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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휴가를 계획할 무렵 누구라도 그러하듯 나도 분명 부산 해운대나 서해안의 어느 아름다운 해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내와 휴가 일정을 맞춰 잡겠노라고 했던 굳은 맹세는, 장마를 거쳐 태풍이 몇 번 지나가니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분명 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신 하늘의 큰 뜻이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하지만 '일상탈출'이 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역시 가족들은 나처럼 '쿨'하지 못했다.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아주 속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결코 아내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아무튼 휴가를 가긴 가야하는데 캠핑으로 떠나기엔 모기와 더위, 그리고 영역확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분명하고…. (나름대로) 고뇌하고 있는 사이, 시간을 훌쩍 넘어 7월 말이 오고 말았다. 물론, 그동안 야심차게 내놓은 목적지도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죽 끓듯 했고 그런 이유로 숙소예약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간 큰 남자였다.

슬슬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차에 결국 아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일 년에 한번 뿐인 황금 같은 여름휴가를 부부싸움으로 망친다면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것 같아 무작정 짐도 없이 떠나기로 결정했다. '급조+부실+변덕+눈치+잔머리'의 대명사인 나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계획성 없이 그렇게 우리 가족의 휴가는 시작됐다. 

일단 떠나고 보는 거야?... 오로지 인터넷에 의존한 여행코스

목적지는 남해. 남해로 잡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무심코 켠 TV에서 소개하는 남해 바다가 멋져보였기 때문이랄까. 하지만 고생은 둘째치고 돈벼락을 한꺼번에 떠안게 되는 건 아닌지 여전히 두려울 뿐이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여행은 단 한번만으로도 기분 전환과 스트레스 해소까지 해결하니 반드시 화려하고 거창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남해여행 코스 추천바랍니다'의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올려놓은 한 포털사이트의 지식문답 코너를 통해 습득한 얄팍한 지식이 전부였다.

강렬한 여름의 태양 에너지를 만끽하며 경남 남해를 향해 우리 가족은 그렇게 출발했다. 물론, 여행코스 선정도 전적으로 지식문답에 의존했다. 일단은 남해대교, 이순신영상관, 유배문학관, 국제탈공연예술촌, 독일마을, 원예예술촌, 해오름예술촌, 상주은모래비치, 보리암, 다랭이마을, 야구스포츠파크, 하동관광을 거쳐 귀가하는 남해일주 코스로 잡았다.

아,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방 어디를 보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담한 포구와 해안가 기암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언제 어디서든 아름답고 풍요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푸르게 펼쳐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듣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게 만든다. 말 그대로 '안구정화'의 기회였다.

유배문학작품 목판인쇄체험 절망 속에 핀 꽃 유배문학의 산실. 남해유배문학관은 국내 최대 문학관으로 유배문학을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10년 11월 1일 개관되었다.
▲ 유배문학작품 목판인쇄체험 절망 속에 핀 꽃 유배문학의 산실. 남해유배문학관은 국내 최대 문학관으로 유배문학을 연구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10년 11월 1일 개관되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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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특히 지난해 11월에 개관한 세계 유일의 유배문학전시관인 남해유배문학관은 이색적이었다. 서포 김만중, 후송 유의양,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등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한 문장가 2백여 명의 유배문학을 관광자원화했다. 유배라는 절망적인 환경을 예술로 승화시킨 유배객들의 일생을 보여준 4D영화도 볼 만했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2008년 5월15일 개관, 보물섬 남해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매년 여름 휴가철에 맞춰 남해섬공연예술제를 열고 있다. 남해의 한 미인선발대회에 뽑힌 선녀들.
▲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2008년 5월15일 개관, 보물섬 남해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매년 여름 휴가철에 맞춰 남해섬공연예술제를 열고 있다. 남해의 한 미인선발대회에 뽑힌 선녀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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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예술촌 일본, 프랑스, 영국 등 20여 개국의 정원을 모아놓은 곳이다. 예쁜 정원과 아기자기한 전원주택을 구경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인기가 높다.
▲ 원예예술촌 일본, 프랑스, 영국 등 20여 개국의 정원을 모아놓은 곳이다. 예쁜 정원과 아기자기한 전원주택을 구경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인기가 높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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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예술촌 연중 쉬는 날 없이 운영되고 있는 해오름예술촌은 추억의 옛날 교실과 미니어처 전시실, 복도전시관 등 재미난 공간이 많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코스 공방도 마련돼 있다.
▲ 해오름예술촌 연중 쉬는 날 없이 운영되고 있는 해오름예술촌은 추억의 옛날 교실과 미니어처 전시실, 복도전시관 등 재미난 공간이 많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코스 공방도 마련돼 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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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박2일>에 방영된 독일마을을 비롯하여 예술촌, 보리암, 은모래비치 등 그야말로 눈이 호강할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남해는 잔잔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해는 섬 전체가 빼어난 해안드라이브 코스지만 특히 독일마을을 지나 펼쳐지는 해안도로와 갯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독일마을 옆의 원예예술촌과 해오름예술촌, 예쁜 정원과 아기자기한 전원주택을 즐길 수 있는 산책코스는 덤이다. 

독일마을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성한 곳이다.
▲ 독일마을 1960년대에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성한 곳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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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최고의 코스에 눈도 즐거우니 가족들은 기뻐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캬아, 딱 어울리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까지였다.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딱, 여기까지였다.

혹시 '찜질방의 악몽'이라고 들어는 봤나? 인터넷 유머코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아,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수많은 펜션들 가운데 특별한 여름휴가를 만들어줄 마음에 쏙 드는 펜션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비만 피하고 하늘만 안 보이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찜질방을 '강추'했던 친절한 정체불명의 '네이O 지식in' 그의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나 보다.

