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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지난 20일부터 진행된 '제주피스보트'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제주피스보트'는 트래블러스 맵과 제주생태관광, 노리단, 리블랭크 등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들이 함께 준비하여 생태와 평화의 기치를 걸고 인천항에 띄운 희망의 배입니다.

피스보트 안에서는 인문학자, 문화예술인, 사회적기업가가 멘토로 참여한 다양한 선상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20일 인천항을 출발, 21일 제주에 도착한 피스보트팀은 어린이, 청소년, 청년, 일반팀으로 나뉘어 12색(色) 제주도 에코투어가 진행됐습니다. 

구럼비와 함께 이어진 강정마을 해안, 실제로 보면 훨씬 아름답다
 구럼비와 함께 이어진 강정마을 해안, 실제로 보면 훨씬 아름답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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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피스보트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대했고, 참가 후에도 가장 좋았던 것은 강정마을 방문이었습니다. 늘 트위터로만 접하던 그 곳, 멀게만 느껴졌던 그 곳을 직접 방문한다는 설렘은 생각보다 강렬했습니다. 그 아름답다는 강정마을을 직접 가게 되다니! 나도 가서 강정마을을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녀와서는 하루짜리 짧은 방문과 내 수준으로(심지어 상주하며 취재하는 기자분들도 있으신데)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엄청난 고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느끼고 본 만큼은 알리고, 누군가 내가 느끼고 본 만큼만 직접 경험해봐도 좋겠다! 그것을 알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경험한 나름의 강정마을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 오전코스

강정마을,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강정마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생물권보호구역이자 제주도에서 지정한 절대보전지역이라고 합니다. 강정마을 입구에는 강정교가 있고 그곳엔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강정천이 있습니다. 함께 갔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님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했습니다. 강정천이 있는 강정교를 지나면 바로 해군기지 부지라고 한눈에 할 수 있는 높다란 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래서 마을이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벽은 시야도 가리지만 마음도 닫히게 만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을에 들어서서도 해군 부지가 끝없이 따라옵니다. 그렇게 아름답다는 올레 7코스인데 경치를 망친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강정해안가 입구, 방사탑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강정해안가 입구, 방사탑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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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말로만 듣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아름답다'말고 또 무슨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러우면 한 번 와보시라니깐요. 강정마을 입구에서부턴 해군기지 반대 등의 메시지를 담은 많은 현수막들이 여러 곳에 매달려 있거나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예술인이 많이 와서 산다는 말이 사실인지 현수막 외에도 높게 솟은 솟대나 전시품, 방사탑들이 조화롭게 곳곳으로 있었습니다. 방사탑은 제주도에서 마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액운을 막기 위해 세우는 돌탑이라고 합니다. 구럼비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가는 오랜 천막농성으로 또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강정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뜻 봐서는 이 곳 주민 같습니다만 들여다보면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강정마을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굳이 붙잡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둘러보시고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하지만 관심을 갖고 물어보면 이야기를 아주 잘 해주십니다. 우선은 그곳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 강정이 더욱 잘 보입니다.

강정마을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조성봉 감독님
 강정마을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조성봉 감독님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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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곳에서 조성봉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조성봉 감독님은 제주와 인연이 깊으신 분입니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드헌터>를 만드셨고 공동체상영을 계기로 지난 4월 제주에 들르셨다가 자발적으로 발목이 잡혀 머물게 되셨다고 합니다. 감독님으로부터 강정마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보 논리만을 앞세운 채 제대로 된 주민동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추진한 해군기지 건설 결정. 저는 이곳의 문제가 4년이나 끌어온 일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4년을 끌어온 싸움에 마을주민들은 모두 지쳤다고 했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마을공동체의 붕괴입니다. 심지어 슈퍼 하나도 해군기지 찬성 측 슈퍼와 반대 측 슈퍼로 나뉘어 간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외로울 섬사람들이 더 외로울 것만 같았습니다.

감독님은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해군은 저쪽에서 늘 이곳(강정마을 해안)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올수록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 알면 함부로 하기 어렵거든요."

아마 이곳 해안가를 점거하지 않았다면 이미 매립공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 정말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들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와서 보고, 들으면 알게 됩니다. 강정에 오시면 사람책을 찾으세요. 강정의 평화수호자들에게 전해 듣는 강정마을 이야기, 어떠세요?

