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7월 29일 서귀포시장이 강정마을 해안의 농로에 대해 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은 조상들이 한두 평씩 땅을 기증해 만들어놓은 좁은 농로도 강제로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해군기지 현장 주변에서 농성을 하는 주민들은 졸지에 남의 재산에 불법으로 침입한 '세력'이 되어버렸다.

 

해군기지 공사가 한 발짝 더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현장 주변에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가톨릭 신부님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공권력이 투입된다면 큰 불상사가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강정마을을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중덕해안을 찾고 있다. 멀리 외국에서 찾아와 이곳 사정을 트위터로 세상에 알리는 이들도 있고, 서울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한 트럭 싣고 내려와 퍼주고 가는 이들도 있다.

 

 

매일 밤 해군기지 예정지 앞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많은 이들이 주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마을의 평화를 염원한다.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는지라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강정마을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들 우진이가 강정마을 가는 길에 자주 따라 나선다. 성격이 소심해서 웬만해선 낯선 곳에 가려 하지 않았는데, 이젠 아무 거리낌이 없다. 여름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데도 강정천 입구에서 해안가로 걸어가는 것을 마다하지도 않고, 집에 돌아가자고 조르지도 않는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니 생태 환경의 가치나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해군기지 현장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른들이라, 초등학교 1학년에게 무슨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진이가 그 '고행 길'을 서슴없이 따라나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마을에 오면 친구(요즘 말로 '베프') 태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진이네 반은 남녀 어린이가 각각 다섯 명과 두 명인데, 태나는 그 두 명의 여자 아이 중 한 아이다.

 

우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하례초등학교 입학 예정인원은 다섯 명이었다. 입학식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은 입학생 수가 여섯 명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입생 일곱 명이 입학식을 치렀다. 입학식 날 부모님 손을 잡고 학교로 들어선 태나는 마을에서 처음 보는 아이였다. 그래서 머리에 꽃 머리띠를 예쁘게 매고 나타난 태나는 입학식날 모든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태나 아빠는 내게 "시골 학교에 입학시키는 게 아이에게 좋을 것 같아서 제주도의 시골 마을을 찾던 중, 하례리가 마음에 들어 이 학교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난 우리의 귀촌 경험을 얘기하며 "정말 훌륭한 결정을 하셨다"고 말했다.

 

태나와 우진이는 그렇게 1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우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애가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태나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는 거다. 주말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누나의 손을 잡지 않고는 오지 못했는데, 이젠 태나네 집에서 놀다 오겠다며 홀로 제갈 길을 가버린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강정마을에 취재를 갔다가 태나를 만났다. 태나는 해안에서 어린이들과 놀고 있었고, 태나의 엄마는 활동가들을 돕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는 태나와 태나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올레길을 걷다가 강정마을 주민들이 당한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태나 엄마는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한다.

 

 

 

 

우진이는 태나가 방학기간 동안 여러 날을 강정마을에서 보내는 것을 알고나선 이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난 것이다. 몇 번 가본 뒤 우진이도 이젠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저지'라고 써진 현수막을 보더니, '저지'라는 단어의 뜻을 묻기도 하고, '평화'라는 단어를 보면서 그 뜻을 확인하기도 한다.

 

아빠가 꼬였을 땐 들은 척도 않던 우진이가 이젠 강정마을이 좋아졌다고 한다. 모든 사회참여가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데서 시작된다. 우진이에겐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위력을 발휘한 게 틀림이 없다.


태그:#강정마을, #망장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