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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를 귀촌했다 해야 되나, 귀농했다 해야 되나. 귀농은 분명히 아니고 귀촌이라 하기엔 뭔가 허전하고. 아무튼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도 안성에 내려온 지 10년 다 된 부부다. 이들의 농촌도시 안성 10년 스토리가 우리를 주목하게 만든다.

경쟁레이스에서 '성공바라기'로 살다가 그만

한 때 폐교가 된 방축분교에서 쟁이마을이 자리 잡았었다.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찍었다.
▲ 방축분교에서 한 때 폐교가 된 방축분교에서 쟁이마을이 자리 잡았었다.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찍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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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부가 안성에 내려오기 전엔 서울에서 살았다. 남편 한정규씨는 낮엔 인테리어 작업, 밤엔 서울 강남에 있는 미술학원 강사를 했다. 그는 월수입 500만 원을 버는 평범한 '성공 바라기' 서울 시민이었다. 그가 2001년에 과로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들에겐 전진만 있었다. 한정규씨는 당시를 떠올리다 표정이 일그러진다.

"정말 화가 났어요. 밤낮 죽어라 일만한 서울 생활에서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건강만 악화되었으니."

경쟁 레이스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진 게다. 일종의 카레이스에서 차가 전복사고를 당한 셈이다. 걷잡을 수 없는 자괴감과 배신감에 힘들어하다 그들은 뭔가를 떠올렸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부부는 어렸을 적 시골생활을 생각해냈다.

이런 걸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하나. 이사 갈 경기도 안성 시골 땅을 바로 계약했다. 이날 부부는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너무 좋아서다. 2002년 부부는 '출 서울'을 감행했다. 무작정 떠나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아이들이 돈키호테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낸 창작품들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통해 심리적으로 터치를 받은 아이들이 만들어낸 창작미술품이다.
▲ 작품 끝내고 아이들이 돈키호테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낸 창작품들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통해 심리적으로 터치를 받은 아이들이 만들어낸 창작미술품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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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났던 서울생활, 만만찮은 안성생활

무작정 감행한 시골행. '서울 레이스'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생각에 나왔지만, 시골 생활은 만만찮았다. 우선 그들의 밥벌이가 미술 계통이다. 알고 보니 이 부부, 학력이 빵빵하다. 남편은 홍익대, 아내는 서울예전. 예술 계통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다. 그들이 시골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이사 온 몇 년간은 남편은 서울 양재동 학원으로 출근했다. 그러던 차에 아내 이은희씨가 무언가를 시작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했던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처음엔 마을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알음알음 소문이 나자 '동화 속 미술나라'라는 이름을 걸고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

남편도 마음을 바꿔 합류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았다. 장소도 자택, 방축분교, 아트센터마노, 미리내 식당 등등을 전전했다. 매운 시골생활 맛이었다. '대안미술학교, 대안미술공간, 대안미술학원' 등의 바뀌어온 타이틀만큼이나 그들은 표류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손으로 만든 마을이다. 무지개 마을이란 이름처럼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표현된 작품이다.
▲ 마을만들기 아이들의 손으로 만든 마을이다. 무지개 마을이란 이름처럼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표현된 작품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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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안성 연지동에 정식으로 '미술학원 쟁이마을'이란 이름을 내걸고 시작했다. 이제 자리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골정서와 서울정서의 차이는 '학원생 늘리기'에 한계를 드러냈다. 노력한 만큼 경제적 대가가 돌아오지 않자 좌절의 나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2010년 겨울은 고난의 최고정점

2010년 12월 겨울은 이 부부에게 잔인했다. 학원생은 더 이상 늘지도 않고, 타고 다니던 승용차도 고장 나고, 대출도 받을 데가 없고, 돈은 떨어지고. 한 치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견뎌내야만 하는 계절이었다. 그들이 들려준 심리학적 표현에 의하면 '한동안 낡은 집에서 견디기'였다고.

이제 안성에서 뜨려 했다. 여기가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지동 학원을 정리하려 했다. 다른 도시를 가려했다. 10년 안성생활이 접히는 듯했다. '출 서울'의 역사가 '출 안성'의 역사로 반복되는 듯했다.