"공부를 할 때 오감을 사용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귀로도 듣는 것이, 피부로도 느끼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것인데요. 강정에 가서 가장 추천해드리고픈 필수 코스는 맨발로 구럼비 걷기입니다. 가보기 전까지는 저도 구럼비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강정마을 앞바다의 구럼비는 지하수인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바위습지지대입니다.

구럼비 위에서 맨발로 걷기도 하고 용천수에 발을 담그고 즐기는 사람들
 구럼비 위에서 맨발로 걷기도 하고 용천수에 발을 담그고 즐기는 사람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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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이 바위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맨발로 걸을 수 없을 것 같지만 한 번 걸어보면 맨발로 걷지 아니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바위입니다. 구럼비 바위에 맨발로 가만히 서서, 바다를 느껴보세요. 두 발로 구럼비를 디디고, 그의 열기를 느끼고 바다의 냄새를 맡고, 강정의 바람을 만지면 강정마을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됩니다.

저는 그렇게 감성적이거나 생태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럼비와의 맨발 미팅 이후 저는 구럼비 어느 한 구석에 제 마음을 주고 와버렸습니다. 마침 그날 문정현 신부님도 후원금을 모으던 저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돈뿐만 아니라 마음도 이곳에 두고 가라."

강정마을을 위해 제주피스보트팀들이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강정마을을 위해 제주피스보트팀들이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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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코스

강정사람이 되는 속성 코스, 밥 한 끼 나누면 됩니다

단 하루뿐이지만 강정사람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밥 한 끼 나누는 일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평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족이 둘러앉아 밥 한 끼 나눠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우리는 옛날부터 '밥'이 참 중요한 민족이잖아요. 간혹 지쳐버릴 수 있는 여행에서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는 평화가 이 곳 강정에 있습니다.

물론 따로 챙겨주시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식사시간이 되면 가서 밥을 푸고 누군가의 곁에서, 혹은 그냥 바다가 보이는 아무 바위 위에서, 그렇게 식사를 하시면 됩니다. 특별한 대화 없이도 밥 한 끼 나누고 나면 한 식구가 된 느낌입니다. 오순도순 삼삼오오 모여 밥 먹는 강정 식구들을 보며 이 공동체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구럼비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물어보고, 밥까지 먹고 나면 아무래도 졸음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그냥 아무 곳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오후엔 정말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어느새 느껴지는 바다 내음, 바람, 햇살, 풍경… 강정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냥 이곳에 가만히만 있어도 나의 일부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신비한 힘을 가졌나봅니다.

일정을 마무리하며 피스보트팀은 철조망에 걸어둘 나무엽서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볍게 강정에게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강정마을에게 나무엽서를 썼습니다
 강정마을에게 나무엽서를 썼습니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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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강정
직접 너를 만나고
너를 디디고
너를 만지고
너의 냄새를 맡고
너의 열기를 느끼니,
네가 오래도록 그대로이길
간절히 바란다.

제주피스보트 청년팀은 늦은 오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정마을을 떠났습니다. 마을을 찾을 때의 평화로운 입구와 다른, 곧 바다에 쏟아 부을 준비를 마친 거대한 테트라포드가 쌓여져 있는 공사현장 쪽이 출구였습니다. 저런 것들이 내가 디디고 섰던 해안가를 메우고 덮는다고 상상하면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마 내가 모르는 수많은 공간들이 그렇게 시멘트로 덮여왔구나 생각을 하니 한편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강정마을 공사장 한편에 놓인 테트라포드들, 끝없이 있을 뿐더러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강정마을 공사장 한편에 놓인 테트라포드들, 끝없이 있을 뿐더러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하다
ⓒ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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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강정마을에 어떻게든 못 오는 것에는 죄책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제주에 오실 수 있다면 강정에 한번 들러보시라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들러서 딱 이만큼만 경험해보시면 정말 좋으실 거에요! 또 강정마을로 가는 올레 7코스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평화로운 풍경과 햇살과 바람과 바다 내음, 구럼비의 열기, 붉은발말똥게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이 곳 강정마을, 한 번 와보고 싶은 마음 안 드세요?


태그:#제주피스보트,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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