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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이 잇달아 내놓은 민생정책이 당 내 엇박자를 내면서 표류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애초 '반값 등록금'으로 알려진 명목 등록금 인하 약속을 깬 데 이어 무상보육의 경우도 말만 앞세우고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취임 100일에 맞춰 0~4세 전면 무상보육 방침을 내놨지만 논란만 커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당 내 혼선이 빚어지는가 하면 야당에서조차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대해서는 두나라당"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면 무상보육, 논란 불러온 황우여의 오래된 소신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전면 지원이 황우여 원내대표의 오랜 소신이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0~5세 전면 무상보육은 그가 처음 제안한 정책은 아니었다. 이미 지난 달 19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마련한 '한나라당 뉴비전'의 핵심 실천 과제에 포함됐다.

 

당시에도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당론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논란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뉴비전을 만든 비전위원장을 맡은 나성린 의원은 "보편적 복지에는 반대하지만 무상보육은 시급한 국가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수해 와중에 주민투표를 발의하고 한나라당도 투표율 33.3%를 넘기기 위해 적극 지원에 나서기로 하면서  발이 꼬였다. 전면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당이 더 많은 예산이 드는 전면 무상보육에는 찬성하는 게 논리적 모순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진정성을 의심 받게 된 것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평소 소신대로 내놓은 황우여 원내대표의 제안이 오세훈 시장의 주민투표 때문에 스텝이 엉키고 말았다"며 "오 시장의 주민투표는 당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 원내대표는 "급식과 의료는 선택적, 보충적 복지이지만 보육은 일반적이고 전면적인 국가의 의무에 속한다", "0세부터 무상보육을 시작하는 것은 저출산 문제 해결 대책"이라고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당 안팎의 의구심을 거두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9일 비공개로 진행된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지만 주민투표 문제와 겹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시기상 지금 무상보육에 대한 논의는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는 지적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반발... "포퓰리즘 독약 꼭 막아야"

 

당 내 일부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이날 자유기업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의 무상보육 등 당내 '복지 드라이드'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소위 무상시리즈는 과거 민주노동당 같은 극좌에 가까운 진보정당들이 먼저 들고 나왔던 것인데 이렇게 무책임한 정책을 집권 경험이 있는 민주당이 그대로 따라하고, 이제는 한나라당까지 따라하려고 하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부도 사태에 빠진) 그리스의 선례를 잘 살펴서 우리나라가 포퓰리즘이라는 독약을 마시는 일을 꼭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 시절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심재철 의원도 황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말도 안되는 정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황우여 원내대표가 느닷없이 전면 무상보육이라는 포퓰리즘을 내놓았다"며 "야당과 최일선에서 대척점에 서는 원내대표가 이런 식의 말도 안되는 정책을 내걸며 혼선을 일으키고 야당 따라하기나 하는 것은 자격이 없는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당과 청와대의 기류도 부정적이다. 당 내에서는 황 원내대표가 제안한 전면 무상보육에 대해 '톤 다운'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아이좋아'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해규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황 원내대표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에 대해서 소득차별 없이 하겠다고 말씀을 한 바 없다"며 "무상으로 추진한다고 하는 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 내용에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주영 정책위원장도 지난 8일 당정청 오찬회동에서 "전면 무상보육이 당론이냐"는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의 질문에 "황 원내대표가 평소의 소신을 말한 것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물러섰다.

 

정책변화 의지 시험대 선 한나라당

 

일단 한나라당은 정책위원회 산하 '아이 좋아' 특별위원회에서 무상보육 관련 정책의 구체적인 안을 만든 후 당내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특위에서 당내 비판 등 걸림돌 때문에 무상보육 정책이 어떻게 조율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황우여 원내대표가 제안한 반값등록금도 당정청 협의에서 반대 기류를 넘지 못하고 명목 등록금 인하가 아닌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제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황 원내대표의 제안이든 '한나라당 뉴비전'에 포함된 0~5세 무상보육이든 당론으로 확정되기까지는 많은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나라당은 저출산 문제에 대해 0~4세 무상보육을 포함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지켜볼 때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전면 무상보육 정책이 당 안팎의 거센 도전을 받으면서 당의 정책 변화 의지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태그:#무상보육, #황우여, #한나라당,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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