이 때 부부에게 뭔가가 스멀스멀 떠올랐다. 한줄기 깨달음이었다. "왜 이렇게 우리가 힘들었을까"에 대한 답이라고나 할까. 그 원인은 바깥에 있지 않았다. '한 때 잘나가던 강남미술학원 강사를 뭐로 보고, 시골 수준이 다 그렇지 뭐'란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단다. 이런 마음은 자신들의 빵빵한 학력도 한몫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젠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진짜로 즐겨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깨닫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이런 마음을 가지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걸렸어요."

이은희씨가 다소 흥분한 표정이다. 그 깨달음의 여운이 옆에서 느껴진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몸으로 받아들인 날이었다. 비싼 인생수업료 내고 안성 생활에서 체득한 인생진리였다. 2010년 겨울에 삶의 바닥을 치고 낚아 올린 인생이정표 하나였다.

시골 자택 앞 마당에서 미술활동을 하며 한때를 보냈었다. 이런 날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쟁이마을이 탄생했다.
▲ 자택에서 시골 자택 앞 마당에서 미술활동을 하며 한때를 보냈었다. 이런 날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쟁이마을이 탄생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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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깨달음은 새로운 시대 열어

한 학부형의 권고가 힘이 되어 지금의 안성 공도로 학원을 옮겼다. 마침 1년 동안 안 팔렸던 자택이 팔렸다. 자택은 전세로 옮겼다. 공도에서 제일 최신식 빌딩에다가 학원을 차렸다. 인테리어도 지인을 통해 상큼하게 했다.

이제 안성에서의 마지막 도전이라 느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젠 상황에 쫓겨 다니지 않는다는 것, 한 경계를 넘고 나니 새로운 도전이 가볍다는 것이다. 뭔가 잘 될 거라는 기분 좋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단다. 

"지난 7년 동안 한 가지 더 얻은 게 있다면 우리 부부관계예요. 아내와 나는 하루 종일 붙어서 7년 정도를 생활하다 보니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지요. '지인'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된 거죠. 하하하하."

참 큰 거 건졌다.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부부는 잘 아는 '지인'수준의 삶을 살지만, 이들은 진짜배기 '친구'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몇 년 전부터 배운 상담심리학도 서로를 아는 데 큰 몫을 했다. 이제 뭘 해도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의 배경이 드러난 셈이다.  

자타공인, 창의력의 메카

"우리 학원의 창작 수업 스타일은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해요. 바로 우리들 머릿속에서 나온 거니까요. 7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해본 적이 없어요. 창의력만큼은 우리가 최고라고 자부해요."

그들의 말대로 여기를 다니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단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보다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로 길러냈단다.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해낸 아이에게 후에 그림기술을 가르쳐주면 무한성장을 한다니. 20년 노하우니 믿어도 될 듯하다.

"여기 오면 아이들을 개구쟁이로 만들어 드려요. 개구쟁이 같은 마음이 바로 창작하는 힘의 원천이 되죠. 21세기는 개구쟁이의 시대가 될 겁니다."

아하, 이래서 여기 이름도 '쟁이마을'이로구나. 안성에서 수없는 아픔을 겪고 난 후 내린 그들의 철학적 결론이 바로 '개구쟁이'였다. 개구쟁이란 '가면 즉, 페르소나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를 말한단다. 이때에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가 나온다니.

공도에서 이제 막 시작한 쟁이마을 학원이다. 이제 부부는 아이들과 제대로 놀 생각이다.
▲ 공도 쟁이마을 공도에서 이제 막 시작한 쟁이마을 학원이다. 이제 부부는 아이들과 제대로 놀 생각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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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창작미술, 입시미술, 각종심리상담'을 하는 이곳은 이들 부부의 10년 안성생활의 열매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들려준 이들 부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제 정말 제대로 놀아 보려고요."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4일 안성 공도 청사 앞에 있는 쟁이마을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쟁이마을, #창작미술, #심리상담, #입시미술, #한정규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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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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