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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가만히 있으니 세상이 다 고요하구나" (김용택)
"내 손 안에 연꽃 피면 그 향기로 너에게 건너가리" (안도현)
"손이 하는 말이 더 많다. / 손이 하는 일이 훨씬 많다. / 나는 내 손일 때가 많다." (이문재)
"아무 것도 하고자 하지 않는 손, / 아, 없으려고, 없으려고 하는 손." (정현종)
"너 어디 있어도 / 그 곁에 나 있다 하시는 / 묵언의 말씀 그 위로" (도종환)

부처님의 손과 시인의 언어가 만났다. 관조스님(1943~2006)이 촬영한 한국 불상 수인(手印) 작품에 시인들이 호흡을 불어넣은 것.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마련한 기획특별전 '부처님의 손'은 이렇듯 스님과 시인들이 시·공을 초월해 함께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경주 남산 약수골 마애여래입상(통일신라)은 시인 안도현에게 '연꽃'과 '향기'로,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고려)은 시인 오세영에게 '한 생의 평정'으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상(백제)은 시인 오탁번에게 '금빛 손가락'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이것은 스님의 화두이자 시인의 언어일 뿐, 보는 이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

"불상 조각도 불교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조각은 언어보다 훨씬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의 진리는 오로지 손(手印)을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다.

한 손으로 땅을 다른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탄생불의 수인은 생명의 존엄성을 선언한 것이고, 결가부좌한 상태에서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은 깨달음 직전 악마들의 강한 유혹에 대한 굳센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 모든 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 등 중생구제의 뜻 또한 부처님의 손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번 전시기획 주최측에 따르면, "불교에서 손의 작은 움직임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데, 이는 곧 우리의 몸과 우주가 둘이 아니어서 몸이 우주고 법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작은 티끌 하나 속에 전 우주가 담겨 있다는 화엄사상을 사진 작품에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관조스님의 사진 하나하나에는 깊은 사색이 담겨있다. 이내옥 국립춘천박물관장은 관조스님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스님은 가시는 길에 그렇게 힘들여 추구하던 불법의 아름다움도 아무런 집착 없이 순순히 모두 내려놓았다. 안구와 법구도 병든 이를 위해 기증하고 다비식도 허락지 않았다. 언젠가 말씀하시기를 바람을 찍고 싶다고 하시던 스님,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의 소회를 묻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셨다. '삼라만상이 천진불이니, 한 줄기 빛으로 담아보려고 했다.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스님은 그렇게 가셨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큰스님의 법어와 더불어, 관조스님의 석불 수인 사진에 시로써 참여한 시인들은 강은교, 김광규, 김기택, 김명인, 김용택, 도종환, 문인수, 문정희, 안도현, 오세영, 오탁번, 유안진, 윤금초, 이근배, 이문재, 이상국, 이영춘, 정현종, 허만하 등 19명이다. 기획특별전 '부처님의 손'은 8일 오후 4시 개막식에 이어, 9일부터 9월 13일까지 국립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태그:#부처님의손, #관조스님, #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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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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