값싸고 만족스러운 여름휴가지 숙소로 찜질방이 최고라고 누가 그랬던가?  기필코 집에 돌아가서 2주전의 인터넷 임시파일 '열어본 페이지'를 확인하여 반드시 그 지식인의 아이디를 추적하고야 말리라.

땀 냄새+입 냄새+코고는 소리+이 가는 소리… 인내심은 한계에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밤'을 실감해 봤는가? 어차피 호텔이나 펜션처럼 편리함과 아늑함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도대체 '최고'의 기준은 무엇이란 말인가? 초보는 또 이래서 낚이나 보다. 어차피 편히 쉬려고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이건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다. 해수욕장 주변에 위치한  그 찜질방, 정말이지 꿈에 나타날까봐 무섭다.

 어둠이 내린 바닷가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의 바닷가 놀이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폭죽놀이다.
 어둠이 내린 바닷가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의 바닷가 놀이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폭죽놀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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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라 이불이 동나더라도, 한 두 사람 코를 골더라도, 아이들이 뛰더라도, 구운 계란이 조금 비싸더라도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자정이 가까워오자 방 마다 코고는 사람이 한두 명씩 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초전이자 애교에 불과했다.

잠시 후 전국의 코골이 챔피언은 다 모아놨는지 무슨 놈의 코 고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별 수 없다. 살다 살다 저런 코골이는 처음이다. 숨을 헐떡헐떡, 저러다 숨 넘어 가겠다. 아, 이를 어쩐다. 몰래 베개를 집어던질 수도 없고….  

찜질방의 수많은 코 고는 소리, 거기다 땀 냄새 섞인 수면실의 열기와 냄새는 흡사 지옥이었다. 삼복더위에 에어컨은 또 한 시간에 10여 분밖에 가동되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얼음 방에 들어가 보니 모조리 전원을 꺼놓은 상태. 아내는 모든 걸 포기하고 차라리 차에 가서 에어컨 켜고 자야겠다고 성화다.

술 냄새+발 냄새+땀 냄새+입 냄새+체열+코고는 소리…. 아, 이 모든 걸 견디며 자야하는가? '저렇게 신나게 코나 골다가 호흡곤란으로 제발 어떻게 돼 버려라' 며 악담을 하는 사이 이윽고 코를 고는 동시에 이빨을 가는 기적의 사나이들까지 등장했다. 상황이 이 정도니 옆자리서 코 고는 소리는 차라리 자장가에 가깝다.

"뿌드드… 뿌드드드득… 뿌득… 빠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이건 완전 소음을 넘은 범죄 수준이다. 흡사 학창시절 칠판을 손톱으로 긁으면 소름을 돋게 하는 고주파음과 흡사하다. 5분만 더 듣다가는 내 청각세포까지 손상될 지경이다. 근데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잘 자고 있는 사람은 또 뭔가?

아직 새벽2시밖에 안 됐는데, 나와 아내의 인내심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 갈고 코 골고 찜통에 말 그대로 뜬 눈으로 찜질 한 번 제대로 했다. 짧고 굵게 다이어트 하나는 확실히 한 것 같다. 아마도 어제 저녁에 먹은 삼겹살이 폭풍 소화됐으리라. 

뜬 눈으로 지낸 지난밤...아리따운 여인도 '소 닭 보듯'

아, 드디어 아침이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에 들어간 이래 뜬눈으로 밤을 샌 지 정확히 8시간 만이다. 아! 장장 8시간을 어둠에서 울음을 삼키며 견딘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출발한 지 약 30분, 잠이 부족하니 저 푸른 남해 앞바다도 그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아침 출발부터 푹푹 찌기 시작한다. 차량 온도계에 표시된 실외온도는 34도. 남해의 가장 큰 매력인 아름다운 해안절경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쓰인 팻말도 이미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눈을 부벼가며 순전히 '어거지'로 출발했는데, 이건 여행이 아닌 처절한 몸부림이다. 몸과 마음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분위기다. 휴게소에서 10여 분을 쉬고 나니 몸이 완전히 퍼진 상태라 다리까지 마구 후들거린다.

그 유명하다는 다랭이마을 해변에는 평소에 그리 좋아하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눈앞에 지나가는데도, 삭신이 고통스러우니 이건 완전히 '소 닭 쳐다보듯'이 되고 만다.

 <1박2일>에 나왔다는 한 노래방.
 <1박2일>에 나왔다는 한 노래방.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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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  있다는 암수바위라고 불리는 한 쌍의 바위.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이 바위를 보고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든지 말든지 관심없다. 그저 난 잠이나 자고 싶다.

아, 갑자기 조용필 형님이 야속한 건 왜일까?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아, 노래가 사람들 다 버려놨다.

잠자리를 제공해준 찜질방은 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비한 것이 원인이었다.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 앞서 여행계획이나 일정준비가 미비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여름만 되면 치솟는 피서지 물가로 짧은 일정의 피서도 만만치 않다.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여행지는 물론 워터파크, 숙박업소들이 평소보다 몇 배 정도 인상된 요금을 부르는 것은 기본. 그러나 이미 즐기러 떠난 여행, 다시 되돌아 올 수도 없는 일이다. 충분한 사전조사와 예약은 필수다. 무턱대고 떠나더라도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자료에 의존하지는 마시라.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내가 다시는 휴가 가자는 소리 하나 봐라! 아무리 등 떠밀고 가라고 해도 안 갈 거다!"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굳건한 아내의 다짐도 말로만 이런다는 것 다 알고 있다. 내년 8월이 오면 올해 여름날의 이 쓰라린 기억도 추억으로 떠올라 어김없이 다시 보챌지도….


#휴가지에서 생긴 일#찜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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