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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판매금지를 시키던가. 여자라고 담배 못핀다니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담배에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판매금지를 시키던가. 여자라고 담배 못핀다니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 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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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마을축제에서 마을 시장에서이루어지는 인터넷 라디오 현장을 취재하고 있을 때였다. 두 평 남짓 되는 라디오부스에서 사진기를 들여다보고있는데 누가 들어왔다.

귀농선배로 지역행사나 모임에서 종종 얼굴을 대하고 있던 누님이었다. 혼자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용기있는 인사로 평소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어, 시원하네."
"저도 그래서 여기서…."
"담배 하나만 피워도 돼?"
"네? 왜 여기서…."
"밖에서 피면 욕하잖아."

환갑을 앞둔 여성이 누구한테 담배 피운다고 욕을 먹는단 말인가. 나는 재차 누가 욕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불을 붙였다.  '시골이니까'
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어색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울 권리가 없는 여성은 좁다랗고 답답한 실내에서 남의 눈을 피해가며 피워야 한단말인가.

물론 그도 집에서는 혼자니까 자유롭겠지만 나오면 계속 불편할 것 아닌가.
서울을 떠난 지 6년이 되었지만 젊은 여성들도 삼삼오오 어울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세상이 변했나? 오히려 나이 드신 분이 담배 피우는 것이 욕먹을 짓으로 변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담배가 도대체 뭐기에 이리 성차별을 하는 것일까. 갓 대학에 입학한 앳된 남자가 길 한쪽에서 담배를 물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려도 이를 시비할 이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여자가그러고 있다면 직접 따지지는 않아도 매서운 눈길로 경고를 보내는 행인이 대부분일 것이현실인가?

지금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이사장으로 더 유명해진 서명숙씨의 '흡연여성 잔혹사'는 여성흡연에 대한 고백이자 독백과도 같다.  별로 관심이 없던, 그러려니 했던 여성의 흡연은 자신의 일생 중 흡연경험을 따르면서 역사,
사회,
문화,
인물을 적절하게 버무려 흡연이라는 문화와 이속에서 여성이 가지는 묘한 위치를 그려낸다.  평소 기호식품을 먹는 것처럼 아무장소에서나 (요즘은 제한이 많아지긴 했지만) 담배를 대하던 나로서는 충격에 가까웠다.

이 그림은 영락없이 한참 뒤떨어진 한국 문화와 사상을 반영한다. 겉으로는 잘난체하면서 정작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인 자유와 평등에 대한 성장을 억누르는 뒤틀린 가부장제(이건유교와는 엄밀히 거리가 있다)를 지적하는 것이 책의 핵심일 것이다.

"그들은 오늘도 베란다에서,
카페에서,
골방에,
부엌 한켠에서 몰래 푸르른 봉홧불을 피워올린다. 무언가를 마음 조이며 한다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다. 자유와 위안이 유일한 덕목인 흡연을 마음 조이며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이책에 '흡연 여성잔혹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책머리에 쓴 작자의 변은 이 책 속에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례로 꽃을 피운다.

여고생이 아빠 몰래 담배를 피우려 좁은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올랐다가 오랜만에 피운 한 모금에 핑돌아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이야기는 엽기에 가깝다. 우리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이야기도 있다. 평소에 감쪽같이 비흡연자로 위장한 배우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연달아 줄담배를 그것도 깊숙이 빨더라는 이야기. 또, 의외로 맹렬한 여성운동가가 다방 한구석 장막 쳐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는 내용은 씁쓸하게 와 닿는다.

저자의 고백은 더 생생하다. 담배피우는 것을 아버지한테 걸린 이후로 관계가 단절되다 시피했다는 이야기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내가 딸을 키워도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까?)대학 때 시작한 담배로 학생운동하다가 취조받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 남자는 담배부터 주는데 여자는 가방에서 담배나왔다고 벌레보듯이 하는 형사에 대한 경험담은 창피한 느낌이다. 구치소에서 성희롱 논란이 주기적인 가쉽이 되는 요즘도 마찬가지일듯 싶다.

수십 년 기자생활 동안 수십 번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된 이야기 등 자신의 이야기는 피우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책은 이외에도 재클린 캐네디, 오드리 헵번, 프리다 칼로 등의 여배우들의 흡연에 얽힌 일화와 김일성과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담배피운 여성선배의 대담함도 그린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 선비의 담배예찬론이나 큰일을 당한 며느리에게 담배를 권했다는 시아버지의 일화를 소개하는 등. 이 책은 후반부까지는 담배 피우는 이들을 위한 훌륭한 변명메뉴얼이다.

두 아이 임신 중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는 지독한 애연가는 책 대부분을 동서양과 고금의 유명인들의 애연사를 들어 '담배피우는 행위'를 옹호한다. 결국, 책의 뒷부분을 위해 깔아놓은 복선이었다. 책의 1할정도 되는 뒷부분이 반전이다.  아니, (흡연자로서는) 배신이다. 결국 건강을 핑계로 지은이는 담배를 끊는다. 그리고 30년애연가로서 단호하게 오늘의 흡연자에게 일침을 놓는다.

"담배는 당신이,
내가가진 문제는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중략... 당신은 담배에서 위안을 구하려 할 것이다. 역시 담배는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다. 모두가 외면하고 등을 돌려도 담배만큼은 당신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뿐이다. 담배가 당신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친구의 조언으로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피고 싶을 때에는 담배를 분질러서 냄새를 맡거나 저녁에 반신욕을 하거나,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다 내가 해본 것이다. 더 땡기기만 했다. 역시 마음이 중요한 건가.

덧붙이는 글 | 흡연여성잔혹사/서명숙/웅진닷컴/9,000원



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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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흡연여성잔혹사, #서명숙, #여성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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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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