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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장을 유치한 대가로 경주시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부터 받은 3000억 원 가운데 지난 2009년 17개 사업에 895억 원을 사용하고 남은 2105억원을 전액 각종 현안사업에 투입하려는 경주시의 방침이 시민사회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경주시는 뒤늦게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공청회를 열었지만, 공무원만 잔뜩 동원해 공청회라기 보다는 명분 쌓기용 겉치레 공청회라는 비판도 자초했다.

지난 5일 경주시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특별지원금사용계획안 공청회장에 경주시청 공무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한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청중석 점령한 공무원 지난 5일 경주시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특별지원금사용계획안 공청회장에 경주시청 공무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한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김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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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는 방폐장유치지역특별지원금 2105억 원 사용계획안을 지난 5월 사실상 확정했다.그 다음, 특별법(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6월 7일 2105억 원 사용계획협의안을 시의회 임시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시의회 상임위에서 곧장 제동이 걸렸다. 경주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위원장 권영길)는 6월 7일 오전 11시부터 제167회 임시회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경주시가 제출한 '방폐장유치지역특별지원금 사용협의의 건'을 의원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시의회의 주도로 지난 5월 법원에 제출한 방폐물반입금지 가처분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점, 시민 공감대 형성 부족, 사용계획의 불확정및 시점의 부적절 등을 문제 삼았다.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렸으면 부결된 계획안을 원점에서 새롭게 짜는 게 일반적인 상식. 그러나 그런 상식을 경주시는 외면했다. 경주시는 시의회에서 부결당한 시점으로부터 2개월이 흐른 8월 5일, 새삼스레 시민 공청회를 열었다.

지난 5월 경주시가 사용계획안을 수립하기 전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겠지만 경주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린 뒤에야 뒤늦게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봐줄 만했다. 공청회를 들여다 봤더니 이건 아니다 싶은 대목이 적지 않았다.

먼저, 공청회 개최 시점. 8월 5일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하계휴가를 떠나는 기간. 하고 많은 날 중에 하필 많은 시민들이 휴가를 떠난 시점에 개최한 공청회. 이런 점 때문에 경주시의 진정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공무원 동원도 문제였다. 공청회장에는 일찌감치 경주시의 주요 간부들이 입구에 진을 치고 오는 시민들을 맞이했고, 공청회장 좌석에는 공무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영섭 민주당 경주지역위원장은 이날 발언을 신청해, 공청회장 좌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공무원 동원과 휴가철에 공청회를 개최한 점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청회 개최의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손 위원장은 "작년 7월 최양식 시장은 취임을 하면서 2000억 원은 기념비적인 사업에 쓰겠다고 했다. 경주시 계획 중에 도대체 무엇이 기념비적인 사업이냐?"고 반문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라면 응당 시민들이 많이 참석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을 왜 이렇게 많이 동원하느냐"며 공무원 동원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특별지원금 사용계획에 대한 설명을 담은 영상자료는 일부 사실을 호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한 내용들도 발견됐다. 지난 6월 경주시시의회는 방폐물반입금지 가처분소송이 진행중이라는 점, 시민 공감대 형성 부족, 사용계획의 불확정및 시점의 부적절 등 3개의 이유를 들어 부결했지만, 이번 공청회에서 진행된 경주시의 설명에는 '사용계획의 불확정 및 시점의 부적절'이라는 표현은 슬그머니 빼버렸다.

어쨌든 경주시는, 지난 6월 시의회 상임위에서 부결된 계획안을 자구 수정 하나 없이 다시 시민들에게 물었다. 사업내용은 이렇다. △동경주개발사업 및 숙원사업 1000억원 △장학사업 100억원 △농어업발전기금 30억원 △종합장사공원(화장장) 건립 및 주민협약사업 160억원 △읍면동 지역균형개발사업 170억원 △시책사업 200억원 △장사공원 주변지역 소득사업 80억원 △소각장 주변지역 주민기금 55억원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건설사업비 310억원 등 9개사업 2105원을 모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공청회는 경주시의 사용계획안 영상자료 설명에 이어 배도순 위덕대 총장의 사회로 김경대 경주대 교수, 동국대 김흥식 교수, 경주경실련 이상기 원자력정책연구소장, 경주방폐장지원사업집행범시민연대 김동식 사무총장, 월성원전 민간환경감시위원회 배칠용 부위원장, 이상모 국책사업단장 등 경주시가 위촉한 토론자들이 경주시계획안에 입장을 밝히는 순으로 진행됐다.

막상 공청회가 시작되자 경주시가 위촉한 토론자, 청중석 시민들의 반응은 경주시계획안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토론자들로부터 비교적 공감대를 모은 것은 동경주 지역에 1000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도. 나머지 계획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김흥식 교수는 "경주시의 사용계획안이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 경주시 계획 문제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김흥식 교수는 "경주시의 사용계획안이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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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김흥식 교수가 대표적인 비판론자였다. 그는 "특별지원금은 일회성으로 단기적 수요를 만족하는 데 사용해선 안 된다. 경주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면서 "방폐장을 유치할 때를 생각해봐라. 지금부터 우리는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경주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사업발굴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특별지원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의사결정과정은 투명하고 또 객관화해야 한다"고도 덧붙이면서, 경주시가 지방재정이 매우 열악하므로 불가피하게 사용한다고 주장한데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세입에 맞게 세출규모를 잘짜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린것.

경주대 김경대 교수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경주시가 제안한 9개 사업 가운데 엄밀하게 평가해볼 때 특별 지원금 성격에 맞는 것은 장학금, 농어업발전기금과 같은 기금조성과 동경주지역 투입계획등 2개뿐"이라고 지적하면서 "한수원 본사를 하루라도 빨리 경주에 정착시켜, 한수원의 이익금으로 지자체 시행사업을 대행하거나 보조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반 청중들 속에서는 사는 지역에 따라 입장이 엇갈렸다. 감포에서 참석한 한 주민은 동경주 지역에 조건 없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 반면 건천읍의 한 주민은 양성자가속기 사업에 대한 투자는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지역별로도 상당한 이견을 보였다.

이처럼 공청회장에서는 경주시가 수립한 계획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더욱 많았다. 그러나 경주시의 사용계획이 수정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날 공청회가 많은 시민들이 지적한 것처럼 요식행위에 불과한 겉치레 공청회가 될지, 아니면 시민들의 생생한 민심을 파악하고 경주시 계획안을 수정하는 계기가 될지 여부는, 향후 경주시가 시의회에 제출할 계획안에서 그 해답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주시 행보를 종합해 볼 때 경주시가 5월에 확정한 특별지원금 사용계획을 수정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경주 시민들이 시정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향후 시의회의 태도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신문 경주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방폐장,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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