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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실 수영장 사람 반 물 반인 수영장 찾아갈 필요없게 만든 옥상 수영장입니다. 어쩌다 이 날은 우리 집 아이들이 독차지했네요.
▲ 날실 수영장 사람 반 물 반인 수영장 찾아갈 필요없게 만든 옥상 수영장입니다. 어쩌다 이 날은 우리 집 아이들이 독차지했네요.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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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공동주택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1층부터 7층, 자투리 공간까지 그 쓰임새가 정해졌고 소행주(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만들기) 식구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집을 소개하고 이웃을 소개하느라 바빴습니다. 그 와중에 언론매체의 취재도 빈번해 아이들도 어느덧 방송 카메라에 움찔 놀라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 날실(옥상) 수영장

"아빠아~ 수영장!"

맑은 날 보기 드물었던 여름 한복판, 어쩌다 햇빛 쨍하는 주말입니다. 세 딸들이 먹이 기다리는 참새새끼마냥 아빠한테 매달려 '수영장'을 외쳐댑니다. 

"어 그래. 30분 있다가 올라와."

귀찮은 기색도 없이 아빠가 슬리퍼를 끌고 나갑니다. 날실(옥상)로 가는 중입니다. 잔디밭과 텃밭으로 꾸며진 옥상 한 곳에 튜브 수영장을 만들러 가는 것입니다. 공용비용으로 아이들 열 명은 들어갈 만한 대형 튜브 수영장을 샀더니 주말마다 옥상 수영장이 문을 엽니다. 마음 급한 아이들 부모가 튜브에 바람 넣고 물을 담습니다. 준비는 혼자 몫이더라도 제 집 아이들만 놀게 할 리 없습니다. 준비가 되면 소행주 전체에 울리는 인터폰 방송을 합니다.

"에, 에, 옥상 수영장 개장입니다. 놀 사람 올라 오세요~"

알록달록 예쁜 수영복 입고 수경까지 갖추고 나타난 놈도 있고 급한 마음에 방에서 입던 차림새 그대로 뛰어드는 놈도 있습니다. 네댓 살 된 어린아이들은 소꿉놀이 장난감을 수영장에 풀어놓고 '물속 엄마아빠놀이'에 열중합니다. 가끔 덩치 있는 오빠의 물장구 물방울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진정 여린 소녀도 있지만 옥상 수영장 덕분에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중입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엄마들은 감자, 과일 간식을 날실로 가져오고 아이들은 물도 닦지 않은 채 몰려나와 간식을 즐깁니다. 복닥거리는 수영장 찾아 멀리 갈 일 없이 주말 동안 간식 준비만 하면 되니 참 편한 시절입니다.

# 씨실(2층 공용공간) 공동밥상

2층에 마련된 10여 평의 공용공간은 쓰임새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아침엔 스트레칭장, 낮 동안은 동네주민모임 공간, 오후에는 도토리 방과후 아이들 쉼터, 저녁엔 소행주 공동밥상... 어스름 깔리는 늦은 밤에는 소행주 술꾼들 아지트로 탈바꿈하니 씨실 없었으면 서운했겠다 싶습니다. 벽 한쪽에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 주말엔 영화관으로도 손색없습니다. 

반찬이 별로 없고 요리할 힘이 나지 않는 날, 집마다 한두 가지 반찬과 밥만 가져와서 같이 먹자고 시작된 게 공동밥상이었습니다. 씨실에 앉은뱅이 식탁도 만들었고 주방도 있으니 모여서 밥 먹는 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처음엔 서너 집만 모였는데 지금은 한두 집만 빼고 저녁시간이 되면 모두들 반찬과 밥을 들고 모여듭니다. 워낙 맛난 반찬 해먹는 집은 아쉬울 일이 없지만 냉장고 텅 빈 날, 반찬하기 싫은 날 씨실에 밥만 갖고 내려가도 한 끼 식사 해결할 수 있으니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중에 세집이서 '저녁해방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얼마간 돈을 모아 저녁밥 해주실 분을 모시고 씨실에서 저녁을 해 먹는 모임입니다. 엄마가 집에 늦게 오는 날도 아이들만 내려와서 밥을 먹고 가니 바쁜 엄마는 한걱정 덜고 갓난쟁이가 있어 밥하기 힘겨웠던 엄마도 한가로운 저녁을 선물 받은 것 같습니다. 이 모임을 부러워한 동네 주민 한 분은 여러 사람의 동의를 거쳐 이 모임에 들어올 정도로 이 시간을 부러워하는 동네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입니다.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났든지 남편이 늦은 퇴근길에 '술 사갈까?'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보던 책을 마저 보고 싶어 '오늘은 음주 싫어' 거절문자를 보냈지만 남편은 기어이 술병을 들고 왔습니다.

