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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첫날. 밤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일행에게 몽골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마유주(馬乳酒)를 한잔씩 건네고 하닥을 둘러주며 환영했다.
 첫날. 밤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일행에게 몽골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마유주(馬乳酒)를 한잔씩 건네고 하닥을 둘러주며 환영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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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여행이란다. 즉, 떠나는 사람도 기쁘고, 맞이하는 사람도 만족하는 그런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였다. 스스로를 '공정족'이라 부르는 그들과 함께 드넓은 내몽골 초원을 누비고, 가도 가도 첩첩산중 북경 오지 마을도 체험 하면서 아주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과연, 이들은 현지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체험하자던 목표를 이루었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지출한 경비가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한 현지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왔을까? 지금부터 공정한 여행 4박 5일 그 체험 속으로 떠나가 보자.

허걱 여권을 두고 오시다니!

2011년 7월 23일 아침 공정족들이 김포공항에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 5일 후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2011년 7월 23일 아침 공정족들이 김포공항에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 5일 후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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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토) 새벽부터 김포공항에 26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바로 국제민주연대에서 주관하는 공정여행 코스 중 내몽골여행에 함께하려는 공정족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4박 5일간 만리장성과 내몽골(内蒙古)초원, 북경의 옛 모습이 담긴 후퉁(胡同)거리, 고대 산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챤디샤(爨底下)마을 등을 돌면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런데 출발 전 문제가 생겼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그것. 한 고등학생 참가자가 그만 여권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큰아들 여행 배웅을 위해 가족 모두가 배웅까지 나왔는데 아뿔싸!

이 순간 당사자 못지않게 난감한 또 다른 한 사람. 바로 국제민주연대를 통해 이번 여행을 기획한 여행작가 최정규씨다. 그가 다급하게 말한다.

"그럼 제가 남아서 다음 비행기로 어떻게라도 데리고 갈 터이니 빨리 택시라도 타고 갔다 오시죠."

그런데 이런, 학생의 집이 경북 봉화란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거리. 결국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후에 전해들은 얘기로 이 학생은 다음 차수에 떠나는 윈난 공정여행을 또 신청했단다.)

우여곡절 끝에 두 시간여를 달려 베이징 수도공항에 도착.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다. 후텁지근한 것은 예상했던 바였지만 연무에 쌓인 하늘을 보니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다 몽골 초원의 별을 보지는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넓은 중국 땅만 믿어 보기로 한다. 백만 개의 별들이 쏟아지는 몽골 초원을 기대하며 첫 번째 여정인 만리장성으로 향한다.

케이블카로 오르는 흔한 만리장성은 싫어!

팔달령 잔장성 구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거나 쇼핑몰을 거쳐야 하는 거용관 구간과는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장성의 가장 옛스런 모습이 남이 있는 구간이다.
 팔달령 잔장성 구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거나 쇼핑몰을 거쳐야 하는 거용관 구간과는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장성의 가장 옛스런 모습이 남이 있는 구간이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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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다녀온 사람치고 만리장성 한번 안 올라갔다 온 사람 없을 터. 그런데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좀 특별한 구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녀왔다는 팔달령 거용관(居庸關) 구간이 아니다. 바로 장성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잔장성(殘長城) 구간이다.

북경을 떠나 잔장성으로 가는 도중 거용관에 오르기 위해 대기하는 차들로 한 시간여를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방학을 맞은 중국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기 때문에 말그대로 인산인해인 탓이다.

그런데 아직도 주차장 진입을 위해 두 세 시간, 장성에 오를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마치 놀이공원 인기코너에서 5분을 즐기려고 서너시간 이상을 줄서서 기다리는 꼴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대부분의 패키지 관광객들은 내려오는 길엔 필수 코스 쇼핑센터와 식당가를 거쳐야 한다니.

그래서 우린 거길 피했다.  왜? 우린 공정하니까 ^*^

不到長城 非好漢. 잔장성은 아직도 곧곧이 공사중이었다.
 不到長城 非好漢. 잔장성은 아직도 곧곧이 공사중이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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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멀미날 것만 같이 지루하던 교통체증 구간을 뚫고 잔장성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말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우리 공정족 일행과 몇몇 외국인이 전부였다.

현지 관리사무소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잔장성은 역사적으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이미 민심을 잃은 명나라를 접수하기 위해 난을 일으킨 이자성의 군대가 삼엄한 팔달령 거용관을 돌파하지 못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자, 잔장성 지역의 노인들이 나서서 군대를 이 구간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이들의 도움을 받은 이자성의 군대는 이 협곡을 통하여 수도 북경으로 진격하는데 성공하였고, 마침내 명나라는 그들에 의해 함락되고야 만다.

어느 정권이든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아무리 총칼로 무장하고 폭압을 써봤자 그 위세로는 기껏해야 빤히 보이는 대문 정도나 지키며 잠시 버틸 수 있을 뿐 떠난 민심을 절대로 이길 수는 없다는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장소이기도 한 셈이다.

장성은 말그대로 장성(長城)이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성곽 계단을 따라 숨차게 오르고 내리고를 몇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뿌연 안개 사이로 드러난 길이만 봐도 그 끝이 어디쯤일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만리장성!

또한 이곳은 곳곳이 공사중이었다. 아직 개발이 덜된 구간이기에 그러한 듯하다. 장성의 여기저기에서 노동자들이 부서진 성곽의 벽돌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거나, 모택동이 말했다는 <不到長城 非好漢>(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어록을 새긴 비석에 글자색을 입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느긋하다. 내려올 때 보니 비석에 칠해진 글자 수가 올라갈 때보다 딱 반 글자 늘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일당도 못 받고 쫓겨날 일이다.

