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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값, 물건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는 요즘, 서민들의 가계부는 거의 공황상태에 가깝다. 물가대책을 기획하고 집행해야 하는 정부에선 지금까지 온갖 처방을 내놨지만, 시장은 이를 비웃기라도하 듯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물가 잡을 대책 좀 알려달라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물가잡기 아이디어 공모'에 나섰단다. 고생 고생해서 번 돈, 시장 한번 보고나면 허망하게 사라지는 지폐의 쓸 데 없음에 국민들의 가슴엔 시름만 가득 쌓이고 있다.

 

이런 국민들에게 물가 잡을 대책 좀 알려 달라고 하니, 참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이요, 국민의 공복으로서 자존심조차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귀농 한 지 5년째, 시골가면 돈 쓸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졌다. 시골 물가, 도시보다 결코 싸지 않았다.

 

기름 넣을 때마다, 차 없애고 싶은 마음이...

 

귀농하자마자 도시에서 쓰던 승용차를 6인승 1톤 트럭으로 바꿨다. 사람도 충분히 타고 화물도 적재할 수 있는 이 트럭이야 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차량이었다. 시골에서 트럭은 각종 농기구 및 농산물을 운반할 수 있고 가족들의 이동을 돕는 등 생계와 생존을 위한 목록 제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시골의 트럭 의존도는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주행거리는 비례해서 올라갔다. 당연히 기름 값의 폭등은 차량 유지에 큰 부담이 되었다. 경유 1리터에 약 1800원, 연비는 평균 10~11km, 일 년 평균 2만km를 뛰니 기름값만 3~400만 원 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들 보기에 허름하고 덜컹거리는 트럭 한 대 유지하는데도 이렇게 비용이 들어가니 기름 넣을 때마다 타는 속을 어쩔 도리가 없다.

 

한 번 오를 때마다 적게는 몇 십 원에서 백 원 이상으로 널뛰다가, 기껏 생색내며 십 원, 이십 원 정도 찔끔 내릴 때면 정말 자동차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온갖 좋은 물건들이 서울 등 대도시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시골은 물건의 양과 질은 떨어지면서 가격은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니다. 생산자가 직접 장에 내다 파는 전통 5일장은 슈퍼와 대형마트에 밀려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미 다양해진 의식주에 길들여지긴 도시나 시골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고작 나물 종류와 저가의 의류, 잡화 등등으로 이루어진 5일장에서 시골사람들이 실제 구입할 물건은 별로 없어 보인다.

 

소 값은 폭락해도 쇠고기 가격은 요지부동

 

 

지난 구제역 파동 이후 폭락하는 소 값에 축산 농가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요즘, 최종 소비자가 만나는 쇠고기 값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마을 주민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물어 보았다.

 

"형님, 소 값은 내렸는데 식당에선 내리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식당 주인들이 말을 듣지 않네."

"네?"

"그동안 소 값이 비싸 식당에선 겨우 현상유지 했는데 이제 진짜 돈 벌 기회가 왔다고 버티는 거야."

 

할 말이 없었다. 식당입장에서 보면 요즘처럼 소 값 쌀 때 들여와 예전 가격대로 받으면 그야말로 목돈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식당 주인에게 쇠고기 가격 좀 내리라고 명령을 한들 그들이 과연 그 말을 들을까? 비록 한 사례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최종 소비자 가격을 잡을 수 있을까?


쇠고기야 먹고 싶어도 참고 안 먹으면 그만이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줄이면 된다. 그러나 아내의 장보기를 보면 요즘 물가는 거의 비상사태 수준이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론 장바구니에 찬바람만 돌고 돈다.

 

폭우에 폭염, 한파까지... 농사짓기도 힘들네

 

귀농한 사람들 대다수가 텃밭에서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을 자급자족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농촌으로 온다.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자연재배 야채들을 먹으며 유정란까지 욕심을 내 본다. 적게 벌어 적게 소비하는 소박한 삶을 살며 물가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면 행복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한 배를 타지 않는다. "주거만 시골로 옮긴 귀촌과 달리 농사로 경제자립을 꿈꾼 귀농의 경우 자발적인 가난이 아니라 저절로 가난해진다"는 어느 귀농자의 유머가 실제로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역시 귀농하면서 5인 가족이 월 평균 100만 원의 생활비로 살아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산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차량유지비만 1년에 400만 원, 세 딸의 사교육비는 전무했지만 기본 통신비에 부식비용, 기타 생활비용을 계산하니 연평균 2천만 원이 가볍게 넘어섰다. 반면 초보농부가 농사지어서 1년에 2천 만 원의 순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주변에서 찾기가 힘들다.

 

텃밭작물로 밥상을 채우기는커녕, 과수나 특작물 등 생계농업에 온힘을 다 뺏기고 쌀조차 마트에서 사다 먹는 귀농자들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쌀만큼은 농부의 자존심으로 스스로 해결하고 있지만 다양한 야채들은 나 역시 일부만 밥상에 올리고 있다.

 

인간이 환경을 망쳐버린 탓에, 우리나라에도 4계절이 사라져버렸다. 더구나 요즘 폭염과 폭우, 한파 등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들이 지속되고 있다.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면 농사를 짓기가 쉽지 않다. 자연히 농부의 삶도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어느 누가 고공 물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경제전문가도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물가대책을 묻는 나라에서 희망은 보이질 않는다. 대학에 대학원, 외국 유학, 박사에 박사까지 딴 유수한 교수, 전문가가 허다할 텐데 그들보다 고통 받는 당사자들에게서 아이디어를 구한다니.

 

타국의 소비와 부채를 볼모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의 경제가 위태로운 지금 대한민국 경제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극소수의 부유층과 깊은 산속에서 도만 닦는 이를 제외하고 어느 누가 물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의 풍요로움을 주고 허황된 중산층을 양산시킨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구조에 빨간등이 켜졌다. 이제는 더 이상 싼 가격에 먹을거리와 물건들을 사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누리고 살지 않았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너도 나도 대형차, 외제차를 선호하고, 집집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지구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다. 알고 보면 상당한 고가의 핸드폰을 80대 노인부터 시작해 초등학생까지 갖고 다니는 세상, 눈만 뜨면 대중매체마다 솔깃한 유혹의 말로 물건을 파는 세상, 거대 자본의 공세 앞에 신념과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21세기 무소유를 주장하는 선각자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집과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의복, 소박한 밥상만 있으면 물욕을 삼가고 정신적인 삶을 추구했던 옛 선비들의 자세를 한 번쯤은 곱씹어보자. 그럼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태그:#물가, #시골,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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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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