"당신 혼자 먹어."

냉랭한 내 말에 남편이 흔쾌하게 '알았어'합니다.

"씨실 갈 거야."

6층 **이 아빠와 5층 **이 아빠랑 마시기로 했답니다.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도 반갑게 '씨실에서 만납시다'하고 약속했다네요. 그렇게 벌어진 술자리 맴버는 퇴근해 오는 순서대로 늘어납니다. 퇴근길 남편들은 2층 씨실 불이 밝혀져 있으면 무조건 씨실 문 열어보고 합석하기 때문입니다.

"퇴근하면서 저는 우리 집 창문보다도 2층 씨실 창 불 켜져 있나 먼저 봐요."

5층 사는 **이 아빠의 씨실 사랑입니다. 남편들이 술자리를 기회로 친해지면서부터였는지 우리 집 남편의 귀가가 빨라졌습니다. 술은 마시고 싶어도 밖에서 마시는 술은 여러 가지로 부담되어 꺼리게 되는데 그 빈자리를 씨실 술자리가 채워 주는 모양입니다.

부녀 음악회 남편이 왕년에 기타 좀 쳤다는데 이제야 실력 확인 했습니다. 딸아이가 건반소리를 얹어주니 제법 음악회 느낌 납니다.
▲ 부녀 음악회 남편이 왕년에 기타 좀 쳤다는데 이제야 실력 확인 했습니다. 딸아이가 건반소리를 얹어주니 제법 음악회 느낌 납니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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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남편의 변화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동네에서 가수 활동을 하는 대학 동기의 공연을 몇 번 갔다 오더니 기타를 냉큼 샀습니다. '대학시절 기타로 여자들 여럿 홀렸다'는 거드름을 결혼 생활 내내 들었지만 이제야 그 실력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전자피아노 치고 남편이 기타를 퉁기니 음악이 됩니다. 귀도 즐겁지만 눈도 즐겁습니다. 아이와 아빠가 한 곳에 앉아 선율을 맞추는 그림... 행복한 가족 티가 팍팍 납니다.

# 소행주 아이들

공동밥상이 펼쳐진 어느 날 저녁. 놀기 반 먹기 반 하던 아이들이 소란합니다.

"애들이 나 때려!"

9살 오빠가 동생들이 때렸다며 울먹입니다. 꼬마들에게 주먹을 날릴 법도 한데 참고 와서 그저 일러바치기만 합니다.

"오빠가 먼저 놀렸어."

7살, 5살 여동생들이 입 모아 소리 지릅니다.

"**아, 여자애들한테 '네 머리 모양 이상해' 그러면 상처받아."

12살 언니가 사건의 전말을 알아차리고 중재에 나서는군요. 7살 여동생이 파마를 했는데 예쁘다고 말해주기는커녕 '이상해!'라고 딱 꼬집어 말한 게 화근이 되어 7살짜리는 찔끔찔끔 짜고 여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오빠에게 보복을 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나도 아파. 말로 하면 되지, 왜 때려!"

여동생들의 주먹이 제법 셌던지 오빠의 언성도 높습니다.

"알았어. (때린 거) 미안해 오빠."

꼬마들도 오빠가 아팠다는 것을 이해한 모양입니다. 서로 마음을 조금씩 알아줬더니 다시 웃음을 찾습니다. 숟가락을 놓은 아이들은 1층 주차장에 자전거 타러 나가고 속도가 늦은 어린애들은 마음이 바빠 반찬도 없이 밥만 우걱우걱 입 속에 구겨 넣고 언니 오빠들을 따라나섭니다.

소행주 아이들은 19명이나 됩니다. 그 중에 학교 안 간 8살 이하 꼬맹이들만 9명이고 11월달에 6층에서 아가가 태어나면 10명이 됩니다. 여자아이들이 14명이고 남자아이들은 겨우 다섯인데다가 꼬맹이들 중 남자는 단 한 명입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놀이가 아무래도 여자애들 방식으로 흘러가는데 저녁 식사 후 1층에서 놀 때는 다소 시끄러운 편입니다. 여럿이다 보니 서로 사기충천해 목소리가 높아지나 봅니다.

