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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강정마을 주민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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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강정마을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제주강정평화대회가 끝나고 마을 주민들은 한껏 고무됐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중국 상하이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애초 예측과는 달리 7일 새벽부터 태풍 '무이파'가 제주섬을 강타했다. 강정마을 해안에 마련된 숙소용 천막은 대부분 주저앉았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잔치가 끝난 뒤에 맞은 재해라 뒷맛이 더욱 씁쓸할 수밖에. 대다수가 농민들이고, 농번기가 한참이라 태풍 뒤 자신들의 농작물 돌볼 시간도 부족했다. 태풍이 야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주민들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은 지원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통일대행진단 강정마을 사수단'이란 이름을 걸고 마을을 방문한 대학생들이다.

한대련 강정마을 사수단 학생들이 태풍이 지나간 뒤 강정마을 해안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대련 강정마을 사수단 학생들이 태풍이 지나간 뒤 강정마을 해안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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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벽에 제주에 도착해서 제주강정 평화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후 마을에 머물면서 주민들의 태풍피해 복구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일과 9일에 주민들과 경찰이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 입구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대학생들도 주민들과 함께 경찰과 대치하며, 주민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해안가로 떠내려 온 쓰레기나 태풍에 찢겨 나뒹구는 천막을 수거하느라 몸이 땀에 젖었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머물러 있다. 고생하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어른들이 막걸리 한 잔을 권해도, "술을 마시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다"며 잔 받기를 거부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스펙(specification)을 쌓기에만 여념이 없는 시대인지라, 이런 학생들의 활동이 이젠 다소 낯선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세상의 불의한 질서에 맞서고자하는 젊은 지성의 싹이 대학 내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게 반갑기만 했다.

한대련 통일대행진단 강정마을 사수단을 이끌고 마을을 방문한 이정완 단장
▲ 이정완 단장 한대련 통일대행진단 강정마을 사수단을 이끌고 마을을 방문한 이정완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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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에 이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대련 통일대행진단 강정마을 사수단'을 이끌고 온 이정완(21) 총 단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험한 세상에 나와 부딪치기엔 너무나 앳된 얼굴이다. 자신을 소개해보라고 했더니 그는 "전주교대 3학년에 재학 중이고, 학교에서는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동기생들보다도 한 살이 어리다고 했다. 그런데 총학생회장이다. 그리고 강정마을 사수단을 이끌고 온 단장이라고 한다. 통일대행진단은 뭐고 강정마을 사수단을 또 뭐냐고 물었다.

"한대련 통일대행진단은 한반도 통일을 기본 목표로 삼아 전국을 순례하는 활동을 합니다. 8월 1일부터 13일까지 일정으로 전국에서 국민들을 만나 '이명박 정부의 문제', '미군의 고엽제 문제', '반값 등록금의 당위성' 등을 설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본대오는 지금도 전국을 순례하며 서명 작업과 유인물 배포 작업을 하고 있고, 노동자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한진중공업과 경북 외관의 주한미군기지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강정마을에 농로가 폐쇄되고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강정마을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있어서 통일대행진단에서 일부인 27명이 강정마을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8월 6일에 강정마을에서 열린 제주강정 평화대회에 참가한 한대련 소속 학생들.
 지난 8월 6일에 강정마을에서 열린 제주강정 평화대회에 참가한 한대련 소속 학생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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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27명이라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지원병이다. 이들은 앞으로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일단 주민들의 일손을 돕는 봉사활동을 할 거고,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과 힘을 모을 겁니다. 그리고 여건이 닿는 대로 읍면을 돌면서 서명도 받고 모금활동도 하면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시간은 짧은데, 강정마을이 처한 현실은 위태롭기만 하다. 20대 초반 학생들 앞에 놓인 과제로는 무거워만 보인다. 그래서 하루에도 감당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가지다. 피곤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사실 수면시간 짧아서 늘 졸리고 피곤합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사람 신뢰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지내면 피곤함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대련 소속 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율동으로 주민들을 응원하는 장면이다.
 한대련 소속 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율동으로 주민들을 응원하는 장면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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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에 와서 새롭게 느끼거나 얻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제가 학교에서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는 제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던가하면 학생들이 듣고 이해해줍니다. 그런데 사회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어른들로부터 말씀을 들어야하고, 그 말씀으로부터 실천할 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활동가가 되려면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면서 희망과 감동을 주고받아야한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은 자신이 입신양명하길 바란다. 요즘처럼 취업이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시대라면, 이런 활동 한다는 데 선뜻 동의할 부모가 많지 않을 텐데.

"사실 강정마을에 온 걸 부모님은 모르십니다. 그런데 제가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려 할 때 부모님과 많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중덕 구럼비 바위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학생들 얼굴에서는 고단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점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중덕 구럼비 바위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학생들 얼굴에서는 고단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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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에 언제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이 단장은 "고3때 광우병 촛불집회가 터졌는데, 입시 면접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토론도 해보고 자료도 찾다보니 낮은 수준이지만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답했다.

주변에 취업에만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 많은 것인데,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었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스펙과 취업에만 관심을 두다보니 대학이 인간로봇 양성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의 문제에도 관심을 두는 둥시에 주변의 문제도 돌아봐야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공통의 문제,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개인의 문제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막걸리 진짜 안 마실 거냐"고 물었더니, 이 단장은 "처음부터 정한 원칙이라 지켜야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혹시 요즘 대학생들은 막걸리를 싫어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동료 학생들에게 주량을 물었더니 대부분 말술 이라고 답했지만, 원칙이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원칙이라 지키겠다는 의지, 그 한 가지만이라도 평생 간직한다면, '백가쟁명을 과시하였으되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킨' 그들 삼촌 세대의 과오는 겪지 않을 진데.

오랜만에 '싹수 있는' 대학생들을 만난 지라, 인터뷰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물가에서 수영을 좀 해도 되는지 여부와 같은 사소한 문제들을 묻기 위해 이 단장을 찾았다. 이들 사이에 존칭어가 오가는 걸로 봐서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걸로 보였다.

이들은 13일까지 강정마을에서 그들만의 '스펙'을 쌓은 후, 14일과 15일에는 통일대행진단 본대오에 합류하여 서울에서 열리는 '8.15 자주통일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한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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