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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훌륭한 블록버스터 대작이 탄생했습니다. 굳이 3D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긴장감과 공포, 아찔함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욕까지 튀어나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예 나오지 말기를 바랐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는 불도저처럼 이 영화의 제작을 밀어붙였고 끝내 현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대체 무슨 영화기에 이렇게 거창하게 소개하냐고요? 네, 바로 올 여름의 '종결자'로 우뚝 선 본격 홍수 블록버스터 <오세이돈>입니다.

 

'삽질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며 개발로 인해 파헤치는 강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4대강 폭풍>이란 작품으로 떼돈을 번 제작자 'MB'는 이번 여름 물밀 듯이 밀려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설 강력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 모양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사로 우뚝 선 'MB E&M'의 대표이자 앞의 영화를 직접 감독했던 그는 이번엔 제작자로 물러서고 대신 제작사에서 충실하게 연출 수업을 받은 '5세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깁니다.

 

<강남3구>, <투표전>, 그리고 <오세이돈>

 

5감독은 한때 MB 감독의 '이미테이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지난해 '포퓰리즘'과 '야권 통합'이라는 괴물에 맞선 강남 부자들의 사투를 그린 자신의 첫 장편영화 <강남3구>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당초 그는 두 번째 영화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이는 것을 반대하며 주민들에게 찬반을 물어보자는 내용의 영화 <투표전>을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겠다고 서명한 사람들 명단이 가짜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영화 내용에 대한 제작진들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촬영이 늦춰지고 완성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습니다.

 

왕가위 감독도 이전 <동사서독>의 진행이 잘 안되자 짬을 내어 <중경삼림>을 찍었다고 하죠? 그랬습니다. 5감독은 조금 무리한 일정이긴 했지만 시간이 아까웠나 봅니다. 결국 잠시 <투표전>을 접고 <오세이돈>의 연출을 맡게 됩니다.

 

재난만 보고 이 영화를 판단하지 마라

 

 

영화는 재난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비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그칠 것 같던 비가 퍼붓고 마침내 서울을 삼켜 버립니다. 광화문이 물에 잠깁니다. 강남역, 사당역, 방배역…. 서울 강남의 중심부가 물에 잠깁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산다는 강남. 그러나 그 강남이 비에 완전히 잠겨 버렸습니다.

 

차량이 잠기고 도로가 잠깁니다. 한강 도로가 차단되고 막히는 차량으로 길은 어수선합니다. 지하철이 끊깁니다. 지하철을 타려던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버스를 타도 길이 막혀 있습니다. 회사도 집으로도 갈 수 없는 상황. 도시인들의 불안한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이 무너집니다. 산이 무너지고 토사물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토사물은 산 부근에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의 집을 강타하고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 토사물에 깔린 채 숨을 거둡니다. 가족을 찾으려는 이들은 계속 절규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가족을 애타게 찾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오세이돈>은 '보통의 재난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00년 만에 내린 대홍수.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 지구의 이상을 인간은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재앙'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세이돈>은 이것을 재앙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홍수 장면만 보고는 이 영화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충격은 초반부에 있다

 

마이클 치미노의 1978년작 <디어 헌터>를 보면 영화의 초반부인 결혼식 장면으로 무려 한 시간 정도를 채웁니다. 영화의 3분의 1을 서론에 할애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곧 전쟁이 일어나는 월남으로 가게 되는 젊은이들의 평화, 그리고 불안이 담겨 있습니다. 

 

평화를 즐기며 웃고 노래부르고 떠들면서 파티를 즐기고 사슴 사냥을 즐기는 젊은이들. 그들은 이제 지옥 같은 전쟁터로 갑니다. 그리고 전쟁을 겪은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돌아옵니다. 그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영화는 인물들이 마지막으로 평화를 누린 결혼식 장면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여기에 사실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것으로 말이죠.

 

<오세이돈>에서 사실 홍수 장면은 그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기대한 분들에게는 다소 기대에 못미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홍수가 일어난 도시와 마을의 모습이 아니라 그 홍수를 막지 못한 책임자들의 허세와 무책임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재난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에는 아낌없이 돈을 퍼부으면서 정작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돈이 없다'며 반대합니다. 아예 투표를 하자고 합니다. 그 투표에도 180억 이상의 돈이 들어갑니다. 시장은 서울시민을 단지 자기의 대권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해방지예산을 10분의 1로 줄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서울시는 부정하고 있지요.

 

영화는 서울시장의 전횡과 4대강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대통령의 이야기에 역시 영화의 3분의 1을 할애합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알게 되죠. 곧 다가올 홍수가 천재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말이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개관식날, 화재가 일어난다는 내용의 <타워링>을 기억하시나요? 그 끔찍한 화재의 원인은 바로 불량한 전기 배선에 있었습니다. 공사비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불량 퓨즈를 사용한 것이 그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화재로 이어진 거죠. 하늘을 향한 바벨탑은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오세이돈>은 어떤가요? 그렇게 치장에 열을 올리던 서울은 비가 오자 무방비 상태가 됐습니다. 시장이 만든 광화문광장, 세빛둥둥섬이 고립되는 장면에서 어떤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사태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순간 슬픔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초반부가 중요합니다. 허세로 무장한 서울시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막을 수도 있었던 피해를 겨우 한 사람의 생각 때문에 입는다는 것. 정말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 겁니다. 재난영화는 때론 하늘이 아닌 인간에 의해 일어나는 사고도 종종 다룹니다.

 

그러나 재난영화는 재난과 함께 그 속에 나오는 '인간애'도 다루게 되죠. 사람을 찾으려는 가족들, 그리고 소방대원들의 노력. 이것이 때론 감동과 슬픔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 속에서 한 대원이 순직하고 그 가족들의 슬픔까지 영화는 담아냅니다.

 

제발 속편 작업 당장 중단하세요!

 

영화의 마지막은 분노의 연속입니다. 그렇게 피해를 입고도 대통령은 '천재'라는 말만 반복하고 시장은 그 와중에 무상급식을 발의합니다. 막 물이 빠지는 광화문광장에 다시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촬영이 지연됐던 <투표전>도 결국 마저 만든다고 합니다. 또 5세훈의 영화를 봐야 하나요? 개봉날 30만을 못 채우면 바로 종영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공포와 불안,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진 서울의 홍수. 여전히 100년 만의 홍수 운운하며 천재로 돌리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또 홍수가 오면 똑같은 말만 하며 자리를 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영화로 끝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나 이번 일에 고무되어 <오세이돈> 속편이 나온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작업 당장 중지하세요.


태그:#홍수, #오세훈, #이명박, #광화문광장, #강남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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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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