"너희들이 동네 강아지들이냐? 왜 이리 시끄러워?"

길 건너 앞집 아파트 사는 할머니 한 분이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재잘재잘 노는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소음이구나 싶어 마음 한 쪽이 스산해지지만 같이 사는 동네니 아이들 노는 시간을 정했습니다. 이른바 1층 통금시간입니다.

우리 집 세 자매는 일단 놀이 맴버가 적지 않은 까닭에 집에서 저희끼리도 잘 놀았었습니다. 하지만 놀 시간이 많은 주말에는 여지없이 컴퓨터게임을 하고 싶어하고 세 명이 주르르 컴퓨터 앞을 지키고 앉아있는 적이 많았습니다. 못하게 막자면 애들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게으름이 천성인 엄마와 복닥거리는 것이 힘든 아빠는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애들을 눌러 앉히게 되지요. 어쩔 수 없이 '컴퓨터 해라'고 허락할 수 밖에...

소행주에 사니 이 고민이 어느덧 해결되었습니다. 물놀이, 영화보기, 1층 사방치기, 자전거타기, 복도에서 소꿉놀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놀기... 놀 사람과 놀거리가 많다 보니 컴퓨터 찾는 시간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눈 박고 있는 시간도 확연히 줄었습니다. 놀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니 피드백 없는 컴퓨터와 텔레비전이 성에 찰 리 없으니까요. 주말엔 놀이에 팔려 식사도 거르기 일쑤인데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간식을 얻어먹는 덕택에 배고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집에 애들이 몰려올 때를 대비해 간식을 넉넉히 준비해 놓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 소행주 멘토들

주말마다 집들이가 이어지던 어느 날, 집들이 없는 세 집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포도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와인 냉장고까지 마련하고 포도주 예찬론을 펼치는 앞집에 모여 포도주를 음미하였습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포도주에 빠지자니 심심해하는 꼬맹이들에게 어떤 꺼리를 줘야 할 상황입니다.

"너희들 목욕할래?"
"네에!"

몇날 며칠 이어지는 지루한 장마 때문에 늘 땀에 절어있는 꼬맹이들이 목욕놀이를 마다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도 여럿이 같이! 친형제가 아님에도 서로 원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창피하지 않을 만큼 아이들 사이는 가깝습니다. 우리 집에 목욕탕이 있으니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목욕놀이 중이고 어른들은 앞집에서 포도주를 즐기는 중입니다. 두 집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우리 집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앞집까지 들리니 아이들 안전도 걱정할 거 없습니다.

포도주 얘기로 시작된 술자리는 소행주에 사는 이야기,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로 옮겨다닙니다. 소행주에 꼬맹이들이 많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도 있기에 육아는 항상 중요 대화소재입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 알아? 애들은 지랄할 만큼 해야 크게 되어 있다는 거지."

박장대소가 터집니다. 아이들이 이미 스무 살이 넘은 앞집 선배 엄마의 말입니다.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순둥이가 언제가 부모에게 크게 어필할 일을 저지르게 되고 자라는 동안 그렇지 않았다면 늙어서라도 그런 순간을 겪으면서 자신의 지랄양을 채운다고 합니다. 성장의 필수조건이라네요.

그러니 매사 툴툴거리고 사고치는 까칠이를 뒀다고 한탄할 거 없답니다. 끝없이 지랄할 것 같아도 어느 정도 임계치에 도달하면 순하고 고운 아들딸이 된답니다. 순둥이든 까칠이든 거칠 것은 거치게 되어 있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큰다는 육아선배의 말씀을 들으면서 위안도 얻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순둥이도 있고 까칠이도 있으니까요.

부모와 자녀 세대만 사는 핵가족이 일반화되면서 인생선배로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조부모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소행주는 30대부터 50대까지 입주민들이 분포하다 보니 나이 드신 분에게 살아봐야 아는 지혜를 얻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멘토가 되는 거지요.

요리 멘토도 있습니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가 잦아지다 보니 집마다 요리 특징이 어느 정도 보이는데 들기름과 참기름을 적절히 사용하는 분에게 소스 배합 요리 팁을 살짝 배웁니다. 특히 오븐에 굽는 감자 요리는 놀라운 맛이었습니다. 감자를 살짝 삶아 올리브유와 소금, 버질을 살짝 버무려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입니다. 앞집 엄마의 작품이었는데 2층 씨실에 있는 공용 오븐이 있기에 가능하기도 했지요. 팁을 자세히 물어보고 나도 살짝 흉내냈더니 아이들이 너무 잘 먹어 자주합니다. 마침 제철 하지감자도 한 박스 사놓은 터라 올해 감자는 참 맛나게 먹는 중입니다.

