을 이르는 말인가? 글자 그대로 북한을 좇는 사람을 종북주의자로 해석하면 되는가? 만약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따르는 사람이 종북주의자인가?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사람이 종북주의자인가?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찬양하고 고무하는 사람이 종북주의자인가? 도대체 정확한 종북주의자의 의미와 뜻 그리고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명확한 개념 없는 종북주의자란 그동안 국민의 인권을 유린해왔던 '빨갱이'라는 말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유엔마저 개정을 권고한 국가보안법이라는 국민의 생각을 압제하는 악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현령비현령 국가보안법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검찰 임의에 따라 마음껏 적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독재 권력은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의 위협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검찰을 앞세워 살벌한 공안통치 '종북주의자 척결'을 일삼아왔다.

물론 21세기 대한민국 민주 검찰이 이성적이며 공정하며 공평한 시각으로 법을 집행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괜한 기우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치하에서 보여 준 검찰의 행태를 보노라면 걱정에 앞서 두려움마저 들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검찰은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공정과 공평이 아닌 대단히 편협하고 편파적인 법 집행을 자행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만 얼추 간추려보더라도 인터넷 누리꾼들의 표현을 억압하기위해 미네르바를 구속했고,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에 발맞추어 정연주 KBS사장과 MBC 피디수첩 관계자를 구속했다. 그리고 정치보복의 속내가 너무도 빤한 한명숙 전 총리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수사했다. 그러나 검찰의 뜨거운 충성심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모두 무죄로 판명되었다.

이처럼 정권을 위해서라면 국민과 개인의 인권을 깡그리 무시한 채 무리한 기소만 남발해 온 검찰이 뜬금없이 '종북주의 척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종북주의의 척결'이 아니다. 검찰 내부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정치검찰의 척결'이다. 권력의 시녀가 아닌, 종북이 아닌 진정한 국민의 종복으로 다시 태어날 때다. 국민은 무한하지만 권력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검찰은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사태를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시고 계신다면 "아무리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 해도 역사의 진정성은 바꿀 수가 없다"고 호통치셨을 것이다. 가시는 마지막까지도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신 김대중 대통령님. 싸울 힘이 없으면 담벼락에 대고라도 항의하라던 김대중 대통령님. 평생을 색깔론과 싸웠지만 하늘에서까지 색깔론으로 아픔을 당하고 계시는 대통령님.

김대중 대통령님의 지하에서의 슬픈 통곡이 귓전에 울리는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정균환 기자는 전 민주당 의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김대중 대통령#한상대 검찰총장#국가보안법#종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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