장성 곳곳에선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런 공사가 마무리된 몇 년 후쯤에는 이곳도 상업화의 물결을 타서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느긋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장성 곳곳에선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런 공사가 마무리된 몇 년 후쯤에는 이곳도 상업화의 물결을 타서 지금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느긋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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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몽골로... 6시간을 달리다

시장이 반찬이죠. 공정여행 첫번째 식사 시간이다. 인솔자가 사전에 부탁해 샹차이(香菜)와 소금간을 조절했다고 한다.
 시장이 반찬이죠. 공정여행 첫번째 식사 시간이다. 인솔자가 사전에 부탁해 샹차이(香菜)와 소금간을 조절했다고 한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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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 동안을 잔장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배에서는 벌써부터 '꼬르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같이 출발해서 10시경에 기내식을 먹은 후에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공정족들은 장성 아래 마을에 위치한 작은 음식점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중국에서 처음 먹는 식사, 역시 시장기가 반찬이었다.

이윽고 오늘 목적지인 내몽골로 출발했다. 이동시간은 무려 6시간 정도나 된다고 한다. 중국 여행이 처음인 필자의 경우엔 낮선 창밖 풍경에 눈을 뗄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대부분 다른 공정족들은 계속되는 고속도로 주행에 지친 듯 단잠을 자기도 하였다.

특히 고속도로 차창 밖으로 비춰지는 수백 대의 화물 트럭들이 피곤에 지친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빈차들이었으며, 운전사들 대부분은 2인 1조로 차량을 운행하고 있었다. 북부지방의 농산물이나 광산자원을 북경으로 실어 나르고 빈차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라고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웃통을 벗었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뿜어나는 담배 연기 속에서 낮은 운송비와 높은 고속도로비에 멍든 그들의 일상을 연상해 볼 수 있었다.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후로도 일행의 버스는 북쪽으로 난 고속도로와 초원의 한 가운데 지방도로를 쉼 없이 달렸다. 하북성을 지나고 드디어 밤10시, 우리는 내몽골 자치주 타이푸스치(太仆寺旗) 궁바오라거(贡宝拉格)초원에 도착하였다. 비록 차창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꿈에도 그리던 내몽골 초원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내몽골 타이푸스치 초원에 도착하자 몽골인들이 노래와 함께 흰색천 하닥를 목에 걸어주고 마유주를 접대하는 환영의식을 펼치며 우리를 맞이했다.
 내몽골 타이푸스치 초원에 도착하자 몽골인들이 노래와 함께 흰색천 하닥를 목에 걸어주고 마유주를 접대하는 환영의식을 펼치며 우리를 맞이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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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의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밖에서 고음의 몽골 여인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처음 들어본 노래였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묵게 될 이곳 게르촌 사람들이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우리를 환영하는 몽골식 의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앞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흰색천 하닥을 목에 둘러주며 마유주 한잔씩을 건넸다. 아주 친절한 환대였다.

그러나 술을 입에도 못대는 나는 마유주의 참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본래는 말 젖을 원료로 한 증류주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소젖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냥 조금 덜 독한 고량주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주변의 고압전선이 끊어지면서 정전이 되었다고 한다.

급한대로 비상용 발전기를 돌려 겨우 전등 몇 개를 밝힌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정전이 일상인 듯 크게 당황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아까 낮에 만리장성에서 만났던 여유로운 노동자 아저씨들에 이어 두번째로 보는 느긋함이다.

하닥을 목에 받아 두르고 기마대의 안내를 받아 게르로 향하는 순간 내가 몽골초원에 도착했다는 실감을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몽골식 늦은 저녁을 마친 공정족들은 밝아올 아침의 푸른 대초원을 꿈꾸며 내몽고의 첫날밤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가 초원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저녁 반찬에 양고기와 치즈가 나온걸 보니.

그런데 걱정이다. 이곳은 오늘 하루 내내 희뿌연 구름 탓으로 하늘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우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아뿔사다. 언뜻 언뜻 별은 보였지만 평소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말이다.

과연 우리는 내일 몽골 초원에서 백만 개의 별을 보며 초원에 누울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내몽골의 첫날밤. 무거운 여장을 풀고 게르에 누웠다. 내일 아침 푸른 초원을 기대하며.


찬래네 가족 짐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여행지마다 옷가지, 학용품 전달하는 공정족 이야기

김찬래는 참 좋은 엄마들 두었다. 참 공정스런 가족
 김찬래는 참 좋은 엄마들 두었다. 참 공정스런 가족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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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짐 보따리는 대개 단출하다. 그런데 경기도 용인에서 이번 여행에 참가한 김찬래(11)군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카트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박스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바로 내몽골 아이들에게 전해줄 겨울 옷가지며 여러 가지 학용품들을 바리바리 준비해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10여 년째 공정족인 찬래엄마 주인자(51)씨는 이번에도 남편과 함께 세 가족 모두 내몽골 공정여행에 참가했다. 그는 "예전에는 그냥 즐기러 여행을 다녔는데 몇 해 전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열악한 현지아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후부터는 부족하지만 약간의 정성과 노력을 보태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간다. 그래야 마음도 편하고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녀는 여동생들과 주변 친척들에게 전화해서 물품들을 모았으며, 부족한 것들은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 가서 구입했다고 한다. 참 '공정스런' 가족이다.

이들이 모은 물품은 이번 공정여행을 주관한 국제민주연대에서 내몽골을 출발할 때 게르촌 종업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들이 돌아갈 때 필요한 얼마 정도의 차비도 챙겨주었다.



태그:#공정여행, #내몽골, #챤디사,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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