12살 된 우리 집 큰 딸아이는 언젠가 앞집 언니들을 멘토로 삼을 것 같습니다. 동생 말고 언니가 필요하다고 외치던 우리 딸은 소행주에 언니들이 있어 좋답니다. 꼬맹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열 번 중 여섯 번은 귀찮아하면서 언니들 방에 놀러갈 일이 생기면 좋다고 뛰어갑니다.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앞집 언니들에게서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이들 같이 키우기, 다르게 키우기

"몇 시에 갈 거예요?"
"10분 뒤 1층에서 만나."

우리 아이들은 아침마다 인터폰으로 6층에 전화를 합니다. 우리 집 막내와 둘째 아이, 6층 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녀서 아침엔 6층  엄마가 애들을 데려다 주고, 오후엔 내가 애들을 데려옵니다. 어쩌다 오후에 6층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저녁 전까지 내가 애들을 돌봐주고 나조차 일이 있어 나가봐야 할 때는 다른 층 엄마에게 우리 애들과 6층 아이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세 아이가 같이 등하원을 하다 보니 절로 친해졌는데 별일 아닌 일로 이상기류가 흐르기도 합니다. 언니가 6층 아이 편을 들 때 우리 막내는 언니의 배신이 서러워 울고, 막내가 6층 아이와 한 편이 되면 우리 둘째도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우리 집 자매끼리 똘똘 뭉치면 6층 아이가 서글퍼하는 모양입니다. 셋이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시소게임인데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세 아이는 또 나란히 어린이집에 갑니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꼬맹이를 키우는 다른 층 엄마들은 세 집이서 품앗이를 한답니다. 하루에 4시간, 두 집 아이를 우리 집 아이랑 같이 돌봐주는 방식입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두 엄마가 이틀 동안 4시간씩 자유를 만끽하는 거지요. 아기들도 옆집 엄마들을 낯설어 하지 않고 셋이 잘 놀아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 아이 없이 지내는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합니다.

육아 방식을 서로 배우기도 합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라도 엄마로서 배울 점이 보입니다. 생떼를 쓰는 아이를 오랜 시간 설득하고 기다리는 끈기를 보고 탄복하다가 우리 아이 세 번 야단칠 것을 두 번으로 슬며시 줄이기도 합니다. 내게 큰 소리 치지 않고 아이들을 휘어잡는 스킬을 물어보는 분도 있습니다. 집마다 육아 방식이 달라서 가끔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엄마는 왜 안된다고 해? ***이는 엄마가 놀아도 된다는데!"

낮 동안 줄기차게 같이 놀고도 저녁 먹은 후 다시 시작된 놀이를 우리 집 아이는 멈출 수가 없답니다. 엄마는 그만 놀라고, 집에 올 시간이라고 하는데 다른 집 아이는 조금 더 놀도록 허락을 얻은 모양입니다. 가족이 모여서 쉬어야 할 시간임에도 남의 집에 늦게까지 있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는 엄마와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는 엄마와의 차이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지켜야 할 규율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좀 더 많은 편입니다.

"**이 엄마와 네 엄마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틀리고 맞고 문제는 아니고, 집집마다 교육방식이 다른 거지. 네 엄마는 이런 엄마니까 네가 맘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네."

불친절한 설명이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는 어이없어 하지만 그냥 밀고 나갑니다. 대단한 육아원칙은 아닙니다. 엄마가 일정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면 아이는 나름대로 적응하고 그 안에서 융통성을 찾게 되리라 믿는 것뿐입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으니 우리 집 아이들은 툴툴거릴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부부의 시간

1층 주차장 대청소 한 깔끔하는 남편들 중심으로 시원스럽게 물청소합니다. 아직까지 핑계대고 빠지는 분은 없습니다.
▲ 1층 주차장 대청소 한 깔끔하는 남편들 중심으로 시원스럽게 물청소합니다. 아직까지 핑계대고 빠지는 분은 없습니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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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가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엄마 배고파."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이들은 오는 사이 소화가 다 되었나 봅니다. 좀 크는 것 같다 싶더니 녀석들은 두 시간이 멀다 하고 '배고파'를 외칩니다.

"치킨 먹고 가자."

집 가까이 있는 치킨 집에 다섯 식구가 들어가 앉습니다. 몇 번 와 본 곳이라 애들도 익숙해하고 집도 멀지 않아 좋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 슬슬 심심해 합니다.

"너희들 집에 먼저 가서 놀고 있어."
"알았어."

세자매가 손잡고 집에 갑니다. 다섯 살 막내도 엄마 옆에 있겠다고 떼쓰지 않습니다. 저희들 구미대로 만화 볼 시간을 갖게 되는 게 더 좋으니까요. 아이들이 집에 가 있는 동안 우리 부부는 치킨 집에서 막간 데이트를 즐깁니다. 한두 시간 동안이긴 하지만 이 전에는 생각지 못한 시간입니다. 무섭다면서 아이들끼리 집에 있기 싫어했고, 여러모로 안심되지 않아 엄마 입장에서도 아이들만 둘 수 없었지요. 공동주택에 살면서부터 이런 무섬증이 옅어졌습니다. 앞집 옆집이 너무 익숙하고 위급상황이 생기더라도 소행주의 누군가는 도와주리라 믿는 거지요.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집에 있어도 고립감은 느끼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쿨하게 대답하고 집에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 취침 시간 전에 귀가하는 것을 기준으로 부부 데이트 시간을 가끔 갖습니다. 뭐 주로 동네에서 술 마시는 것이지만 아이들 없이 둘만 보내는 시간이 알게 모르게 벌어진 부부 사이를 조금씩 메워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남편이 더 적극적입니다. 퇴근길에 '애들 저녁 먹이고 우리 잠깐 나갔다 오자'고 문자를 보냅니다. 마누라랑 노는 게 재밌어졌나 봅니다. 몇 년째 동결 상태인 쥐꼬리 용돈을 아끼고, 생활비로 술 먹을 쾌를 만드느라고 그러는 것도 같지만 상관없습니다. 엄마 아빠 사이가 좋은 게 아이들한테도 좋은 일이니까요. 덕분에 남편의 귀가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마흔 살이 넘으면 남자들이 슬슬 집안으로 복귀한다더니 지금 그 때를 맞이한 것도 같습니다.

"밤에 같이 헬스 할까?"

에스트로겐이 점점 딸리면서 나잇살을 이겨내지 못하는 중년의 저에게 남편이 헬스를 권합니다. 그것도 같이 하잡니다. 두서없는 몸매 아랑곳없이 속살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남편과 무도장 플로어를 누비는 노년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카바레 조명이 돌아가는 곳에서 오다가다 만난 남자와 어둠을 방패 삼아 벌이는 일탈 말고 제대로 사교댄스를 배워 밝은 조명 아래 남편과 춤추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말입니다.

이런 얘기 꺼냈다간 '마흔 겨우 넘기고 노망 들었군'하고 일갈을 당할 것이 분명해 속으로만 삼키는 중입니다. 그런데 헬스를 같이 하자네요. 일단 남편과 뭔가를 같이하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닌지라 같이 하자고 할 때 얼른 시작해야겠습니다. 하긴 언젠가 사교춤계에 입문하려면 기본 몸매는 갖춰야겠기에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매일 밤 술로 연명하던 남편이 술 대신 운동을 하겠다니 고맙기까지 합니다. 우리 부부 사이는 진화 중입니다.

공동주택 생활이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것만은 아닙니다. 매달 은행에 '이자 월세'를 낼 때면 원금을 갚아야 할 3년 후가 무섭게 느껴집니다. 언론사 취재가 잦아지면서 연출 상황을 만들어야 할 땐 살짝 귀찮기도 합니다. 옆 빌라 주민들이 소행주가 들어서면서 일조권 피해를 봤다며 매서운 눈길을 보낼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크고 작은 건설 하자가 발견된 집은 신속한 개선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1층 주차장은 동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동네 놀이터가 되었고 우리 집 세 아이들은 매일 햇볕 아래 뛰어다니느라 얼굴이 새까매졌습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선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집 부엌 창문에서 본 하늘 아파트에 살 때는 어쩌다 한 번 보던 하늘인데, 자주 보다보니 하늘 가까이에 사는 기분입니다.
▲ 집 부엌 창문에서 본 하늘 아파트에 살 때는 어쩌다 한 번 보던 하늘인데, 자주 보다보니 하늘 가까이에 사는 기분입니다.
ⓒ 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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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주#공동주택#부부사이#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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